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대란 재깍재깍] 전력대란 경고음(上)…"4차 산업혁명 발 전력 수요 급증하는 데 전력망 구축 뒷짐"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10.07 17:38

청와대와 정치권 외면에 정부는 손 놓고 한전은 눈치 보고



"정부 주도로 한전-발전사-지역주민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해 조속히 완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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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주요 송전망 현황 및 장기신설 계통도. 에너지경제신문


전력의 생산지와 수요지를 연결하는 송전망이 발전 설비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이대로 가다간 전력대란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에너지경제신문은 ‘송전망 고속도로가 없다…전력대란 재깍재깍’을 주제로 세차례(상·중·하)에 걸쳐 국내 발전설비 및 송전망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대안을 제시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우리나라는 해안가에 위치한 대규모 원전과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 수도권과 대도시로 송전하는 중앙집중형 전력계통을 운영하고 있다. 대규모 중앙집중형 위주의 전원구성은 대형발전소의 입지선정과 고압송전의 주민수용성 문제 등 사회적 갈등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전문가들은 2050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수요지 인근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분산에너지 체계로의 대전환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행법상 분산에너지 체계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법적 근거가 없고 당장 동해안에 신규발전설비가 가동을 앞두고 있어 송전망 확충이 시급하다.

7일 한국전력거래소와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탈원전대책 특위)실에 따르면 동해안에 위치한 0.5GW 규모 이상의 가동 가능한 발전소의 총 설비용량은 11.5GW로 집계됐다. 반면 생산한 전력을 수요지인 서울로 보내는 주요 선로의 정격 송전 용량(부하율 50% 가정)은 11GW로 조사됐다. 송전선의 수용 가능 용량을 초과하는 전력이 공급되고 있어 상시적으로 발전 제약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발전사업자 입장에서는 전력을 생산하고 판매하기 위해 빨리 망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인 반면 지역에서는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미 수도권의 낮은 전력자급률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이 수도권은 물론 지방의 전력소비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신규 발전사업자들 역시 앞으로 동해안 송전망 구축이 지연될 경우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 지역주민과 발전사업자는 물론 송배전 사업자인 한전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송전망 지역에 합리적 보상방안 마련해야 

 


한전은 당초 2021년과 2022년 순차 완공하기로 했던 신한울~신가평(4GW)·신한울~수도권(4GW) HVDC(일명 ‘EP프로젝트’)의 준공 목표연도를 2025년으로 잠정 연기했다. 2022년부터 동해안 신규발전설비들이 가동을 앞두고 있는 만큼 정부가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자칫 전력대란으로까지 어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신한울 2호기를 시작으로 삼척화력1·2호기, 강릉 안인 1·2호기 등이 내년부터 차례로 들어서면 5.8GW 규모의 전력이 추가로 공급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발전소가 새로 들어서더라도 송전망이 조기에 들어서지 않으면 출력을 일부 제한할 수밖에 없다"며 "전력 수급 계획을 세우면서 송전 여건을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출력 제한 문제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해권 전체 기저발전량이 17GW 이상으로 늘어나는 만큼 수도권 송전량도 지금보다 2배 가량(14GW) 늘려야 한다.

한전 관계자는 "최초에는 영동지역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765kV 지중화 송전선로를 만들려고 했는데 밀양사건이 터지면서 지연됐다"며 "이후 500kV급 HVDC로 지중화 없이 유사한 수준의 송전이 가능해 사업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사이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한울 3·4호기 원자력발전소가 전원계획에서 빠져나가는 변수가 생겼다. 그래서 이 HVDC사업이 필요한가 용역을 진행했고, 앞으로도 동해안에 전력설비가 많이 늘어날 것 같아 8GW급 HVDC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계속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미래에 재생에너지가 얼마나 늘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전망으로는 동해안 HVDC 1,2단계 사업이 예정대로 건설된다면 영동지역의 원자력과 석탄화력, 경북, 강원도의 재생에너지까지 수용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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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전력거래소]


한전 측은 "위와 같이 계획을 세웠지만 건설은 주민들과의 의견수렴을 통한 입지 선정과 예비타당성 조사도 필요하다"며 "현재로써는 1단계가 25년, 2단계까 26년으로 되어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전은 동해안~신가평 500㎸ 직류 장거리 송전망(HVDC) 건설사업을 위한 특별대책본부를 꾸리고 본격적인 사업 추진과 주민 갈등 해소에 나서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정부의 8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진행 중인 송전선로 건설 사업 추진을 위해 동해안신가평특별대책본부를 발족했다.

