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
그런데 산업계에서는 한국 제조업의 높은 에너지 효율 수준과 탄소배출 감축 시설이 구비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더 이상 추가 감축 여력이 부족하다며, 2030년 목표를 35% 이상으로 설정하게 되면, 한국 제조업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철강 산업은 물론, 석유화학업계, 반도체 업계조차도 생산량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우려한 대로 생산 감축이 현실화되면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런 산업계의 논리와는 다르게 35%라는 숫자에 대해서 환경단체를 비롯한 진보 성향의 정당들은 미래 세대에 감축부담을 떠넘기는 것이 된다며 다른 측면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수치가 국제사회의 권고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비판이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탄소중립기본법에 담긴 ‘녹색 성장’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탄소중립의 목적을 훼손하고 오히려 기후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위장 환경주의(이른바 그린 워싱·green washing)’라는 비난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기후변화 대응 문제를 놓고 산업계와 시민단체의 입장이 양극화하는 상황에서 대선 국면마저 겹쳐져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흡사 경매장을 방불케 하리만치 공세적으로 수치를 상향 제시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수치 자체가 아니다. 이런 목표들을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느냐는 상당 부분 기술 혁신이 실현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에너지전환부문(2018년 기준, 대략 37%)이고, 산업부문은 동년도 기준 36%, 수송부문이 14% 정도를 차지한다. 에너지전환부문의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확대가 불가결하지만, 예측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보완하려면, 축전지나 전력망에 기술적 혁신이 이뤄지고, 그러한 기술들의 가격 경쟁력도 향상될 것이 요구된다.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철강 산업(산업부문 중 39%)은 세계적으로도 이미 공급과잉 상태이지만, ‘녹색 철강(green steel)’ 생산 여하에 따라 세계적인 공급망의 구조개편, 재분배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수송부문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의 90% 이상이 도로에서 나오는데, 이를 탈탄소화하기 위해서는 전기차와 수소차의 보급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전원 구성이 절대적으로 수입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전기차나 수소차가 얼마나 ‘녹색’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녹색 수소(green hydrogen)’를 수입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또 다른 차원에서 에너지 안보에 훼손이 발생하게 된다.
요컨대, 지금 우리 사회가 그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은 수치 공세나 정치 슬로건이 아니라, 기술 혁신이다. 2030년까지 불과 10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사회의 재원과 인력을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들에 전략적으로 집중하여 투자한다면, 중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들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한국판 뉴딜 안에 그린 뉴딜을 담아내고 있으니 첫 단추는 채워졌다.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는 탄소중립 정책은 허상에 그치게 된다. 또한, 지금 같은 패러다임 전환기에 기술 혁신을 주도적으로 달성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누리는 국제적인 위상도 한순간에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하고 기술 혁신에 박차를 가하도록 국가역량을 집중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