중력파는 ‘시공간 물결’…블랙홀도 관측할 새 장 개막
▲2015년 9월14일 오후 6시51분은 금세기 물리학사에 역사적인 날로 기록됐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 존재를 예측한 ‘중력파’가 1000명이 넘는 국제 공동 연구진의 노력으로 마침내 발견됐다. (사진=REUTERS/연합뉴스) |
11일(현지시간) 중력파 직접 탐지에 성공했다는 발표가 전해지자 세계 과학계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과학계는 중력파가 눈으로 보거나 자외선이나 적외선, X선 등 전파로 관찰하던 우주의 더 깊은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창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블랙홀의 질량을 직접 측정할 수 있고 두 중성자별의 병합, 초신성 폭발, 감마선 폭발 등 그간 천체망원경이나 전파망원경으로 볼 수 없던 현상을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출기가 정밀해지면 현재 빅뱅 이후 38만년 뒤부터 볼 수 있던 인류의 시야는 빅뱅 후 100만분의 1초 직후까지 더 먼 우주로 넓어진다.
이번 발견은 최고의 이론 물리학자로 불리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 예측했으나 검증되지 않은 마지막 과제였다. 그런 배경에서 이번 연구 결과는 ‘인류 과학사의 쾌거’ ‘천문학의 대변혁’으로 평가됐다.
나아가 연구를 주도한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등의 학자들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유력한 후보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중력파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이번 중력파 탐지가 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이번 발표를 둘러싼 궁금증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본다.
-- ‘중력파’란 무엇인가…‘중력에 따른 시공간의 물결’
△중력파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중력에 따른 시공간의 물결’이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을 그리며 물결이 퍼지듯 질량을 가진 물체로 인해 시공간이라는 연못에 생기는 물결인 것이다.
‘시공간’(spacetime)은 3차원의 공간에 시간을 더한 사차원의 세계로, 천문학자들이 우주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중력이나 중력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종종 시공간을 트램펄린으로, 질량을 가진 물체는 트램펄린 위에 떨어진 볼링공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볼링공은 트램펄린 한가운데 떨어지며 트램펄린을 휘어지게 하는데 이것이 중력이고, 이로 인해 생기는 트램펄린의 파장이 중력파인 셈이다.
초신성 폭발이나 쌍둥이 별의 움직임 등이 볼링공이 떨어지는 것 같은 작용을 하면서 중력파를 발생시키는데, 중력파를 유발하는 물체의 질량이 클수록 중력파의 크기도 크고, 그만큼 관측하기 쉬워진다.
-- 아인슈타인이 백년 전에 예측했다던데…‘시공간의 뒤틀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파의 존재를 예측했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정체를 ‘시공간의 뒤틀림’으로 파악했고, 중력장에 따른 파동인 중력파도 존재할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그러나 중력파가 극히 미세한 탓에 아인슈타인 자신도 중력파가 탐지될 수 있을지에 회의적이었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의 이론 가운데 100년이 지나도록 검증되지 않은 마지막 과제이기도 했다.
그의 주장 가운데 지구 표면 등 중력이 강한 곳으로 올수록 시간의 흐름이 더뎌진다는 것이나 중력에 의해 빛이 휜다는 것,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것 등은 모두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 이번에 정말 처음으로 확인된 것인가…직접 탐지는 최초
△앞에 언급했듯이 중력파의 크기가 극히 미세한 탓에 탐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관측된 중력파도 진동수 범위는 30∼150㎐, 최대 진폭은 10의 21거듭제곱분의 1로, 1광년 길이에 머리카락 하나 굵기 정도의 엄청나게 미세한 변화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중력파의 존재가 ‘간접적으로’ 확인되는 데 그쳤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조지프 테일러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와 러셀 헐스 댈러스 텍사스대 교수가 서로의 주위를 도는 ‘쌍성펄서’(binary pulsar)‘를 발견함으로써 중력파의 존재를 간접 입증했고, 199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지난 2014년에는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바이셉‘(BICEP) 연구진이 남극 하늘에서 초기 우주 팽창에 따른 ’최초 중력파‘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으나 얼마 후 이것이 우주먼지로 인한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 어떻게 탐지했나
△이번에 탐지된 중력파는 약 13억 년 전에 각각 태양 질량의 36배, 29배인 블랙홀 두 개로 이뤄진 쌍성이 충돌해 합쳐지는 과정에서 약 0.15초간 발생한 것이다.
국내 연구진도 포함된 13개국 협력연구단인 라이고과학협력단(LSC)은 고급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라이고·LIGO)를 중심으로 매우 정밀한 레이저 측정장치를 활용해 중력파 검출에 나섰다.
라이고 실험의 핵심은 레이저를 서로 수직인 두 방향으로 분리시켜 보낸 뒤 반사된 빛을 다시 합성해 경로 변화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시공간의 뒤틀림을 측정하는 것이다.
중력파로 인한 매우 미세한 거리 변화를 탐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측정 설비 자체도 매우 정밀하게 설계됐고, 오류를 피하기 위해 3천㎞가량 떨어진 두 곳에 검출기 두 곳을 설치한 뒤 동시에 가동했다.
연구진이 중력파를 처음 검출한 것은 지난해 9월 14일로, 이후 이번 발표까지 여러 차례 자체 검증 작업을 거쳤다.
-- 이번 탐지가 왜 이렇게 중요한가…우주를 보는 새로운 눈
△‘최초의 중력파 탐지’는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직접 확인했다는 데에도 의의를 갖지만 앞으로 천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맨눈으로만 천체를 관측하던 시대에서 ‘망원경 천문학’ 시대와 전자기파로 체를 탐색하는 ‘전파 천문학’의 시대를 거쳐 ’중력파 천문학‘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자기파를 통한 천체 관측에는 한계가 있었다.
가령 블랙홀의 경우 밀도가 매우 높고 중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로부터 일정 반경 이내에서는 전파조차 탈출할 수 없어 전파망원경으로도 관측이 불가능했는데 중력파로는 관측이 가능해진 것이다.
-- 중력파 최초 탐지 이후에는? 빅뱅 비밀의 열쇠될 수
△중력파의 추가 발견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AP통신은 앞으로 많으면 한 달에 몇 차례씩, 적어도 1년에 몇 차례씩 중력파가 발견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우주 대폭발로 인한 중력파인 이른바 ‘최초 중력파’가 발견되면 빅뱅의 비밀을 푸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력파 검출 기술의 고도화가 선행돼야 한다.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중력파 천문학 발전이 급물살을 타면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우주의 신비들이 하나씩 밝혀지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