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 물밑선 ‘소리 전쟁’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3.22 15:28

주행 소음 없어 사고 위험…음향 발생기 장착 의무화 추세에 기술 경쟁



외부 음향 발생기 하드웨어 시장·개성 있는 소리 내는 음원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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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 5.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글로벌 전기차 판매가 급성장하면서 가상 배기음 관련 시장이 태동하고 있다. 배기음이 없는 전기차는 음향 발생기를 장착하는 게 의무인데,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기술경쟁이 펼쳐지고 있고, 소프트웨어 쪽에서는 개성 있는 음향을 만들기 위한 두뇌싸움이 한창이다. 전기차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며 ‘소리 전쟁’까지 발발하는 모양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는 엔진이 없어 시동을 걸거나 저속으로 주행할 때 소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일정 속도 이하에서는 전기모터만 사용하는 하이브리드차도 마찬가지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정숙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변 보행자는 이를 알아채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요국들은 전기차에서 일정 크기 이상의 가상 배기음이 발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LMC오토모티브는 하이브리드차를 포함한 글로벌 전기차 시장 규모가 올해 1000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내년 1340만대, 2025년 2550만대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 1000만대 시장이 형성돼 있다 보니 완성차 기업들은 이미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부분 하드웨어 분야에서 음향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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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 연구원이 외부의 전파와 음향이 차단된 전파무향실에서 그릴 커버를 활용한 가상 엔진 사운드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모비스가 세계 최초로 전기차 그릴 커버를 이용한 가상 엔진 사운드 시스템을 개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기차는 전면부가 완전히 막힌 형태인데, 여기에서 착안해 커버 자체를 스피커의 구성품으로 활용한 것이다. 완성된 스피커 형태로 차량 내부에 장착되던 기존 제품을 차량 앞 부분에 위치한 그릴 커버 뒷면에 반제품 형태로 붙였다. 현대모비스는 이 시스템을 활용해 가상 엔진음뿐만 아니라 방향지시등 소리나 충전상태 알림음 등 기능도 낼 수 있게 했다. 캠핑 등 외부 활동 시에는 음악을 재생시키는 스피커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일본 닛산은 시속 30㎞ 미만에서 소음으로 인식되지 않는 주파수(600㎐∼2.5k㎑)를 발생시키는 기능을 전기차에 장착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64㎞/h 미만 속도에서는 수동으로 음향을 발생시킬 수 있는 기술을 쉐보레 볼트에 장착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이날 펴낸 산업동향을 통해 전기차 음향 발생기 시장이 의무 장착 법제화에 따라 전기차 시장과 동반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많은 완성차 업체들은 가상 음향 발생기를 개발해 장착하고 있으며 산·학·연을 중심으로 관련 기술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게 연구원 측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음원 시장 경쟁도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제조사들이 단순히 소리를 내는 방법을 넘어 ‘어떤 소리’를 낼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양재완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전기차 음향 발생기 시장은 장착 의무화에 따라 전기차 시장과 동반 성장할 전망이며, 보행자 경고 외에 개성 있는 사운드나 운전 보조 등 차별화된 기능이 확대 적용될 것"이라며 "전기차 음향 발생기에는 보행자 경고 외에 개성 있는 사운드나 운전 보조 기능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실제 테슬라의 경우 작년 말 전기차에서 내는 가상 배기음을 운전자가 설정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업데이트했다. 일단은 염소, 박수, 방귀, 노래 소리 등을 테슬라가 제공하는데 향후 그 종류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BMW는 한 술 더 떠 ‘스타 마케팅’까지 펼치고 있다. ‘21세기 베토벤’으로 불리는 작곡가 한스 짐머와 전기차 전용 소리를 제작 중이다. BMW는 다양한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콘셉트카를 내놓으며 주행음을 조금씩 소개하고 있는데, 향후 브랜드만의 소리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차그룹 역시 가상 사운드 영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듣기 좋은 엔진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유명한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등 소비자의 감성적인 부분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릴 커버를 활용한 시스템을 개발한 현대모비스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모집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가상 사운드의 ‘음원 시장’이 향후 소비자 니즈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파생될 것이라고 본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자신만의 색깔을 나타낼 수 있는 음악이나 사운드를 선택하는 운전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소음으로 인식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탑승자 취향에 따라 프리미엄·스포츠카 엔진음, 사운드스케이프 등을 다운로드해 개성 있는 사운드를 구현하고 고속 주행시 음향 발생기로 고주파를 발산해 로드킬 방지나 벌레 퇴치 등 운전 보조 기능을 구현하는 차별화된 기능이 확대 적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운전자들은 전기차 시대가 오더라도 그 특유의 사운드를 원할 것이다. 내연기관 시대에는 배기음 소리가 단순히 주행 감성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표현이 자유로워진 전기차 시대에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것"이라며 "음향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소리 디자인’ 산업에 다양한 기업들이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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