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제대로 도입하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1.12 19:36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2020122001001078900048411

어떤 국립대 교수가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사례를 일일이 정리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고 한다. 거의 모든 게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로남불’은 작년 말 ‘我是他非’(아시타비)라는 젊잖은 말로 진화했다. 이쪽에 이골이 난 사람들을 나는 ‘아시타비인’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아시타비인들의 대표적 행동 패턴으로 미국과 일본에 대한 태도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미국과 일본을 혐오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미국 대사관을 습격하고, 성조기와 미국 대통령 사진을 짓밟고 불태운다. 일본 천황과 수상을 모욕하며 일본에 유학한 자들을 친일파라고 욕한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자신의 자녀들은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에 유학 보낸다. 또한 아시타비인들은 미국과 일본을 욕하면서도 그들의 제도는 부지런히 베낀다. 자녀 해외 유학이 잘 못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좋은 제도를 베끼는 것이 잘 못됐다는 것도 아니다. 말 따로 행동 따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늘 미국과는 다른 입장이 있다고 우기는 정권이 이번에는 영미법상의 제도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한국의 20여개의 단행 법률에 이미 도입되어 있고, 곧 중대재해처벌법에도 도입될 예정이다. 이젠 법무부가 기본법인 상법에 도입해 전방위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영미법 체계가 아닌 대륙법 체계인 한국법 체계에서는 전체 법체계와 맞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제도가 도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러나 굳이 도입하겠다면 제대로 도입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제대로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를 알아보자.

첫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판례법 국가인 미국식 손해배상 방법이다. 미국에선 명예훼손, 사기, 미성년자ㆍ부녀 유괴, 악의적 기소, 상해ㆍ폭행 등 신체와 재산에 대한 고의적 불법침해, 생활방해(nuisance), 부동산 횡령(conversion), 계속적인 불법행위, 아주 위험한 운전 등 주로 악의적 불법행위(malice torts)에 이 제도가 적용된다. 한국에서는 이를 상법에 규정해 상인과 기업만 콕 집어서 징벌하겠다고 한다. 이건 잘 못됐다. 모든 고의적 악행 또는 악의적 불법행위에 도입해야 한다.

둘째, 미국은 가해자에 대한 행정벌(과장금과 과태료)과 형사벌이 약한 대신,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인 손해배상에 중점을 둔다. 가해자에게 고의적 악행 또는 악의적 불법행위가 있으면 어마어마한 징벌적 손해배상금(punitive damages)을 피해자에게 지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야말로 금전으로 징벌(punish)하는 것이다. 국가가 가해자를 처벌하고 돈을 뜯어내 엉뚱한 곳에 쓰느니 피해자를 확실하게 도와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은 반대다. 행정벌ㆍ형사처벌에 집중한다. 반면, 피해 당사자와 그 가정은 파탄이 나 살아갈 길이 막막한데, 피해자가 받는 보상금은 통상의 손해라 해서 겨우 수 억원에 그친다. 행정벌ㆍ형사처벌을 폐지하면 기업도 좋아할 것이고, 대신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피해자와 그 가족이 사고 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과태료와 과징금 같은 행정벌은 행정기관이 징수하여 어디다 사용하는지 알 수 없다. 형사벌로서 벌금도 마찬가지다. 징역과 같은 자유형은 고의가 아닌 과실로 사고를 일으킨 사람에게는 처벌이 가혹하다.

이처럼 한국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일반화하려면 사법행정 전반을 뜯어고쳐 손해배상 체계를 새로이 수립해 고의적 악행 또는 악의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의 경우는 통상의 손해를 능가하는 확실한 손해배상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대신 형사처벌과 행정벌 대부분을 폐지해야 한다. 세상에 좋다는 것은 다 끌어 모으는 방식이 바로 한국식이다. 형사벌ㆍ행정벌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데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부과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 밖에 없다.

윤하늘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