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도 좋지만...'돈 되는 사업'도 접어야 하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7.06 14:26

"석유화학·철강 등 주력사업 경쟁력 훼손 우려"...재계서 속도조절론



준비 덜됐는데 정부 ‘묻지마 개입’···탄소배출권 대란 등 부작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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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한화건설이 제주도에 만든 25MW급 제주 수망 풍력발전단지 전경.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5년간 30조원을 투자해 회사 체질을 완전히 바꾸겠습니다."

김준 SK이노베이션이 총괄사장이 지난 1일 회사 중장기 비전을 발표하는 ‘스토리데이’ 자리에서 한 말이다. 기존 사업 대신 친환경 에너지·소재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게 요지다.

 

재계는 대한석유공사의 정신을 이어받은 SK이노베이션이 주력인 정유산업에서 사실상 발을 빼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글로벌 최상위권의 경쟁력을 지닌 ‘수출 무기’가 탄소중립이라는 아젠다에 묻혀버리면서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탄소중립 실현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재계 일각에서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석유화학, 철강 등 불가피하게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이 우리 경제의 근간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산업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현실화를 목표로 저마다 중장기 계획을 짜고 있다. 탄소중립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적인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기업들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작년 9월 ‘2050 탄소중립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화학 회사들도 탄소중립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차그룹, SK그룹, 포스코그룹, 효성그룹 등이 지난달 ‘수소기업협의체’를 결성한 것도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실천을 위한 첫걸음이다.

SK이노베이션이 현재 자사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유업을 놔두고 그린수소·배터리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다소 부정적인 신호로 해석하는 모습이다. 최소한의 자본을 투입해 최대한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 활동에 ‘탄소중립’이 일종의 족쇄가 될 수 있어서다. 특히 목표 실현을 위해 정부가 기업에 각종 규제안을 제안할 경우 글로벌 시장 내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고, 특히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발전 등 분야는 산업 특성상 체질 개선도 쉽지 않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들은 규제가 심해지면 번 돈의 대부분을 배출권 구매 등으로 토해내야 할 것"이라며 "(탄소배출이 많은 업종은)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녔거나 국가 기반 산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 포인트"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한 편에서는 개별 회사가 탄소중립 목표를 차근차근 세울 수 있도록 정부가 여유를 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의 섣불리 개입하면 탄소배출권 거래 가격이 크게 요동쳤던 지난달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지난달 중순까지 t당 1만5000원 수준에서 거래되던 탄소배출권 가격은 갑자기 9700원까지 떨어졌다가 말일에는 1만6000원을 넘어서며 급등락했다. 당초 6월까지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경매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환경부가 난데없이 입찰공고를 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환경부가 일부 업체에게 탄소배출권을 강제로 매수하도록 압박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원자력발전소 가동률을 높이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탄소중립의 핵심은 화석 연료 대신 친환경 에너지 사용량을 늘리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기후 여건상 태양열, 풍력 등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가 있다. 원자력발전소는 탄소 배출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어 탄소중립 실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원전을 폐쇄하고 화력 발전소를 없앤 뒤 기업에 탄소 사용료를 비싸게 부과해 탄소중립을 실천하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우리 산업의 경쟁력 자체를 크게 훼손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탄소중립은 하루아침에 달성할 수 없는 목표기 때문에 기업들은 구체적이고 치밀한 로드맵을 마련해 차근차근 접근해야 한다"며 "진정성 없이 허황된 구호만 제시하거나 (유행을 따라가다) 본업 경쟁력을 훼손하면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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