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코로나 기업환경 급변하는데···‘총수 부재’ 삼성은 침묵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7.15 16:34

격변의 시기에 현금 100조 쌓아 놨지만 신사업 투자 결단 못내려



반도체 초격차 등 위상도 흔들...'삼성의 위기는 국가경제의 위기'



다른 대기업들은 총수 결단에 조단위 투자 척척...삼성 동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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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재계 주요 그룹사들이 신사업 확장과 체질개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총수 부재’로 리더십을 잃은 삼성그룹이 나홀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현대차, SK, LG 등이 배터리, 수소, 우주, 인공지능(AI) 등 미래 기술에 과감한 투자를 결정할 동안 삼성은 오히려 반도체, 스마트폰 등 주력 분야에서의 존재감마저 잃어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고객들의 소비 패턴이 크게 바뀐 데다 ‘ESG경영’ 등을 화두로 기업을 바라보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눈높이도 달라진 만큼 삼성그룹 리더십 공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국내 재계 1위 ‘삼성의 위기’는 곧 ‘국가 경제의 위기’로 이어지는 만큼 청와대의 과감한 결단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10대그룹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각종 사업 재편과 인력 구조조정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로봇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마무리지었다. 여기에 베팅한 금액만 11억달러(약 1조 2000억원)에 달한다. 전기차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미국 생산시설 확충에 8조원을 투자하는 안도 조율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리더십을 바탕으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친환경차 등 신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그룹은 ‘탄소중립’과 ‘수소경제’ 등을 키워드를 삼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세계 최초로 ‘청록 수소’ 양산에 성공한 미국 모놀리스에 투자하며 전략적 파트너 지휘를 확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SK그룹의 뿌리 역할을 해온 SK이노베이션은 새출발에 가까운 미래 계획 청사진을 이달 초 내놨다. 향후 5년간 30조원 투자해 ‘탄소에서 그린으로’ 회사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게 목표다. 재계에서는 국내 산업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이 수십조원대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사업 중심축을 완전히 이동하기로 결정한 배경에 ‘총수의 결단’이 있었다고 해석한다. SK그룹이 최태원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발 빠르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LG그룹은 LG전자의 모바일 사업 철수와 전장 분야 합작법인 설립 등을 동시에 진행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20년 넘게 회사 주력 사업 역할을 해온 분야를 과감하게 없애고 성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분야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주력 계열사인 LG화학은 지난 14일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면 수정하겠다고 선언하며 2025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현재 30건이 넘는 인수합병(M&A), 조인트벤처(합작사) 설립 등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도 알렸다.

포스코그룹, 현대중공업그룹, GS그룹 등은 수소를 비롯한 차세대 에너지 기술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우주·항공, 방산 등에 공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새 먹거리를 찾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이커머스 업체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3조 4000억원을 베팅하는 등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재계 1위 삼성그룹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올해 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리더십 부재’ 상황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구속되자마자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조 단위 인수합병(M&A)이나 신사업 진출 소식이 끊긴 상태다.

삼성그룹은 앞서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 등 각종 재판을 받는 4년 여간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있었다. 다만 내부에서는 최근 리더십 부재를 이전과 전혀 다른 수준의 악재라고 여긴다고 전해진다. 2021년이 코로나19, 미국 중국간 무역분쟁 등 대내외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격동의 시기’라는 이유에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고객들은 소비 패턴에 변화가 생겼고 제조사들은 무역장벽 등 각종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며 "유럽에서 탄소국경세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고 ‘탄소중립’, ‘ESG 경영’ 등이 부각되는 등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재계에서는 삼성을 제외한 10대 그룹이 각종 신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것을 두고 ‘총수의 힘’이 느껴진다는 해석이 나온다. 변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상황에 수십조 원대 매출을 올리는 본업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선택은 강력한 리더십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분야에서도 ‘초격차’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하는 미국 마이크론은 올해 초 4세대 D램 양산을 공식화하며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위협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극자외선(EUV) 공정을 활용한 10나노미터급 4세대 D램 양산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의 뚝심을 앞세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90억달러(약 10조 2000억원)를 들여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결정하기도 했다.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삼성전자의 영향력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점유율 1위인 대만 TSMC가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호흡하며 생산시설을 무섭게 늘려가는 반면 삼성전자는 이미 정해놓은 투자 계획도 선뜻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TSMC는 류더인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향후 3년간 1000억달러(약 111조원)를 공장 증설에 쓰겠다는 구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쟁사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펼치는데 현금성 자산을 100조 원 넘게 쌓고 있는 삼성전자는 나홀로 곤두박질치고 있다"며 "수십조 원대 대규모 투자는 전문경영인 수준에서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짚었다.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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