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등과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세워...'속도조절'이 문제
방향 공감하지만...무리한 추진보다 여건 맞는 유연함 필요
▲자료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정부가 5일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한 것과 관련 산업계는 먼저 "현실성이 크게 부족하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대부분 업종에서 정부 지원에 대한 로드맵이 나오지 않았고 비용 예측도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탈원전’, ‘부동산’, ‘최저임금’, ‘소득주도성장’ 등 이번 정부 들어 실패한 정책들이 전부 ‘속도 조절’에서 원인이 있었던 만큼 탄소중립 제도 역시 천천히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우리는 제조업 위주 산업구조
성급하게 추진 땐 경쟁력 상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김녹영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센터장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2050 탄소중립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기업들도 피할 수 없는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업종·규모별로 기업이 맞닥뜨린 상황과 여건이 달라 폭 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짚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실장 이름의 논평에서 "정부 탄소중립위원회가 제시한 세 가지 시나리오 초안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540만t, 1870만t, 그리고 0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노력에 동참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국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경제계는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가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전경련은 "초안에 따르면 세 가지 시나리오 모두에서 산업 부문은 205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약 80%를 감축해야 한다.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무리한 목표를 설정할 경우 일자리 감소와 우리나라 제품의 국제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며 "위원회가 감축 수단으로 제시한 탄소감축 기술이나 연료 전환 등의 실현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불명확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경련은 "경제계는 산업 전반의 저탄소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정부 역시 탄소중립 목표가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해치지 않도록 향후 목표 수립 과정에서 경제계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반영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온실가스의 지속적인 감축을 통한 2050년 탄소중립에는 공감하지만 시나리오의 감축 수단 중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친환경 연·원료 전환 등이 2050년 내 상용화될 수 있을지는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경총은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높은 화석 발전 의존도 때문에 급격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 정책은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경제·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향후 의견수렴 과정에서 산업계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탈원전 정치적 프레임 갇혀 탄소중립 정책 망치고 있다"
각 업계도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상당히 불명확하다는 게 중론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정부가 ‘탈원전’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 탄소중립 정책을 망치고 있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나온다. 원자력·석탄 비중을 10% 미만으로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60%로 늘리는 게 우리나라 지리적 현실상 실현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주요 이동수단인 자동차가 대부분 전기차로 교체되면 전력 수요가 더욱 급증할텐데, 우리나라 국토 전체를 태양광 패널로 덮어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견해다.
정부가 공개한 3개의 시나리오 초안 중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중단을 담은 시나리오 2안과 3안 역시 독립적인 계통으로 이뤄진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해 반드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에너지 업계는 이번 시나리오에 대해 자신들과 협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 정책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정유·석유화학 업계도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의 비전이 달성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탄소중립 방향성에는 공감하나 연료전환, CCUS 등 미래 기술 개발과 상용화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불확실성도 크다"며 "시나리오대로 이행시 산업 경쟁력 약화가 우려돼 무리한 감축보다는 여건에 맞는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업계는 급작스러운 내연기관차 생산 중단 가능성에 대해서 불확실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이미 현대차·기아 등은 전기차 시대에 대비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고 자금 여력도 충분하지 않은 한국지엠, 르노삼성, 쌍용차 등은 전향적인 미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주요 기업들은 올해 초 출범한 ‘전기·전자 탄소중립위원회’에 동참했다. 이미 탄소중립 동참 의지를 표명하고 탄소감축·에너지 전환을 추진 중이다.
대기업 집단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재생 에너지 비중을 늘릴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전기 사용량이 많은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면 초기 투자 지원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탄소 배출이 많은 철강·조선 등 중후장대 산업 쪽에서도 신기술 개발을 위한 정부의 지원 정책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이날 정부의 발표와 별도로 이미 우리나라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수소 생태계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ESG경영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가고 탄소국경세 등 도입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현대차그룹, SK그룹, 포스코그룹, 효성그룹 등은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 ‘수소기업협의체’ 설립을 추진 중이다.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