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전기도 다 같은 전기가 아니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3.01 10:25   수정 2021.02.24 16:46:00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박주헌교수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지난달 중순 미국 텍사스에 닥친 30년만의 한파로 정전이 계속되면서, 평상시 1킬로와트시(Kwh) 당 5센트 미만이었던 전기 가격이 9달러로 거의 2만% 가량 급등하는 믿기 어려운 가격 폭등 현상이 발생했다. 가스관이 동파되고 풍력터빈은 얼어붙어 설비용량 45기가와트(GW)에 달하는 발전기가 갑자기 멈춰선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2만%에 가까운 폭발적인 가격 폭등의 또 다른 원인은 전기의 특성인 저장과 유통 상의 어려움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장과 유통은 시점 간 혹은 장소 간 수급불균형을 해소하는 훌륭한 옵션이기 때문이다. 저장과 유통이 상대적으로 쉬운 석유는 이번 사태에서 가격 폭등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인류의 현재 전기 저장 기술은, 최근 배터리업계가 장밋빛 업황으로 들떠 있지만, 자동차 배터리 차원에 머물러 있을 뿐, 발전소 단위의 저장 기술은 그야말로 걸음마 단계에 있다는 것이 올바른 평가다. 인접국과의 전기 유통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대규모 송전설비가 필요하고 양국 간 전기의 과부족 패턴이 딱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상당한 제한이 따른다. 이런 이유로 전기의 저장과 유통은 소규모 수급 조절용으로 활용될 수 있을 뿐 이번 텍사스 사태처럼 수십 GW 규모의 공급 장애를 해소하는 옵션으로 활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해 전기는 현재 기술 수준 하에서 대규모 저장과 유통이 불가능한 재화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력계통이 인접국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전력 섬나라이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어렵다. 대규모 전기 과부족이 발생하면 사실상 속수무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가 남아돌면 버리고, 부족하면 그냥 참아내는 것 이외에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필요한 만큼만 전기를 생산해 알뜰하게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문제는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골간으로 하는 에너지전환이 적절한 중간평가 없이 계속된다면, 전기의 과부족이 수시로 일어날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루 평균 3시간 혹은 6시간 정도만 가동할 수 있을 뿐 나머지 시간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태양광과 풍력으로 발전량의 대부분을 채우려면 설비용량이 터무니없이 커져야하기 때문이다. 최근 신안 앞바다에 48조원을 들여 건설하려고 하는 8GW 용량의 해상풍력의 발전량이 최신 원전 2기(2.8GW)의 발전량과 비슷한 이유다.

최근 확정된 9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2034년 태양광과 풍력 설비용량은 거의 70GW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 거의 상시로 가동되는 원자력과 석탄발전 용량을 48GW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에, 바람이 잘 불고 햇살 좋은 낮 시간에는 이용률을 감안해도 적어도 100GW 이상의 전기가 생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전기 수요의 평균부하는, 2034년 목표수요량 554.8Twh를 역산하여 추정해보면, 약 63GW로 추산된다. 추정오차 등을 넉넉히 감안하더라도 거의 30GW 이상 되는 엄청난 잉여전기가 남아도는 현상이 수시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더욱이 작년 말 선언한 2050년 탄소중립을 원전 없이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 설비를 아마 1000GW 넘게 갖춰야 할지 모른다. 상상이 불가능한 규모다. 잉여전기 규모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혁신적인 전기저장 기술, 수소경제, 양수발전, 정교한 수요관리 등의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규모가 결코 아니다. 아마도 대량의 전기가 그냥 버려질 공산이 크다.

생산해봐야 버려질 수밖에 없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발전량으로 발전비용을 나누어 계산된 태양광, 풍력의 발전원가가 아무리 하락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필요할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이듯, 전기도 필요할 때 전기가 진짜 전기다. 필요 없을 때 자기 멋대로 생산되는 전기는 태양광, 풍력의 발전단가의 숫자만을 낮출 뿐이다. 이렇게 낮춰진 가짜 발전단가를 내세우며 태양광, 풍력의 경제성을 추켜세우는 혹세무민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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