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판결문상 신 회장 측 'losing party' 명시
풋옵션 41만원 매수책임 회피...신 회장 '소기목적' 달성
이제는 '가격'이 핵심...2R '감정가' 놓고 공방 전망
증권업계 "PBR비교가치 등 시장가치가 합리적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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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
[에너지경제신문 김건우 기자]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재무적 투자자(FI)간 풋옵션 분쟁 결과 법리적으로는 FI 측이 승소했지만 신 회장 역시 실리적 이득을 챙긴 모양새다. 재판을 맡은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부가 신 회장의 ‘풋옵션 무효’ 주장을 기각함에 따라 FI 측은 풋옵션 권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다만 현재의 풋행사 가격 40만9000원에는 FI 측의 감정결과만 반영됐기 때문에, 판정부는 절차적 하자를 근거로 신 회장의 매수 의무를 유보한 상황이다. 신 회장이 ‘가치평가자 선임’ 의무를 더 이상 미루기 어려워짐에 따라 향후 논쟁의 지점은 양측이 감정가를 제출함으로써 재개될 ‘가격 협상’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 판결문상 '승소'는 어피니티...신창재 회장은 '실리' 챙겼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FI인 어피니티컨소시엄(어피너티에쿼티 파트너스,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간 ICC중재 재판은 법리적으로는 어피니티 측이 승소했지만, 신 회장 역시 40만9000원의 풋옵션 가치평가에 대한 중재판정부의 판단보류를 얻어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신창재 회장과 사모펀드(PEF) 어피니티 컨소시엄 간 분쟁은 2018년 교보생명의 지분 24%를 보유한 어피니티 측이 지분 매각을 위한 풋옵션 ‘감정가’로 주당 40만9000원을 제시하며 시작됐다. 이는 2012년 어피니티가 교보생명 지분을 매입할 당시의 주당 24만5000원보다 2배가량 높은 가격이다. 신 회장은 풋옵션 가격이 과도하다며 반발했고, 이에 어피니티 측은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 국제중재를 요청했다. 당초 어피니티 측이 지분을 매입한 것은 교보생명의 ‘3년 내 상장’ 계획을 믿고 기업공개(IPO)를 통한 수익을 기대한 것으로, 교보생명이 IPO 전망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상장을 계속 미루자 풋옵션 권리 행사를 주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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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판정부의 판결문 원문 발췌. 이번 분쟁의 핵심을 ‘풋옵션의 유효성’으로 명시함과 동시에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풋옵션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가치평가 기관을 임명할 의무를 이행했더라면 중재 재판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힘. |
이같은 배경으로 시작된 중재재판에서 ICC 중재판정부는 승·패소를 가르는 핵심 쟁점을 ‘풋옵션의 유효성’으로 봤다. 판정부는 판결문 말미에 "풋옵션의 유효성 여부가 이번 중재재판의 핵심임을 강조한다"며 "애초에 신 회장이 풋옵션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가치평가자’를 선임해 풋옵션 가격을 책정하는 의무를 이행했다면 이같은 중재 절차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losing party(패소 측)’가 재판의 전부 혹은 일부를 부담해야 하는 ICC 규칙에 따라 신 회장 측에 중재비용의 전부와 FI 측 변호사 선임비용의 절반을 부담케 한다"고 명시했다.
ICC 중재판정부는 해당 재판에서 신 회장이 당장 풋옵션을 매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이는 감정가에 대한 타당ㆍ부당의 판단이라기보다는 절차적인 근거가 미비하기 때문에 판단자체를 내릴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풋옵션 매수가 이행되기 위해서는 신 회장과 FI 양측이 모두 감정가를 제출해야하는데, 그간 신 회장 측이 ‘풋옵션 무효’를 주장하며 감정가 제출을 미룸에 따라 적정가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치평가업무를 수행한 회계사들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중인 점도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FI 측 관계자는 "일각에서 신 회장이 40만9000원의 가격에 대해 풋옵션을 매수할 의무가 없다는 중재판정부의 판결에 주목하며 ‘승소’를 주장하거나, 풋옵션 가격이 ‘과도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양측에서 제출돼야할 감정가가 한쪽에서만 제출됨에 따른 ‘절차적 하자’가 원인일 뿐, 감정가에 대한 재판부의 언급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금번 재판에서 중재판정부는 주주간 계약에 따라 신 회장이 가치평가자를 선임할 의무(his obligations to appoint an Appraiser)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중재판정부의 결정에 따라 그간 ‘풋옵션 무효’를 근거로 감정가 책정을 미뤄온 신 회장이 더 이상 발을 빼기는 어려워진 모양새지만, 당초 어피니티 측이 제시했던 40만9000원의 감정가를 대상으로 협상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는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이에 향후 논쟁의 지점이 ‘풋옵션 유효성’ 여부에서 ‘풋옵션 가격 협상’으로 옮겨갈 것으로 전망된다.
◇ 승소? 패소? 뭣이 중헌디...결국은 '풋옵션 가격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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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
양측의 충돌 지점이 ‘풋옵션 가격’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후 양측의 협상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40만9000원의 가격을 과도하다고 여기는 신 회장이 어피니티 측이 제시한 감정가보다 크게 낮은 수준으로 가치평가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합리적인 수준으로 가격이 조율될 경우 기존에 보험사들이 ‘희망공모가액’을 산정함에 있어서 추종해온 지표들을 근거로 풋옵션 가격이 수렴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익명의 기업은행(IB)부문 IPO 담당자는 "상장 희망 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 평가 방법이 업종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통상 동종 업계 비슷한 규모의 기업과의 비교가치를 평가하게 된다"며 "교보생명의 경우 삼성생명이나 한화생명과의 비교평가를 예로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업계의 경우 가장 최근에 상장한 ‘오렌지라이프’(현재 신한라이프로 통합)를 예시로 볼 때,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시총 대비 내재비율’을 기업가치 평가의 주요 지표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오렌지라이프는 상장 당시 PBR 비교가치와 P/EV(수익률 대비 주가) 비교가치를 기준으로 ‘주당 평균가치’를 계산한 후 77.76% ~ 98.75% 수준에서 공모가밴드를 결정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장의 기준으로 가치평가를 하게 될 경우, 현재 업황의 둔화ㆍ제도 변화 등으로 인해 저평가 받고 있는 보험업의 비교가치가 반영됨에 따라 신 회장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이 전개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ohtdue@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