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 몰고오는 기후변화③] 1부 자연의 역습=식량·자원 위기
▲가뭄으로 말라버린 브라질 북동부 지역. 연합뉴스 |
전세계 식량위기 식량 자급률 낮은 한국에 위협
▲아프리카 케냐를 덮친 메뚜기 떼. 연합뉴스 |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상승은 이상기후 현상을 일으켜 일부 지역에는 전례 없던 긴 장마와 가뭄을 가져왔다. 긴 장마와 가뭄은 둘 다 치명적인 식량위기를 초래한다.
높아진 기온과 길어진 우기는 동아프리카에서 곤충들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세력을 확장한 게 메뚜기 떼다. UN은 지난해에 동아프리카에서 활동한 메뚜기 떼를 약 4000억 마리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동아프리카 지역에만 1100만여명이 메뚜기 때문에 직접적인 식량위기 상황에 놓였다고 보고 있다.
메뚜기 떼들은 거대한 세력을 형성해 이제는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은 지난해 발행한 보고서에서 메뚜기 떼 등의 영향으로 자국이 2025년까지 1억3000만t 규모의 곡물 부족 사태를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지구 기온이 올라가고 긴 장마로 고온·다습해지면 메뚜기들이 활동하기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0)는 메뚜기 떼가 이대로 더욱 창궐하면 전 세계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게 식량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뭄으로도 식량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FAO는 지난해 10월 유엔곡물가격지수가 전월 대비 7.3% 급등했다고 보고했다. 주요 밀 수출국인 러시아와 미국에 심각한 가뭄이 들어 식량 공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곡물 수출을 한 때 중단하거나 수출량을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요 쌀 수출국인 베트남과 캄보디아도 곡물 수출 제한에 동참했다. 지구 온도가 상승할수록 이와 같은 이상 기후현상은 더욱 자주 발생할 수 있다.
식량 안보 연구로 주목받는 데이비드 바티스트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쌀, 밀, 옥수수 등 주요 작물의 생산량이 최대 16%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식량위기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식량위기는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10년 중동에서 일어난 시위 운동과 혁명은 2008년 식량위기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집트에서는 2008년부터 식량위기로 시위가 발생했고 결국 이를 감당하지 못해 3년 후 2011년에 정권붕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식량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에도 전 세계 식량위기가 미칠 영향은 크다. 국내 식량 자급률은 2018년 기준 46.7%에 불과해 국가 식량 안보에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현재 정부도 이에 대한 대책마련을 서두른다. 식량가격은 지금도 계속 오르는 추세다.
14일 FAO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13.3으로 지난달보다 4.3% 올랐다. 지난해 5월 91.0에서 6월 93.1로 오른 뒤 8개월 연속 상승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0일 제29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주요 곡물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려는 방안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권원태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기후센터 원장은 "전 세계 식량위기는 전쟁이나 분쟁 같은 여러 가지 사회 불안정을 일으킬 수 있다"며 "식량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에도 미칠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길어지는 장마와 강해지는 태풍으로 국내 농업 피해
▲장마로 피해를 본 과수원. 연합뉴스 |
기상청의 ‘2020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겨울철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 과수 개화기가 빨라졌지만 봄철에는 이상저온으로 4만3554ha 규모의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해 장마로 7월과 8월 사이에 지역별로 시간당 30mm 이상 폭우도 쏟아져 3만3492ha의 농작물이 침수됐다. 3차례 찾아온 태풍 ‘바비’와 ‘마이삭’, ‘하이선은 총 12만3930ha의 농작물 피해를 줬다. 이는 전년대비 태풍으로 입은 피해 7만8014ha에서 4만5916ha(58%) 증가한 수치다.
기상청의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추세로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될 경우 21세기 말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지금보다 4.7℃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전망대로 기온이 상승하면 연간 폭염 일수는 현재 10.1일에서 35.5일로 급증하고, 올 여름 한반도를 덮친 홍수와 장마 등의 이상기후가 일상화한다.
농촌진흥청은 보고서를 토대로 21세기 말까지 한국인의 주식인 쌀 수확량이 25% 이상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심교문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원은 "국내 농업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기후조건에 맞게 가뭄과 장마에 대비돼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기상 현상이 평균적인 정도를 벗어나면 문제가 된다"며 "특이한 기상 현상이 발생하면 농작물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바다 온도 급변화로 국내 해양 수산물에 피해
▲고수온으로 집단 폐사한 양식장 모습. 연합뉴스 |
지난 2019년에는 태풍 등의 영향으로 연·근해 어획량이 2018년보다 10% 가까이 줄어든 91만 4000t을 기록한 바 있다.
양식업은 지난해 고수온으로 제주 해역에서 약 2.4억원의 피해를 봐 비교적 적었으나 지난 2018년에는 605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기상청은 지난해는 지속된 장마로 고수온 현상이 감소했다고 본다. 하지만 한반도 주변 해역 표층수온은 최근 50년간 세계 평균인 0.48℃보다 약 3배 높은 1.23℃ 상승해 가파른 수온 상승률을 보여 위기는 언제든 또 찾아올 수 있다.
저수온은 지난 2017년과 2018년 겨울 동안 양식업에 100억원의 피해를 줬다. 지구 온난화는 겨울철 우리나라에 이상 한파를 일으키기도 한다. 북극 온도가 비교적 높아지면 북극 지방의 한기가 저위도로 곧바로 내려와 한반도에 한파를 유발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18일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주요 해역 수온을 조사한 결과 전북과 전남, 충남, 경기 일부 지역에서 평년 기온과 비교했을 때 1∼2도 낮은 저수온 현상이 확인돼 일부 지역에 저수온 경보가 내려졌다. 이에 따라 국립수산과학원은 양식 어류 피해 예방 활동을 강화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이준수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원은 "바다의 저수온과 고수온 양극화가 지난 10년 동안의 추세"라며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돼 바다 온도가 크게 변하면 양식업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