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역설’…아직 본격 폭염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전력 비상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7.14 18:30

아직 폭염 오지도 않아…7월 초중순에 공급예비율 한자리수 ‘이례적’



월성1호기 조기폐쇄, 신한울1호기 늑장 가동 허가, 한빛 4·5호기 정비 지연, 신고리 5·6호기도 당초 2021년 3월 준공예정



9차 전기본 수요예측도 엉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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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아직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전력난 우려가 커지자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결국 후폭풍을 맞았다는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4일 전력거래소의 실시간 전력수급 현황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50분 현재 최대 전력수요는 8만8632MW를 기록 했다. 전날 최대 전력수요 8만7795MW보다 837MW 많았다. 다만 이날 최저 전력공급 예비율은 10.11%를 보여 두 자릿수를 턱걸이 했다.

전날 최저 전력공급 예비율이 9.45%로 한 자릿수를 보여 1년 11개월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날 최대 전력수요가 전날보다 많았음에도 최저 전력예비율이 가까스로 두 자릿수를 방어한 것은 전력공급능력이 9만7591MW로 전날 9만6125MW보다 1466MW로 늘었기 때문이다.

이날 전력공급능력이 전날과 비슷했다면 전력공급 예비율이 이틀째 한 자릿수를 나타냈다는 뜻이다. 7월 초중순에 하루 최저 전력공급 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가장 최근 여름철 공급예비율이 10%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18년 7월 24일 (8%, 9247MW), 2019년 8월 13일 (7%,9031MW), 2020년 8월 26일(10%,8909MW)이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14일 오후 2시20분 기준 전력수요는 8693MW를 기록했다.

문제는 당시보다 열흘 이상 빨리 수급 경보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앞으로 최대전력수요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기상청에 따르면 다음주 후반부터 장마가 소강기에 접어들며 곧바로 강한 폭염이 시작될 전망이다. 올해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했던 2018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더울 가능성도 있다. 기상청은 "18~19일까지 비가 내린 뒤 20일 전후로 점차 장마철에서 벗어나고, 이후엔 강한 폭염이 찾아올 것으로 관측된다"며 "올해 여름은 역대 최악의 폭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2018년 여름만큼 더울 가능성도 있어, 전력수급이나 온열질환 등에 대해 사전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수요 과소예측과 이에 따른 가동 원전 부족이 아니었다면 수급비상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수급 비상을 대비해 4.6GW 규모의 수요자원반응(DR)시장에 손을 내밀었다"며 "월성1호기(600MW) 조기폐쇄, 신한울1호기(1400MW) 늑장 가동 허가, 한빛 4·5호기(2000MW) 정비 지연이 아니었다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신한울 1호기는 운영 허가를 받아 이달 가동을 시작했어야 하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비행기 충돌 위험,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 등을 이유로 가동 허가를 불허하다 최근에야 운영 허가를 받았다.

연료 장전과 시운전 등을 거쳐 내년 3월에야 본격 가동할 수 있어 이번 폭염 때는 전력수급에 기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한빛 4호기는 2017년 5월부터 4년 넘게, 한빛 5호기는 지난해 4월부터 1년 넘게 정비를 이유로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이번 여름은 넘어간다고 해도 앞으로도 전력수요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신고리 5·6호기 원전은 당초 2021년 3월, 2022년 3월 준공을 앞두고 있었지만 현 정부가 공사를 중단한 여파로 각각 3년씩 일정이 미뤄졌다.

이에 지난해 1년을 연기해 수립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산업부는 지난해 말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발전을 대폭 축소하고 액화천연가스(LNG)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를 골자로 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을 확정했다.

수립 후 2주도 안된 올해 1월 11일 한파로 인해 최대전력수요가 예측치를 뛰어넘었고 공급예비율이 10%아래로 떨어진 바 있다. 에너지 업계에선 당초 일정보다 1년이나 늦어졌음에도 전기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전력 소비 증가 요인이 전력수요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지 않았고, 코로나 사태를 반영해 전력수요를 너무 낮춰 잡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워킹그룹 초안과 비교하면 최대전력수요 예상치가 1.7GW 낮아졌다. 당시 계획 수립에 참여한 원자력계 전문가는 "정부가 탈(脫)원전·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전력 수요를 낮춰 잡은 탓에 수요 예측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산업부 측은 "전체 전력수요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경제성장률과 인구 변동이란 두 요인을 종합적으로 다 고려해 산출했다"며 "4차 산업혁명 영향을 반영하려고 여러 방법론을 고민했지만 정량화하는 게 당장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코로나19 피해 회복에 따른 산업생산 증가와 예상외의 폭염에 의한 전력수요 증가를 예견하지 못했다는 산업부의 변명은 옹색하다"며 "작년 여름 전력수요가 코로나19 사태와 잦은 호우로 예년보다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음을 고려하면 올여름 전력수요 증가는 삼척동자도 예상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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