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수표' 청약제도로 '부적격자' 양산… "선의의 피해 구제해야"

손희연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7.05 15:49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약제도 20번이나 개정돼



청약 부적격자 매번 발생해 ‘무순위 청약(줍줍)’ 잇따라 진행



쌍문역시티프라디움 무순위 청약 156.7대 1의 경쟁률 기록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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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손희연 기자] #K씨는 지난해 말 경기도 한 분양 단지에 당첨됐으나 청약가점 계산의 오류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무주택 기간은 청약자 본인과 배우자가 주택 없이 지낸 기간을 재는데, 청약자의 주택 소유 경험 유무와 30세 이전 혼인 유무에 따라 무주택 기간을 산정하는 기준일이 달라진 걸 모르고 잘못 계산했기 때문이다. K씨는 실수로 부적격 판정을 받아 새아파트 꿈이 날아가자 허탈해하고 있다.

#H씨는 올해 2월 경기도 의정부의 한 분양단지 신혼부부 특별공급(신혼 특공) 청약에 당첨됐지만, 부적격자로 청약이 취소됐다. 신혼 특공은 우선공급(전체 물량의 70%)과 일반공급(30%)로 나뉘는데, 이때 부부 합산 소득은 세전 소득을 기준으로 한다. 육아 휴직 기간은 소득 계산에서 제외해야 하는데, 육아 휴직 전 정상 소득이 아닌, 육아 휴직 기간까지 모든 소득을 합쳐서 잘못 계산해 부적격자가 됐다. H는 청약가점 산정이 너무 복잡한 것 아니냐면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이후 청약제도가 무려 20번이나 바뀌었다. 정부가 시시때때로 청약제도를 땜질식으로 변경해 ‘난수표 청약제도’를 만들어내면서 청약 부적격자 속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복잡한 청약제도로 청약 부적격자가 생겨나면서 최근 서울과 수도권 분양단지에서는 ‘무순위 청약(줍줍)’ 물량까지 대거 생겨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청약 접수 후 부적격자가 되면 최대 1년간 청약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자 시장에선 혼란만 키워놓고 규제만 한다며 볼멘소리가 나온다.

5일 건설·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청약제도가 담긴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시행 횟수 기준)이 20번이나 개정됐다.

청약제도가 20번이나 바뀌는 동안 부적격자는 속출하고 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무주택청약자 당첨자는 총 109만9436명이었다. 이 가운데 10.2%에 해당하는 11만 2553명은 ‘부적격’으로 당첨 취소 통보를 받았다. 가장 많은 사유는 ‘청약가점 오류’(71.3%)로 입주 자격을 잘못 알았거나 입력 오류가 있는 경우다. 이어 재당첨 제한(12.9%), 무주택세대 구성원 중복청약(5.4%), 특별공급 횟수 제한(4.7%) 순으로 집계됐다.

서울 등 수도권에 위치한 단지에서는 대부분 청약 부적격자가 발생해 잔여 물량이 나오면서 무순위 청약(줍줍)을 줄줄이 진행 중이다.

최근 대우건설은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 아파트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해당 단지는 지난 5월 실시된 1순위 해당 지역 청약에서 평균 2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다만 부적격 물량 등으로 무순위 청약을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순위 청약 물량은 전체물량(281가구) 중 68가구이다.

지난달 시티건설의 ‘쌍문역시티프라디움’의 경우에도 전체물량(112가구) 중 31가구를 무순위 청약했다. 해당 단지는 1순위 청약에서 평균 5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청약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부적격자가 발생해 무순위 청약접수를 받았다. 31가구 모집에 4858건의 청약이 접수돼 156.7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5월에는 SK건설의 ‘보라매 SK뷰’ 무순위 청약에는 전용면적 84㎡ 2가구(2·7층) 모집에 913명이 몰려 경쟁률 457대 1을 기록했다. 경기 과천에서는 과천위버필드(과천주공2단지 재건축)와 과천자이(과천주공6단지 재건축)의 전용면적 59·84㎡에서 각각 10여가구의 무순위 청약 물량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잇따른 청약제도 개편에 대해 시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피로감만 쌓일 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있다. 청약제도에서 청약 자격 요건이나 가점 항목, 1순위 기준 등 관련 내용이 너무 많이 바뀌다 보니, 복잡하고 어렵다는 지적이다. 청약제도가 자주 바뀔수록 부적격 당첨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난수표 같은 청약제도로 인해 내 집마련을 꿈꾸는 예비청약자들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청약 당첨 후 부적격자로 판정이 되면 내 집 마련의 시기나 기회도 늦어진다. 부적격자가 되면 수도권 및 투기·청약과열지구의 경우 1년간, 다른 지역은 최대 6개월간 청약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에 시장 전문가들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청약제도를 간소화하게 만들고, 현행 시스템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분양업계 한 전문가는 "정부가 청약제도를 너무 자주 변경하니, 내용도 어렵고 복잡해 시장에서는 부적격자가 속출할 수 밖에 없다"며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청약제도를 간소화하고 단순 실수에 따른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약접수 시 입주자자격 등 정보를 자동화해 사전에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 설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on90@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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