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분쟁’ 매듭···LG 돈·명분 얻고 SK는 미래 찾았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4.11 15:33

韓美 정부 압박 부담된 듯...‘의미 없는 소모전’ 여론 압박도 한 몫



LG 생산 설비투자 여력 생겨...SK는 美 조지아 공장 가동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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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 연구원들이 전기차용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배터리 분쟁’이 일단락되면서 LG에너지솔루션은 돈·명분을, SK이노베이션은 미래 성장 가능성을 확보하게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양측이 극적으로 합의한 배경은 한국·미국 정부와 여론의 압박 등 외부 요인에 있지만,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K 배터리 신뢰 회복’이라는 숙제는 각 사가 스스로 풀어내야 할 전망이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LG와 SK가 폭발 직전까지 진행된 ‘배터리 분쟁’에 극적 합의하게 된 데는 한국·미국 정부의 압박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국제무역위원회(ITC) 최종 결정 이후 백악관을 대신해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검토해왔으며, 막판까지 양사의 합의를 강력하게 종용했다고 전해진다.

미국 정치인들은 자국 경제에 타격이 큰 만큼 양사가 합의해 달라는 서신을 작년 말 신학철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앞으로 보내기도 했다. 미국 행정부 입장에서는 합의를 유도해 조지아주 일자리에도 타격을 주지 않고 지식 재산권을 강조해온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론을 훼손하지도 않은 셈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 2월 ITC 최종 결정을 앞두고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합의를 촉구했다. 정 총리는 당시 "정말 부끄럽다"고 언급하며 양사의 분쟁에 실익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한미 안보실장 회의에서도 LG-SK 분쟁을 끝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알려졌다.

글로벌 최대 완성차 기업인 폭스바겐이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하는 등 대외환경이 변화한 것도 ‘K 배터리 내전’을 끝내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기업끼리 비방전을 펼치는 동안 글로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최근 전기차 중장기 비전을 발표하며 배터리 자급률을 80%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선언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폭스바겐은 지난 2월 ITC가 SK이노베이션 배터리의 미국 수입 금지를 결정하자 크게 반발한 바 있다. 현지에서 SK 배터리를 공급받아 전기차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포드 역시 ‘K 배터리’의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양측이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LG는 돈·명분을 얻고 SK는 사업을 확장할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현대차 코나 전기차의 배터리 전량 리콜이 결정되며 작년 4분기 영업적자로 돌아서는 등 재무 구조에 타격이 큰 상황이었다. 공장 증설을 위해 상장과 자산 매각 등을 저울질하는 와중에 거액의 합의금을 손에 쥐게 된 셈이다.

소송이 끝났다는 사실 만으로 얻는 이익도 상당하다. LG와 SK는 2년여간 미국에서 난타전을 벌이며 로펌 고용, 소송 비용 등에 최대 1조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LG 입장에서는 SK의 제안을 받아들여 의미 없는 소모전을 대승적 차원에서 중단했다는 명분도 얻게 될 전망이다.

SK의 경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ITC결정에 따라 10년간 미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수 없고 현지 첫 배터리 공장인 조지아주 공장도 가동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SK는 이미 조지아 1·2공장에 1조 5000억원을 투자한 상태다.

SK는 그간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ITC소송 항소, 미국 델라웨어 연방법원 손해배상 소송을 계속한다는 방침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에 따라 얼마가 걸리지 모르는 소송을 이어간다는 것 자체도 이익보다는 손실이 크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LG와 SK의 향후 관건은 이번 분쟁으로 실추된 ‘K배터리’의 위상을 되찾는 작업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폭스바겐, 포드 등 ITC 판결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회사뿐 아니라 미국·유럽에서 전기차를 만드는 상당수 완성차 기업들이 이번 소송전을 눈여겨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사를 만들 정도로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었다.

국내 기업들이 전쟁을 펼치는 동안 글로벌 경쟁사들이 힘을 길렀다는 점은 부담이다. 중국 CATL은 최근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 뿐 아니라 상품성까지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경쟁 상대로 여겨지지도 않던 유럽 배터리사 노쓰볼트가 폭스바겐을 등에 업고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압박도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LG와 SK가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에 써야 할 시간·자금을 엉뚱한 곳에 허비했다는 강도 높은 비판도 나온다.

LG가 손에 쥐게 될 현금을 어떤 생산라인 확보에 투입하는지도 주목할 지점이다. 반대로 재무적으로 부담을 느끼게 된 SK가 공장 증설과 고객사 확보를 동시에 해나갈 수 있을지 역시 관전 포인트다.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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