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전기차 배터리 ‘모양 삼국지’ 관건은 ‘가격’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3.17 17:21

각·원통·파우치형…장단점 서로 달라 우위 비교 어려워



배터리 승부 관건은 결국 ‘가격’…치열한 주도권 경쟁 예상



폭스바겐 ‘각형 동맹’에 시장 출렁···글로벌 경쟁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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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 연구원들이 파우치형 배터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이 전기차 배터리를 ‘각형’으로 만들겠다고 천명하면서 배터리 종류별 특징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를 둘러싼 일종의 ‘모양 삼국지’다. 배터리 제조사들이 각형, 원통형, 파우치형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에서 저마다 기술력을 쌓아가는 와중에 자동차 브랜드별로 원하는 배터리 형태가 달라 전쟁의 판도를 예상하기는 힘들다.

결론부터 말하면 ‘삼국통일’을 위한 최대 관건은 가격인 만큼 해당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배터리 업체 간 주도권 전투가 상당히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업체와 배터리 제작사 간 기싸움 양상도 비중은 낮아도 또다른 관전 포인트다. 

 

각형·원통형·파우치형···배터리 업체 ‘모양 삼국지’ 

 


전기차 시장 내 ‘모양 삼국지’ 전쟁을 주도하는 곳은 배터리 업체들이다. 글로벌 점유율이 높은 한국, 중국, 일본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각 사별로 주력하는 모양이 달라 국경선을 딱 잘라 설명하기도 어렵다. 중국 CATL은 각형에, 한국 LG에너지솔루션은 파우치형에, 일본 파나소닉은 원통형 제품 개발에 집중한다. 이들 3사의 지난해 전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각각 24%, 23.5%, 18.5%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은 "현재 수준에서는 어떤 배터리 모양이 경쟁 우위에 있다고 꼽기 어렵다"며 "각 형태별로 장단점이 분명하고 배터리를 개발하는 회사들도 두 종류 이상을 생산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각형 배터리는 알루미늄 캔처럼 생겼다. 외관을 금속으로 둘러싸 만든다. 자연스럽게 외부 충격에 강하다는 장점이 생긴다. 배터리에서 혹 열이 발생하더라도 금속 재질의 외관이 일정 수준 냉각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특징도 있다. 대신 배터리 구성의 최소단위인 셀만 놓고 봤을 때 원가가 가장 비싸다. 다른 모양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가 주행 가능 거리가 짧아진다는 단점도 있다.

원통형 배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건전지를 상상하면 된다. 건전지를 엄청나게 모아 묶는 형식으로 제작된다. 원가 부담이 낮고 대량생산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각각 배터리 셀마다 케이스가 있어 압력 등을 견디는데 유리하지만 같은 이유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데는 불리하다. 초창기에는 주행 효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현재는 기술이 발달한 파우치형에 다소 밀리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파우치형 배터리 외관 재질은 비닐이다. 셀 자체가 주머니에 담겨있는 모양이라 디자인을 새롭게 하거나 가공하는 게 편리하다. 배터리를 빽빽하게 배치할 수도 있고 부피도 줄일 수 있어 주행가능 거리가 길어진다. 다만 열관리가 어렵다는 단점이 안전성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화재 논란으로 리콜을 결정한 코나EV에도 파우치형 배터리가 들어간다. 같은 수준의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다고 가정하면 각형이나 원통형보다 원가를 줄이는 데 불리하다.

배터리 모양별 우군도 제각각이다. CATL과 삼성SDI 등이 강점을 지닌 각형 배터리는 폭스바겐, 아우디, BMW 등이 채택한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주도하는 파우치형 배터리는 현대차그룹,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볼보 등 메이커 차량에 적용된다. 파나소닉이 주로 만드는 원통형 배터리는 테슬라가 주요 고객사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도 원통형 제품 생산량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에 사용된 배터리는 각형이 70.8GWh로 전체의 49.2%를 점유했다. 다만 사용 비율은 전년 대비 7.6% 포인트 하락했다. 파우치형은 40GWh로 27.8%를, 원통형은 33.2GWh로 23%를 차지했다. 전년과 비교해 파우치형 배터리 사용량이 11.8%포인트 늘었는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유럽·북미에서 고객사를 대폭 늘린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각 모양별 배터리가 향후 주도권을 가져갈 키 포인트는 가격이 될 전망이다. 전기차 시장이 커지고 관련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는 상황이라 배터리 공급사 입장에서는 대량생산 체제에서 ‘가성비’ 제품을 앞세워 고객사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아직 어떤 모양 배터리가 기술적으로 우위가 있다고 판단하기 힘든데, 바꿔 말하면 전기차 제조사는 더 저렴한 제품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는 곧 전체적인 전쟁 양상에서 수주 전투가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계에서는 배터리 시장 역시 메모리 반도체처럼 치열한 치킨게임 끝에 생존자들의 리그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배터리 산업은 반도체보다 상대적으로 기술 진입장벽이 낮지만 천문학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몸집을 키워나가야 생존할 수 있다는 본질은 같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폭스바겐의 이번 발표는 EV 시장 경쟁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막대한 투자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한다"고 짚었다.

 

모양 삼국지 車-배터리 업체 ‘기싸움’으로 확장할 듯  

 


업계에서는 배터리 업체들끼리 펼치는 모양 경쟁의 이면에는 전기차 제조사와의 기싸움 구도가 숨어 있다고 본다. 최종승자가 될 배터리를 개발해 공급업체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배터리 기업과 거기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자동차 메이커의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연례 기자간담회를 열고 각형의 통합 배터리셀을 만들어 2030년까지 자사 전치가 중 80%에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럽 내에 자사 주도의 기가팩토리를 구축하고 현지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해 배터리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는 작년 테슬라가 ‘배터리 데이’를 통해 밝혔던 내용과 큰 틀에서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 역시 반값 전기차를 출시하기 위한 활로를 찾고 있다.

공급자가 주도하던 전기차 시장에서 자동차 메이커들이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카드로 기가팩토리 건설이나 배터리 자체생산 계획 등을 발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형, 원통형, 파우치형 등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배터리 모양을 직접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폭스바겐 역시 유럽 스타트업 기업과 각형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구상을 세웠는데, 애플-폭스콘의 관계처럼 자신들이 관계를 주도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향후 5년여간 전기차 시장은 배터리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며 "그 이후 전기차가 진짜 주류가 되면 폭스바겐, 현대차, 테슬라 등도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생산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배터리 업체가 단기적으로는 기술개발과 가격 경쟁력 강화를 통해 변화에 대응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자동차 회사와 완전히 협력하거나 완전히 결별하거나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라며 "전기차 제조 장벽이 워낙 낮아 LG·SK 브랜드를 단 자동차를 직접 만드는 식으로 경계가 허물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등 수요가 많은 시장의 분위기 또한 배터리 모양 경쟁의 변수로 꼽힌다. 폭스바겐의 이번 발표 또한 자신들의 매출 40% 이상이 중국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 배터리 회사인 CATL이 각형을 채택하고 있어 중국에서의 전기차 사업을 고려했다는 해석이다.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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