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탄소중립위원회의 중립성을 기대한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07.19 10:03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박주헌교수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바람으로 자동차가 달리고, 휘황찬란한 서울의 밤거리를 태양으로 밝힌다. 공장 굴뚝은 사라진지 오래다. 당연히 미세먼지 따위는 없다. 하늘은 늘 청명하기만 하다."

꿈같은 세상 같아 보이지만, 우리가 30년 안에 이루고 싶어 하는 탄소중립세상이다.

꿈은 거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통령도 탄소중립위원회 축사에서 강조했듯이, 탄소중립은 한계돌파형 기술혁신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몽상일 뿐이다. 과학 기술 개발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꿈은 이루어지겠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자신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낙관주의에 빠져 꿈같은 미래 계획만 늘어놓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그렇다고 그저 꿈이 이루어지기만 학수고대한 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편으로는 시선을 미래에 두고 꿈을 이루기 위한 연구개발 노력을 지속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현실에 발붙이고 탄소중립화에 기여할 수 있는 실용적 정책 개발을 게을리 해서는 결코 안 된다.

탄소중립을 위한 실용적 정책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산업자원부가 진퇴양난이다. 산업부가 부여받은 두 개의 국정목표인 탄소중립과 탈원전을 동시에 실현시킬 실용적 방안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전은 최소한 현재 시점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유력한 실용적 대안임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당연히 원전 없는 현실적 탄소중립 방안이 있을 수 없다. 독일을 제외한 선진국 중 탄소중립 방안으로 원전을 포기한 나라가 없다는 사실이 증거다. 그럼에도 이념의 도그마가 되어버린 탈원전으로 말미암아 원전 없이 현실적 탄소중립 전략을 짜야 하는 산업부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받아드리기 어려운 해괴망측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신한울 1·2호기 운영허가 지연, 3억 그루 벌채 탄소중립, 재산권 분쟁 소지가 있는 무리한 탈석탄 추진 등과 같은 비상식적 정책은 모두 곤혹스런 정부의 궁여지책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지난달에 발표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도 궁여지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도무지 현실의 관점에서 수긍할 수 있는 짜임새 있는 계획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연히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답도 찾기 어렵다. 아마 답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탄탄한 논리는 언감생심이다. 막연한 미래 기술에 얼기설기 얹혀 있는 무질서한 모습이다.

이제 공은 탄소중립위원회로 넘어 왔다. 탄소중립위원회는 탄소중립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기구다. 현실적 탄소중립시나리오의 재작성을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탄소중립위원회는 탈원전, 탄소중립이라는 모순된 목표에서 산업부를 구출해야 한다. 그 대신 전 세계 공통 의제인 동시에 위원회에게 부여된 고유 과업인 탄소중립을 단일 목표로 주고 현실적 정책 대안 개발을 주문해야 한다. 그러면 산업부는 현실적인 에너지전환 정책 대안들을 분명 멋지게 개발해 낼 것이다. 탄소중립위원회는 그것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탄소중립위원회의 성공 여부는 무엇보다도 위원회의 중립성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원회가 특정 이념적 신념을 바탕으로 좋은 에너지, 나쁜 에너지로 나누는 식의 접근을 한다면, 갈등만 양산할 뿐 탄소중립의 꿈은 몽상으로 끝날 수도 있다. 또한 탄소중립위원회는 기술적 낙관주의에 지나치게 빠져 어설픈 미래 기술에 기대 지금 당장 활용 가능한 정책 옵션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오로지 과학과 기술에 근거하여 원자력과 같은 실현 가능한 정책옵션에 대한 제한을 완화해 정부가 실효성 있는 탄소중립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정부 반원전 인사다. 탄소중립위원회의 중립성이 의심받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은 탄소중립위원회가 과학과 기술적 판단에 근거해 탄소중립의 꿈을 실현시켜 주길 바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과학은 정치적 합의가 아니다. 팩트와 논리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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