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2주년 기획] 금소법 두달, "집에 간 고객 불러 다시 녹취…대면보다 비대면 가입 권유"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5.25 14:55

3월 25일 금소법 시행…판매·대기시간 지체

청약철회권 남발…대출 계약 취소 급증

"현장 고충 반영한 가이드라인 나와야"

은행

▲서울 시내의 한 은행 대출 창구.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송두리 기자]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 지 두 달이 지나고 있지만 현장에서의 혼란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금소법 시행으로 강화된 녹취 의무를 지키기 위해 투자상품 가입 때 시간이 지체되는 등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청약철회권에 따라 대출을 계약한 후에도 상환 수수료 없이 계약을 무를 수 있어 단기간에 대출을 취소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25일 금융권 관계자들은 지난 3월 25일 금소법이 시행된 후 두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업 현장에서 혼선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금소법은 모든 금융상품에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준수,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 과장광고 금지 등 6대 원칙을 적용해 금융사가 상품을 판매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고 있다. 6대 원칙을 어길 경우 판매회사에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되고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 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 제재도 받을 수 있다.

먼저 금융권에서는 금소법 시행 후 금융사의 투자상품 판매가 깐깐해진 점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들었다.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사들은 불완전판매 소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펀드 등 투자상품 판매 때 녹취를 하고 있다. 상품 설명 등 전 과정을 녹음해 상품 판매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금융위는 "설명의무가 설명서를 빠짐 없이 읽으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으나, 금융사들은 향후 오해의 소지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더욱 엄격하게 판매 과정을 준수하고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현재 사실상 예·적금 상품을 제외하고 펀드 등 투자상품을 판매할 때 모두 녹음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적은 액수의 펀드를 가입하더라도 녹취가 진행되기 때문에 판매 시간도 길어지고 다른 고객들이 영업점에서 대기하는 시간도 길어졌다"고 말했다.

녹취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고객에게 재방문을 요청해 다시 녹취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상품 판매를 하면서 녹취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있어 집에 돌아간 고객에게 다시 연락해 재녹취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 빠르게 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 방법은 영업점이 아닌 비대면 채널로 가입하는 것"이라며 "금소법에 맞춰 상품을 가입할 수 있도록 모바일 앱을 개선해 둔 상태라 비대면 채널을 이용할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투자상품 판매 과정이 까다로워지고 향후 판매 책임 문제도 발생할 수 있어 직원들의 상품 가입 권유와 가입 실적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향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투자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지는 않고 있다"며 "펀드 등 판매 실적이 한동안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판매를 독려하는 분위기도 아니다"고 말했다.

금소법에서 신설된 청약철회권을 남발하는 경우도 늘었다. 예를 들어 대출 계약의 경우 중도상환수수료를 내지 않고 14일 이내 대출 철회가 가능해져 대출을 받고 단기간에 대출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실제 지난달 SKEIT 공모주 청약 이후 대출을 취소한 건수는 약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간 돈을 빌렸다가 쉽게 계약을 무를 수 있는 만큼 금융사의 인력, 비용 낭비와 함께 청약철회권을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0일부터는 고난도 상품에도 청약철회권을 허용해 금융권에서는 혼란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금소법 시행 후 부작용이 발생하자 ‘금융회사 애로사항 신속처리 시스템’을 운영하며 현장과 소통을 지속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 ‘금소법 시행상황반’을 운영하며 금소법 안착 상황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지원하겠다고 했다. 금융권 권역별 협회에서는 9월 25일부터 시행되는 소비자보호내부통제기준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표준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소법이 취지에 맞게 현장에서 안착되기 위해서는 현장 고충을 잘 이해하고 반영해 시행해야 한다고 본다"며 "아직 금융당국에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아 혼란이 더 큰 것 같은데,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면 그에 맞춰 판매 체계를 개선하려고 한다"고 했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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