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력당국, 주택용 전기요금은 대선 등 여론 고려해 인상 못하고, 산업용 인상 검토
- 산업계 "탄소중립, 탈원전·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 동시 추진으로 비용부담 가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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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고지서.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정부가 국제유가 등 글로벌 연료비 폭등에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시장 도매가격인 SMP(계통한계가격)이 최근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한국전력의 전력구입 비용이 크게 늘어 한전의 적자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정승일 한전 사장은 최근 들어 연일 ‘연료비연동제 현실화’를 촉구하고 있다. 다만 주택용 전기요금의 경우 정치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해 인상이 쉽지 않은데다 현행 연료비 연동제에선 인상 폭 또한 크게 제한돼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기요금체계를 전반적으로 개편해 산업용 전기요금의 현실화 방안에 대한 검토에 나섰다는 것이다. 전체 전력 소비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요금은 제도 개편 논의가 나올 때마다 번번이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한전의 막대한 영업적자를 메울 카드로 산업용 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제조업 등 산업계에선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현실화할 경우 탄소중립 추진 등으로 가뜩이나 큰 부담을 떠맡고 있는 데 여기에 추가 비용까지 발생해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22일 산업계 관계자는 "전력당국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주택용 전기요금은 여론을 고려해 인상하지 못하는 대신 기반시설 외 일반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SMP가 매월 평균 20원씩 상승하고 있어 한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전력구입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전력구입비가 연말까지 당초 계획보다 10조원 이상 늘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해부터 연료비연동제가 도입됐지만 인상 또는 인하의 조정 폭이 연간 최대 5원/kWh 상한에 묶여 있어 최근 큰 폭의 연료비 인상분을 전기요금 인상에 반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전은 3분기만에 1조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 SMP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지난달 평균 107.76 원/kWh 기록했다.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올해 1월(70.65원/kWh)과 비교해도 무려 50% 이상 올랐다. 이달 들어서도 평균 130원 대를 기록하고 있다. 배럴당 평균 80달러를 넘긴 국제유가가 SMP에 반영될 경우 12월 SMP는 150원/kWh, 내년 2∼3월에는 160원/kWh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은 심야시간대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내년부터 올리는 방안을 우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야요금 조정만으로 연간 최소 수천억원의 추가 수익을 낼 것이란 게 전력업계의 추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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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전력통계정보시스템] |
정부의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검토가 알려지자 산업계에선 외부변수와 정부 정책 실패에 대한 비용을 만만한 산업계에 떠넘기려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요금 구조는 ‘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후환경요금+연료비조정요금’으로 이뤄져 있다. 계약전력 300kW 이상 기준 산업용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이 평균 7000원/kWh가 넘는다. 반면 주택용은 4000원/kWh 수준이다. 여기에 한전의 산업용 전기 원가회수율(전력 판매액을 전력 판매원가로 나눈 수치)은 100% 이상인 반면 주택용 전기요금은 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률은 80% 이상 올랐지만, 주택용은 10%대 인상에 그쳤다.
재계 관계자는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믹스 전환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전망에 산업계 전반의 위기의식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라며 "정책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을 산업용에 떠넘기는 것은 설비투자 위축을 일으켜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확한 설명과 충분한 논의 없이 무작정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리자는 것은 결국 기업에 준조세를 더 내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전기요금 등 생산비용 증가에 따른 피해가 훨씬 크다"며 "정부의 탄소중립 드라이브로 인한 발전단가 상승압박이 이어지는 만큼, ‘중소기업 전용요금제’를 도입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고 산업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용 전기는 대량 공급하는 데다 값싼 심야 전력을 많이 쓰기 때문에 원가가 가정용보다 훨씬 낮다"며 "산업용 요금을 주택용보다 높게 책정하는 건 제조업체의 수출 경쟁력을 갉아먹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한편 산업부 측은 "전기요금 개편은 연중 내내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어떻게 개편하겠다는 방침은 현재로선 없다"고 말했다. 이어 "원칙적으로 특정 용도의 요금만 조정할 수는 없다"며 "전기요금 조정을 위해선 요금체계 전반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