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돌다리를 왜 두들기며 건넜을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11.24 13:02
조원용

▲조원용 건축사(아키조TV)

전통적으로 가장 안정성이 높은 재료는 뭐니 뭐니 해도 돌이다. 돌은 수 백 년을 지나도 지진과 같은 수평력의 충격이 없는 한 큰 변화 없이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자주 사용하는 속담 중 하나다. 평소에 잘 아는 일이라도 매사에 신중을 기하며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다.

돌다리를 만들었던 재료는 대부분 화강석이다. 화산지대였던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돌은 거의 화강석이기 때문이다.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화강석은 무척 단단하고 강하기 때문에 망치로 큰 충격을 준다 할지라도 여간해서는 잘 깨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단단한 화강석 다리를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속담은 왜 생겼을까? 조선시대에는 정말로 화강석으로 만든 돌다리를 두들기며 건너는 사람이 많았을까?

돌로 만들어진 구조물이나 건축물을 유심히 살펴보면 의외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멀리서도 쉽게 보일 정도로 크고 육중한 돌로만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무수한 작은 돌들이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것이다. 큰 돌로만 쌓으면 그 벽의 안정성이 오히려 좋지 않게 된다. 비정형의 돌끼리는 닿는 부위가 넓지 않고 틈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큰 돌끼리 쌓다가 생긴 틈새에는 작은 돌들을 끼워 넣었다. 가공이 수월해 일정한 크기로 만들 수 있었던 대리석에 비해 다루기 어려운 화강석은 더욱 그랬다. 큰 돌 벽, 즉 석축이 제대로 힘을 받고 서 있으려면 거의 존재감 없이 버려지는 작은 돌들이 큰 돌 사이사이에서 쐐기가 되어 박혀 있어야 한다.

성경에는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머릿돌’, 또는 ‘모퉁이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주춧돌’로 얘기하지만, 아니다. 당시 건축의 주재료인 돌을 이용해 집을 지을 때 돌끼리 부딪히며 생긴 파편들은 건축자재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기 때문에 건축가는 그 작고 쓸모없는 돌들을 모아 내버렸다. 그러나 큰 돌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작은 조각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건축가는 자기가 버렸던 그 돌조각들을 다시 가져와 사이사이 쐐기를 박아가며 틈새를 메워 벽을 더 튼튼하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머릿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작은 ‘쐐기돌’을 의미한다. 멀리서 보면 큰 돌로만 쌓은 것 같지만, 사실은 작고 보잘것없는 쐐기돌들에 의해 큰 돌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돌들의 섬김으로 인해 큰 돌이 돋보이게 되고 장대한 석축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속담 속의 돌다리도 마찬가지다. 돌다리를 두들겨보라고 표현하지만, 단단한 화강석이 깨질 것을 염려해서 두들겨보라는 것이 아니다. 큰 돌의 아래에 쐐기돌이 박혀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의미다. 즉 발이나 지팡이로 눌러 흔들어 보라는 것이다. 만약 무심결에 밟은 징검다리에 쐐기돌이 없다면 돌이 움직이거나 뒤집어지며 필시 물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속담이 생길 정도로 조선시대엔 그런 일이 잦았었나 보다.

회사나 단체에도 적용 가능한 이야기다. 외부에서는 대표나 임원이 잘 보이기 마련이지만, 보이지 않는 섬김이 있기 때문에 그 또한 가능한 것이다. 섬기는 사람이 많은 조직일수록 외부에서 잘 보이는 잘난 사람들만 모인 조직보다 훨씬 튼튼하다. 당연하다. 예수께서 머릿돌이 되셨다는 것은 가장 잘 보이는 높은 자리에 계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보잘것없는 자리에서 섬김의 모범이 되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섬기는 사람인가, 또한 내가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섬겨주는 이는 누구인가 주변을 돌아 살펴보자. 생각나는 이가 있다면 오늘 그(녀)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 대접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 어떨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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