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안전불감’ 행정으론 산재 못 줄여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6.28 10:17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서울과기대 교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지난해 1월 원청 책임과 처벌 강화를 대표브랜드로 내건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김용균법)이 시행됐지만,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가 줄기는 커녕 오히려 증가했다. 산재예방 인원과 예산이 대폭 늘어난 상황에서의 성적이어서 김용균법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기업으로 치면 유례없이 큰 적자가 발생한 셈이다.

이 실적은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한 형사처벌, 과태료 등 제재가 크게 늘어나는 등 어느 때보다 기업에 큰 비용을 치르게 하면서 나온 실적이어서 시스템 자체가 고장 난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사고가 발생한 후에 조잡한 법규제를 급조하는 잘못된 뒷북행정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재예방시스템을 개선하여 법규제의 품질을 높일 생각은 하지 않고 인력과 예산을 늘리는 방식에 여전히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김용균법이 산업재해 감소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산재예방의 철학과 원리를 따져보지 않고 보여주기식의 실효성 없는 규제를 양산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실효성과 체계성의 관점에서 보면, 김용균법은 김용균 ‘없는’을 넘어 김용균을 ‘무시한’ 법이라고 명명하는 게 어울릴 정도로 엉성하고 미흡하다. 금년 1월 졸속으로 제정한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처벌에만 올인하느라 김용균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기는 커녕 악화시켜 놓았다.

산재예방시스템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처벌과 거친 규제만 강화하면 산업재해가 줄어들 듯이 접근하는 것은 산업재해의 성격과 발생양상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 산업재해는 일반형사범과 달리 수범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예측하고 현실적으로 준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일은 소홀히 하면서 처벌과 무분별한 규제를 만능의 보검인양 여기는 것은 산재예방행정의 존재이유를 몰각하는 것이자 무책임한 태도이다.

산업안전규제의 규범력은 추락할 대로 추락하였다. 기업현장에서는 법은 지키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폼’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냉소적 반응이 만연돼 있다. 법규제가 난마처럼 꼬일 대로 꼬여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진정성과 전문성이 없는 산재예방 ‘먹튀행정’이 낳은 심각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질 낮은 처벌과 규제를 강화한들 과연 산재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요행수를 기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효성 없는 산업안전법규제를 양산하는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는 기업의 안전관리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최근 광주 철거건물 붕괴사고도 규제의 부족 문제가 아니라 많은 규제가 있었음에도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정부가 앞다투어 규제를 양산했지만, 재해예방의 실효성이라는 염불보다는 ‘묻지 마 규제’와 권한을 늘리는 잿밥에 관심이 많다 보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복잡다단하고 구조적 요인을 지닌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색내기용 대책으로 접근해서는 김용균법처럼 문제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만든다. 대책을 만들 때는 무엇보다 진정성과 전문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 아무리 거창한 대책을 수립한들 수범자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신뢰를 받지 못하는 무책임한 행정으론 산업재해를 줄일 수 없다.

정부가 중대재해 줄이기에 진정성이 있다면 법규제를 잘 준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실효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사물의 변별능력을 제대로 갖춘 자조차도 무엇을 어떻게 준수해야 할지 알 수 없고 실효성에 눈감은 불합리한 규제로는 범법자만 양산하고 많은 사회적 비용만 초래할 뿐 산업재해를 줄일 수 없다.

일찍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기업의 안전문화 조성을 위해서는 규제기관의 안전문화부터 조성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정부가 곱씹어 보아야 할 말이다. 후진적인 산재예방행정하에선 안전일류기업이 탄생하기 어렵다.

많은 국민들은 산재예방행정이 존재하는 이유를 묻고 있다. 이제 정부가 행동으로 답해야 할 때이다.

성철환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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