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에너지정책 백년대계 세워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4.08 09:49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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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장

"2000년 이후 고교 졸업생의 격감은 우리의 고등교육체계에 큰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일부 경쟁력 없는 대학 혹은 전문대학의 경우 도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최근에 발표된 글이 아니다. 1994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보고서에서 경고한 메시지다. 인구추계를 바탕으로 한 학령인구와 대학정원을 비교해보면 명약관화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1995년부터 대학 설립 기준을 완화하면서 수많은 사립대학과 전문대학이 설립되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올 대학입시에서 보다시피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백년대계의 교육 정책이 졸속으로 시행되면 그 피해는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되는 것이다. 미래의 위기는 이미 과거에 시작된 것이다.

혹자는 올해의 대학정원 미달이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영향이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취업경쟁력 제고에 기여하지 못하는 고등교육기관의 존재와 이로 인한 대졸자의 취업한파 문제는 코로나19 예전부터 존재했다. 그동안 애써 감추어왔거나 무시해왔던 문제점이 코로나19로 인해 여실히 노출되었을 뿐이다.

지금의 전력산업 정책이 세밀하게 수립되어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 시스템이 돌아가는 데 있어서 동맥의 역할을 하는 발전부문의 체질 변화는 미래 세대가 직면하게 될 경제적 조건과 기후환경 여건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 강의시간에 학부생들에게 ‘탄소중립’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탄소중립의 개념을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른 바, 넷제로가 의미하는 것처럼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는 강한 조건에서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이들 학생들이 필자의 지금 연령 정도에 도달하는 2050년에 우리나라는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즉, 작금의 탄소중립 정책의 결과는 이들 젊은 세대가 미래에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정책이 성공한다면 미래 세대 후생이 증진될 것이며, 실패한다면 미래 세대의 희생이 따르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탄소중립 정책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할 책임이 우리 기성세대에게 있다고 본다. 온실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어떠한 성장 정책을 포함하고 있는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집중하는 것만큼이나 국가적 규모의 자본축적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가. 글로벌 사회의 노력 부족으로 1.5도 상승 제한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기후재난에 정부가 충분히 대응할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가. 코로나19와 유사한 규모의 기후위기가 발생할 경우 과연 국가가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을까. 온실가스 배출 넷제로를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탄소포집활용저장(CCUS)이나 수소기술, 지오엔지니어링과 같은 분야에 대규모 자본이 투자될 수 있는가. 원자력 발전 옵션을 제외하고 재생에너지의 확대로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을까. 아직은 대부분 수입산에 의존하는 태양광과 풍력의 국내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갖추어 나갈 계획인가.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대체하기 위해 확대되어야 하는 재생에너지에서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가.

탄소중립 정책은 긴 안목으로 차분히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탄소중립을 선언한 미국, 일본 역시 장기비전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구속력있는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만일 올해 2021년에 수립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위에서 예로 든 질문 리스트에 대한 고민도 담겨야 할 것이다.

마지막 질문만 해도 그렇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하면 2034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77.8GW 들어설 전망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태양광과 풍력발전 설비가 약 500에서 700GW 필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2035년부터 매년 약 40GW만큼 신규 설비가 들어와야 하는데, 이는 현재 설비규모인 20GW의 두 배에 해당한다. 수명이 약 20년인 재생에너지 특성 상 매년 막대한 폐기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인구감소로 재정난에 처하는 대학 위기를 충분히 예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수를 무리하게 확장한 사회적 손실을 우리는 경험하였다. 이와 유사한 시행착오를 미래세대의 후생이 달린 탄소중립 정책에서 반복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성철환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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