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한전 독점’ 전력시장 민간개방…정부 "현 구조 불가피" vs 민간 "세계 추세 역행"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0.11.29 14:51
캡처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한국전력 독점체제인 국내 전력시장의 민간 개방이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지적과 전문가들의 잇단 제안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9일 정치권, 정부, 산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전력시장은 발전과 판매를 분리한 2001년 전력산업구조 개편과 함께 재편된 뒤 지난 19년 간 구조적인 변화 없이 안주해왔다.

특히 발전부문 경쟁을 유도한다며 한전 산하 6개 발전 자회사 두고 점진적인 민영화 계획까지 밝혔으나 민영화는 백지화한 채 경쟁이 제한된 기형적인 절름발이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가격 왜곡, 경제 급전 순서 문제, 신재생에너지 중복투자 등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내 전력시장은 아직도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판매 독점과 발전 통제로 전력 사업간 형평성 문제로 특정 사업자에 불이익이 돌아가고 발전부문 등의 시장왜곡을 가져온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전력산업이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완전히 개방된 시장체제로 성장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에너지전환, 온실가스 감축 등 정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서도 현 전력시장 구조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간과 국제기구 및 각 전문가들은 전력시장을 개방하고 경쟁을 도입해 시장구조를 수요자 중심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한다. 지금의 전력시장 구조는 에너지 신산업 등 변화하는 환경에 뒤떨어질 뿐만 아니라 개방과 경쟁이라는 세계적인 추세에도 역행한다고 꼬집는다.

IEA는 지난 26일 한국의 효과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한국전력이 사실상 독점한 전력 시장을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EA는 ‘한국 에너지정책 국가보고서’에서 "한국의 전력 부문은 단일 구매자로 구성된 의무적 풀(Mandatory Pool)로 운영되고, 도소매 가격은 시장이 아닌 정부가 설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력 부문을 개방해 전체 가치사슬에서 진정한 경쟁과 독립적 규제기관을 도입하지 못한 점은 한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력산업구조개편 개요
1998년한전 민영화 검토
1999년한전 민영화 등 전력산업구조개편  기본계획 수립
2000년전력산업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안  국회 통과
2001년6개 발전자회사 독립 및 전력거래소  신설
2004년한전 배전 분할 백지화
2008년전기, 가스, 수도 등 민영화 배제  원칙 확정
2009년전력산업구조개편 원점 재검토
2016년전력 소매시장 개방 및 에너지공기업  상장 계획 발표
2017년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논의 중단
2020년여당, 연말까지 관련 법안 발의 준비  중

전력업계에서는 구조개편이 계속 실패한 이유로 전체 시장 규모 축소를 우려한 기존 노조 반발, 전력시장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정부의 입장 등을 꼽는다.

특히 정부입장에서는 발전소가 민간에 넘어갈 경우 전기요금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전기요금 인상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특히 2010년 부터 한수원과 5개 발전 자회사는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돼 경영평가 주체가 한전에서 정부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민간 통신, IT, 플랫폼 분야에서 활발한 비즈니스가 창출되는 반면 전력산업은 완전히 정체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전력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 멕시코, 이스라엘 뿐이다. 일본의 경우 1995년 전기사업법 개정에 따라 발전 부문이 먼저 민간에 개방돼 10개의 전력회사가 운영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가스회사, IT 회사들도 전력 시장에 적극으로 진입하면서 가스·통신·방송 등과 전기를 결합한 다양한 결합 서비스와 요금제들이 출시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전기요금도 규제요금 대비 평균 4% 정도 낮게 형성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조속히 전기사업법을 개정해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송배전 운영, 계통운영에서도 경쟁체제를 도입해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고 공정경쟁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경쟁적 시장 환경이 실현될 경우 보다 다양한 요금방식이 생길 것"이라며 "전기 판매를 가전, 통신, 전기자동차 등과 합친 ‘결합할인’ 등 새로운 서비스는 물론 소비자 특성별 맞춤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재생에너지 공급안정성 확보를 위해 분산 전원이 확대됨에 따라 전력시장 개방을 통한 공급시장 참여 유인 확대도 필요하다"며 "산업부는 전력공급시장 개방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시작해 효율적 에너지체계를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전력시장 구조로는 세계적 추세에 대응하는데도 늦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른바 ‘RE100’ 대응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향후 수출 등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RE100란 구글, 월마트, 페이스북, GM(제너럴모터스) 등 200여개 글로벌 기업들이 사업활동에 사용하는 에너지와 부품들에 대해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 혹은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이처럼 세계적 흐름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최근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고 있으나 국내 전력시장 구조와 제도로 인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기업들이 직접 재생에너지 직접구매계약(PPA)을 도입하려해도 전력시장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다. 다행히도 PPA를 가능하도록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이르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재생에너지 직접구매제도 도입과 전력시장 제도개선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노원병)은 "야당에서 특별히 반대하고 나서지 않는다면 PPA 관련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되거나 늦어도 내년 초에는 통과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