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형 칼럼] 거대전략보다 중요한 기업문화의 회복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11.25 14:46

이은형 문화칼럼니스트/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은형

한 기업에서 외부강사를 초청했는데 강연내용이 원론수준으로 기대이하였다. 그래도 초청기업에서 강사에게 오늘 강연은 정말 별로였다고 알려주는 경우는 없다. 다시 볼 일이 없는 사람이라도 대개는 좋은 강연을 잘 들었다는 식으로 말해준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문명세계의 대화방법이다.

연차나 능력 등이 불충분한 인력에게 종종 발생하는 사안이지만, 저런 경험을 누적하며 지속적으로 강의를 개선한다면 긍정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성장한다. 하지만 저런 상황을 근거로 초청기업이 만족했으니 자산의 강연은 훌륭했다고 인식하고 이후로도 그런 식이라면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 리플리증후군까지 더해지며 가짜 전문가로 발전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유사한 사안을 종종 겪는다. 입사면접에서 재밌고 기발한 언변으로 면접관들이 모두 웃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자평했지만 불합격한 사례, 상대방의 반응이 좋았다면서 미팅이나 소개팅을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다음 만남은 거절당한 것은 흔한 이야기이다.

개인의 일상을 넘어선 기업과 기업, 사업부와 사업부, 부서와 부서간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 앞서의 강연 사례처럼 굳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무의미하거나, 문제제기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피하고 싶은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제시받은 업무결과물이 수요기업의 의도와 기대치에 동떨어지더라도 수고하셨다며 마무리한다. 정치적 상황이나 절차, 관례가 강한 공공부문일수록 특히 그렇다. 다만 금전적, 가시적인 성과가 확연하고 책임소재까지 명확한 사안일 때는 그렇지 않으며 소송으로도 발전한다.

저런 상황이 반복되면 실무진을 중심으로 불만이 누적된다. 이런 내용은 수요기업의 조직도를 따라 수평과 수직으로 확산되고, 일단은 수요기관의 상층부에서 업무수행기업의 상층부로 구두로 전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민간에서는 거래처를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지만 공공에서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달라진다. 심지어는 공식문서로 컴플레인을 받은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저쪽에서 그럴 가능성도 없으니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라며 사안자체를 지워버리는 논리전개로 발전하기도 한다.

어쨌든 수행기업에서는 그때서야 진위여부 등의 내역확인에 나선다. 우선 수요기업과 명함을 주고받고 가끔 업무적인 자리만을 가져왔던 이들이, 스스로 인맥이라고 생각하는 느슨한 사회적 관계의 저쪽 사람들에게 접촉을 시도한다. 그렇지만 공공부문일수록 저들은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다. 그들에게 인정받는 관계였다면 벌써부터 저런 상황은 파악했을 것이라는 점은 이들의 근본적인 한계다.

문제의 당사자들이 수요기업의 담당자들에게 직접 연락해서 확인하겠다며 나서기도 한다. 이때는 당연히 아무런 문제없다는 원론적인 얘기를 전해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사자에게 본인이 했던 나쁜 평가를 그대로 전달하는 일은 사회에서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현실사회의 기업업무에서는 피드백조차도 개선의 여지와 함께 담당인력들의 인간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상황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개선방향과 내용을 명확히 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수요기업의 항의서면도 없으니 수행기관의 경영자가 시도하는 새로운 혁신은 마른수건을 쥐어짜는 모양새가 되기 십상이다. 그간 묻혀왔던 기업내부의 좌절감과 패배감, 손상된 기업문화를 단기에 복구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영자가 아무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기업전략을 구상하더라도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무리 최적의 수를 놓더라도 군수부문까지 얽힌 실행부대의 역량부족에 발목을 잡히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훼손된 기업문화를 처음부터 다시 세우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 수 있다. 기업의 성공은 거대전략만으로는 성취되지 않는다.  

 

◇주요약력
① 공공기관 자문위원(부동산· 민간투자사업 등) 다수
② 건축· 경관·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다수
③ 도시· 공공· 디자인위원회 위원 다수
④ 명예 하도급 호민관· 민간전문감사관
⑤ 한국산업인력공단 출제위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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