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미국 선거 속에 담겨있는 민주주의 철학

송두리 2020-11-19 17:27:28

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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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후진국인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나 미국이나 다를 게 없다"는 조롱을 쏟아낸다. 짐바브웨 집권당 대변인은 "예전 노예 주인에게 민주주의를 배울 게 없다"고 비판했고, 나이지리아 상원의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제 미국이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며 조롱했다.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나라들은 공격의 호기를 맞았다. 중국의 환구시보는 "이런 불안한 상황은 보통 가난한 나라의 선거에서 나타난다.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의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도는 "대단한 광경"이라고 지적한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르는 "누가 누구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오히려 훈계조다. 대표적인 우방국인 영국의 가디언도 "최종 결과를 떠나 대다수 세계와 미국의 절반이 기대했던 전환점은 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미국 대선이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선거 시스템에 담겨있는 민주주의의 철학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의 철학은 프랑스의 국기에 잘 나타나 있다. 프랑스 국기는 가운데 백색을 중심으로 양쪽에 청색과 적색으로 돼 있다. 청색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평등을 상징하고 적색은 자유를 상징한다. 가운데 백색은 박애를 상징한다. 미국의 정당 색깔이 평등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민주당은 청색을 택하고 자유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공화당은 적색을 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평등, 자유와 박애’를 기본으로 미국의 선거 시스템이 구성돼 있다. 민주주의의 평등은 모든 유권자에게 인종, 성별, 노소에 차별을 두지 않고 한 표를 행사하도록 허락한다. 그것이 바로 하원의원 선거다. 그래서 인구에 비례해서 각주에 하원의원 수를 배정한다. 즉 캘리포니아주는 인구가 4000만 명이니까 53명을 배정하고, 와이오밍주는 인구가 70만 명이니 1명을 배정한다. 총 하원의석 수는 435석이 된다.

미국 하원의 인구 비례에 의한 배정과 다수결 원칙은 민주주의의 평등의 원칙에 기반을 둔 것이지만 민주주의의 최악의 병폐이기도 하다. 소수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다수결은 합리적인 것 같지만 소수의 무한한 희생을 요구한다. 민주주의의 원조라고 할 영국에서 스코틀랜드나 웨일스가 독립하겠다고 나서고 북아일랜드에 반군이 발생하는 것이 바로 다수결에 의한 소수의 희생을 참지 못하는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소수의 선택은 북에이레같이 총을 들거나 스코틀랜드나 웨일스같이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소수에 대한 배려 즉, 박애로서 상원을 구성한다. 상원은 각주의 인구에 상관없이 모든 주에 2명씩을 배정해 총 50개 주에서 100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한다. 인구 4000만 명의 캘리포니아 주도 2명, 인구가 100만 명이 안 되는 와이오밍주나 알래스카도 모두 2명을 배정한다.

이 두 가지 민주주의 철학 가운데 평등과 박애를 조합한 것이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단의 구성이다. 각주의 선거인단은 상원의원 수 2명과 정해진 하원의원 수를 합해서 결정한다.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는 상원의원 2명과 하원의원 53명을 합한 55명을 배정한다. 알래스카는 상원 2명에 하원 1명을 합해 3명을 배정한다. 그러면 총 선거인단은 하원의석 수 435석에 상원의석 수 100석을 더해 535석이 되는데 여기에 워싱턴 DC의 3명을 합해 총 선거인단의 수는 538명이 된다. 그러므로 538명의 절반인 269석에 1석을 더한 270석이 당선에 필요한 매직넘버가 된다.

민주주의의 자유 철학은 주 선거관리에 적용된다. 미국은 주(洲)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state)에 버금가는 자율권을 갖고 있다. 배정된 선거인단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는 대통령이 관여할 수 없는 주 정부의 고유권한에 속한다. 그래서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대부분은 승자독식제를 채용하지만 매인 주와 네브래스카 같은 주는 배분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우편 선거의 유효 시한을 정하는 것도 각 주의 사정에 따라 결정한다. 각주 자율적으로 우편 투표 마감 시간을 애리조나나 위스콘신과 플로리다는 11월 3일, 펜실베이니아나 노스캐롤라이나는 11월 6일로 조기에 마감하기도 하지만 미시간은 11월 17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마감한다. 재검표도 조지아는 득표율 차가 0.5% 이하, 미시간은 2000표 이하다. 펜실베이니아는 0.5% 시 자동 재검표를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 네바다, 위스콘신은 자동 재검표는 없고 선거 당사자가 요구할 경우 정해진 득표율 격차에 따라 재검표가 가능하다. 이것이 미국이 추구하는 민주주의 기본 철학 ‘평등, 박애’에 주 정부의 자율권을 추구하는 미국식 선거 제도다. 어떻게 현직 대통령인 트럼프가 부정선거제도라고 선거 불복을 보이는 것은 원초적으로 잘못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는 대통령의 권한이 제왕적이지 않다는 미국 민주주의를 과시하는 실증적 사례다.

트럼프와 같은 재벌을 미국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미국민의 업보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간에게 ‘돈 + 권세 + 명예 = 일정’한 것이 천명이라고 한다. 빌 게이츠와 같은 재벌이 권세를 탐하지 않으면 명예가 유지되지만, 트럼프와 같이 재벌이 권력을 탐하면 명예는 실추되는 것이 천명이다. 마찬가지로 권력이 있는 대통령이 돈을 탐하면 명예를 잃는 것도 천명이다. 그래서 천명은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에 대한 절제의 미덕을 요구한다. 이것이 이번 미국 선거가 인류에게 전하는 하늘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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