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준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 |
29일 정치권과 정부, 업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산업부에 에너지전환 정책을 수행할 ‘에너지 전담 차관’을 신설하기로 함에 따라 성윤모 산업부 장관이 연말 개각 때 교체될 경우 후임에는 정치권 인사 발탁으로 가닥이 잡혔다. 정치권에서 산업부 장관 물망에 오르는 인사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5선 조정식, 4선 우원식 의원 등이다. 당초 박진규 전 청와대 신남방신북방비서관이 지난 1일 산업부 차관을 맡으면서 성 장관이 바뀔 경우 에너지자원분야 전문가의 후임 장관설이 일각에서 돌기도 했다. 산업 및 무역 전문 관료인 박진규 차관이 에너지자원 전문 정통관료 출신인 정승일 전 차관의 바통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새 장관은 에너지자원 전문인사, 차관은 산업 및 무역 전문 인사로 구도가 짜일 것이란 관측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에너지전문 차관이 신설되면 그런 관측은 빗나갈 수 있다. 정치인 등 외부 인사를 장관으로 발탁하고 이 장관을 산업 및 무역 담당 1차관, 에너지자원 담당 2차관이 각각 보좌하는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부의 1·2차관 복수차관제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정부의 복수차관제 도입에 따라 이루어졌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까지 이어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산업부 복수차관제를 폐지했으나 문재인 정부 4년차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2050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범정부 추진 체계부터 강력히 구축하고,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 가칭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설치해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며 "에너지 전환 정책이 더 큰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산업통상자원부에 에너지 전담 차관을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에너지전문 차관’ 도입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를 마무리하는 4년차에 미완의 국정과제이자 정치권 논란이 많은 에너지전환 등에 산업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관련 분야의 전담 차관이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산업부의 에너지전담 2차관은 이르면 다음달 말 신설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문 대통령의 언급에 따라 연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산업부의 에너지전담 2차관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에너지전담 차관 자리가 새로 생기면 산업부는 통상교섭본부장을 포함 차관급이 세 자리나 되는 공룡 부처가 된다. 또 산업부 에너지자원 조직도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조직은 1실 4국체제로 에너지자원실에 에너지혁신정책관, 자원산업정책관, 원전산업정책관, 신재생에너지산업정책단 등을 두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전담 차관 신설 추진과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정부가 그간 원전산업, 석탄산업 죽이기에 열을 올리더니 임기를 겨우 1년여 남겨놓은 시점에 정부 조직 비대화의 비난을 무릅 쓰고 에너지전환 정책의 후유증을 수습하는 등 뒷설거지할 총알받이를 내세우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 관료 주영준 실장·외부 윤순진 교수 등 거론=관가와 업계에서는 에너지전담 차관이 생기면 그 자리에 정통 관료가 가는 게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에너지자원 분야가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는데다 핵심 국정과제인 에너지전환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서도 새로운 인사보다는 기존 에너지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옛 동력자원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관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신임 에너지차관은 문재인 정부 에너지정책의 순장조가 될 것이 유력하다"며 "새로운 인사보다는 기존에 관련업무를 담당했던 인사가 유력해 보인다. 대통령 임기 후까지 고려한 인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설될 에너지전담 차관에 정통 관료 출신이 기용된다면 주영준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의 승진 발탁이 1순위다. 행정고시 37회로 에너지신산업정책단장과 방산물자교역지원센터장 등을 지낸 주 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완성할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히고 있다.
박원주 전 특허청장의 이름도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오르내린다. 박 전 청장은 행정고시 31회로 정세균 국무총리의 산업부 장관시절 비서관을 지냈고 청와대 산업통상자원비서관,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 등을 역임했다. 그를 주목하는 것은 안광구 전 통상산업부 장관,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 등이 특허청장을 지낸 뒤 산업부 차관을 맡았기 때문이다.
또 정통 관료 출신으로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 박일준 한국동서발전 사장 등도 거론된다. 특히 채희봉 사장의 경우 정승일 전 차관이 가스공사 사장으로 있다가 곧바로 차관자리로 간 점 등을 들어 물망에 올리고 있다.
다만 박 전 청장, 정 사장, 채 사장 등은 본부 차관을 지내지 않았음에도 일각에서 장관 후보로도 얘기가 나온다. 성윤모 장관이 특허청장으로 있다가 본부 차관을 거치지 않고 산업부 장관으로 간 케이스가 있어서다. 특히 이 세 사람은 모두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직·간접 연루설이 나와 관련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용에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가스공사와 한수원 측은 "사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정해진 게 전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대통령의 말씀대로 검토하고 있다"며 "아직 구체적인 선임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정통 관료가 아닌 외부인사라면 윤순진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이사장(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의 이름도 나온다. 산업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윤 이사장은 대표적인 탈원전론자로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정책 수립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환경 둥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김제남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서울대 환경대학원 재학 중 장학금 수령과 관련 설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에너지전담 차관 자리를 두고 ‘독이든 성배’란 견해도 있다. 현 정부 내내 에너지전환 정책은 업계는 물론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경우 지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처럼 관련자들이 줄줄이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특히 월성1호기 조기폐쇄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에 대해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 퇴임 이후라도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공세에 나서고 있다. 월성 원전 문제를 제2의 4대강 문제로 삼겠다는 예고나 다름없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집권 기간에는 힘으로 누를 수 있었지만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감사를 되풀이하며 정국을 달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