한전은 신한울 원전 1·2호기,강릉 안인화력,삼척화력 등 동해안에 신규 발전소 건설 시 총 생산전력은 17GW에 이르러 현재 운영 중인 송전선로의 수송 가능 용량(11.6GW)을 초과,신규 송전선로 건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이번 사업은 2025년 6월 준공을 목표로 선로 길이는 동부 140㎞,서부 90㎞ 등 총 230㎞에 달한다.


 

발전업계 "계획 지연될 경우 수도권 전력대란 현실화" 

 


발전업계에서는 계획보다 지연이 될 경우 동해안에서 생산되는 전력이 수도권으로 넘어오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발전기가 들어오는 속도보다 송전 설비 확충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며 "송전설비 확충 지연이 점점 심해질 경우 전력대란을 넘어 탄소중립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전력설비는 필수불가결하지만 지역주민 입장에서 좋아하는 설비는 아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법제도적으로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발전사와 한전에만 떠넘기고 지역 민원해결 등 민감한 문제는 안 나서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시대가 달라지고 있는 만큼 보상도 현실화 해서 사업이 빨리 진행되게 해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가 재생에너지 확대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송전설비 등 인프라 구축, 현실적인 보상, 제도확충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한전이 계속 고객 이해관계자들과 민원해가면서 하는거에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전 측에서도 "모든 발전사업자들이 스트레스다. 수혜자가 적극적으로 보상과정과 주민설득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동해안의 이 송전선로가 생기면 가장 득을 보는 쪽은 영세한 재생에너지를 제외하고 동해안 대형 발전사업자들이다. 이들이 나서고 싶어도 같이 참여를 해서 보상을 해준다거나 이런 제도가 안되어 있다"고 말했다.


 

12일 한전 국감서 논의될 전망 

 


한편 오는 12일 열리는 한국전력공사 대상 국정감사에서 이같은 문제가 논의될 전망이다. 현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의원들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신정훈 의원(더불어민주당·나주화순)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 경기지역의 전력자급률은 올해 상반기 기준 각각 12.7%, 64.3%에 불과하고 이에 따라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계통인프라 투자 비용(집행기준)은 지난 10년간 무려 2.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끌어다 쓰는데 한해에 2300억원 꼴이 소요된 것이다. 특히 2013년 245억원이던 투자지출액은 2014년에는 무려 7배 가까이 급등하고 2018년에는 4440억원까지 폭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2014년부터 본격화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관련 전력소비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지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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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는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첨단산업이 전력자급률이 낮은 수도권에 집중됨으로 인해, 전력계통 비용은 상승하고 총괄원가에 반영되어 수도권은 물론 비수도권 지방의 전기소비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들이 내는 전기요금은 이러한 총괄원가를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별 전력소비와 생산의 불균형은 특정지역에만 발전시설을 집중시켜 희생을 강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경제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때문에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발전시설 입지 및 소비시설 입지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지역별, 송전거리별 차등요금제 등 강력한 가격신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수요가 집중되는 부분에 발전설비가 있으면 문제될 게 없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전력 다소비 업종이 발전소 근처로 갈 제도적 인센티브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사업자가 용기를 내서 동해안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때문에 막대한 비용에도 송전망 건설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확대, 탄소중립 정책이 계획대로 되려면 송변전 여건을 고려해야 정부가 이같은 측면에 대한 고려가 충분하지 않다"며 "독립적인 기구를 신설해 송전선로 입지 선정을 위한 원칙을 마련하고 주민 수용성을 높이고, 가동을 앞둔 발전사업들도 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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