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1억씩 떠안고 태어나는 아이들…미래가 안보인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11.08 16:38

IMF "韓 GDP대비 국가채무 증가속도 35개 선진국중 1위"
"2030∼2060년 1인당 잠재성장률 0.8%… OECD 최하위권"
고령화 속도 빨라 더 위험···"선거용 묻지마 돈풀기 멈춰야"

PYH2021110112880005100_P4

▲부산항 감만부두. 연합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선진국 중 가장 빠르고, 2030년 이후 잠재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 될 것이라는 국제기구들의 전망이 연이어 나왔다. 당장 내년부터 예산 삭감이나 증세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먹구름이 드리울 수 있다고 재정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저출산 등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는 선심성 돈풀기 정책만 쏟아져 나오고 있다.

◇ 불안한 韓 미래···나랏빚 증가 ‘1위’…잠재성장률 ‘꼴찌’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작성한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를 통해 2026년 한국의 일반정부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66.7%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말(51.3%) 대비 15.4%포인트 오른 수치다.

GDP 대비 일반정부 채무비율은 한 나라의 국가채무를 경제규모와 비교하는 개념이다. 각국 정부의 중기 전망치를 IMF가 취합해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발표한다. 통상 경제 규모와 대비해 높은 국가채무 비율은 해당 국가의 신인도 하락으로 귀결된다.

향후 5년간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채무비율 상승폭은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35개국 중 가장 크다. 같은 기간 35개 선진국의 GDP 대비 채무비율은 121.6%에서 118.6%로 3.0%포인트 내려갈 것으로 관측됐다. 특히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캐나다, 이탈리아 등으로 구성된 주요 7개국(G7)의 GDP 대비 채무비율은 139.0%에서 135.8%로 3.2%포인트 하락한다.

선진국들이 허리띠를 졸라 매는 상황에 한국만 무서운 속도로 빚을 늘리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비대해진 재정의 역할을 올해부터 줄이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는 씀씀이를 크게 늘린 탓이다. 한국은 특히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라 그 충격이 더 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중장기 예측도 암울하다. OECD는 최근 발표한 2060년까지의 재정 전망 보고서에서 정책 대응 없이 현 상황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한국의 2030∼2060년 1인당 잠재 GDP 성장률이 연간 0.8%라고 추정했다. OECD 가입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잠재 GDP는 한 나라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을, 잠재성장률은 이 잠재 GDP의 증가율을 의미한다. OECD는 우리나라 1인당 잠재 GDP 성장률이 2000∼2007년 연간 3.8%에서 2007∼2020년 2.8%, 2020∼2030년 1.9%, 2030∼2060년 0.8% 등으로 계속 떨어진다고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특히 큰 폭으로 하락하는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 문제가 다른 나라보다 심각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제성장률의 둔화는 재정 건전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복지 지출 등이 늘어나는 와중에 정부의 세금 수입 기반은 약해져 기초 체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해외 의존도 높아 나랏빚 더 철저히 관리 필요…선거용 ‘돈풀기’ 당장 멈춰야"

전문가들은 IMF와 OECD의 전망이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국가채무 비율 증가와 잠재성장률 하락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 전문가는 "코로나19라는 특수성을 정치권에서 악용해 우리나라 재무 건전성이 크게 훼손됐다"며 "난데없이 청년들에게 돈을 퍼주거나 현금을 살포하는 식으로 재정을 낭비해왔는데, 씀씀이를 줄이기 상당히 힘들어져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은 2014∼2019년의 국가채무 증가 속도(연평균 6.3%)가 유지될 경우 15∼64세 생산가능인구 1인당 국가채무는 2038년 1억원을 돌파한 이후 2047년에 2억원, 2052년에 3억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태어난 신생아가 2038년 18세가 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에는 부담해야 할 1인당 나랏빚이 1억원에 달한다는 의미다.

미국과 중국간 갈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제에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우리나라 입장에서 신경써야할 대목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대외·수출 의존도가 워낙 높은 축에 속한다. 나랏빚이 늘거나 성장률이 급락한 와중에 외부 충격요인이 더해지면 자칫 큰 경제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나랏빚이 빠르게 늘고 성장률이 둔화하는데 대선을 앞둔 유력 주자가 ‘나라 곳간이 꽉꽉 채워지고 있다’며 현금 살포로 표를 사고 있다"며 "인구가 많고 자원이 풍부한 중남미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왜 몰락했는지 역사를 잊으면 안된다"고 진단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예산이나 중기재정운영 등을 통해 빚을 줄일 의지가 전혀 없다는 점"이라며 "매번 정부는 나랏빚을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중기재정운영계획을 내놨었는데, 올해는 아예 손을 놓고 9년 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80%까지 뛸 것이라는 전망만 발표했다"고 일침했다.

김 교수는 "고령화 쓰나미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우려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다음 정부가) 최소 40조~50조원 안팎의 예산 삭감과 증세 같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yes@ekn.kr

여헌우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