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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택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30일 에너지경제신문 본사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송기우 기자 |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 기자] "우리나라 탄소중립 추진 속도를 ‘강약중중(强弱中中)’으로 맞추는 전략이 필요하다."
임춘택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30일 에너지경제신문 본사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발전업계 온실가스 감축을 강하게, 산업계는 약하게, 건물·수송 부문은 중간 정도 수준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이 같은 전략을 내세웠다.
임 원장은 지난 9월 13번째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자리에 올랐다. "공부에는 자신 있다"는 그는 카이스트에 수석입학해 석·박사학위를 따고 후학을 양성하는 공학자이면서 에너지 연구 및 행정 등 분야의 혁신을 이룬 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특히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의 미래전략·과학저널·지식재산 등 프로그램을 설계했고 노무현 정부 청와대 근무 당시 혁신적인 전자업무관리시스템 ‘e지원’을 만드는데도 기여했다. 특히 에너지기술평가원장 땐 온라인 메타 평가시스템을 개발, 재택 근무체계 구축에서도 혁신을 이끌어냈다.
임 원장은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세계 최고 에너지 정책을 내놓는 기관으로 거듭나게끔 연구진을 지원하겠다"며 "RE300(사용전력 3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이나 그린뉴딜 3.0 등 전 세계에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획기적 연구결과를 내놓아 글로벌 새 패러다임과 아젠다를 제시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임춘택 에너지경제연구원장과의 일문일답.
◇ "연구자율·정치중립 추구…정책 비판도 마다 않겠다"
- 새 원장으로 취임한 지 두 달 지났는데 우선 간단한 소감과 포부는.
▲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우수한 연구원들이 모인 정책 연구기관이다. 원장을 맡고 있지만 연구원들을 이끌지 않고 지원할 것이다. 늘 우리 연구원들을 어떻게 지원할 지 많이 고민한다. 모두들 경제학 분야에 탁월한 역량이 있는 분들이다. 다만 기술이나 산업, 시장에 대한 변화나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어떻게 기술과 산업에 대한 역량을 강화할 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내 에너지 관련된 기술·산업의 베테랑급 전문가들이 30여명 정도인데 그 분들과 에경연 경제학자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게끔 연결해주는 일을 추진하려 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을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으로 만들고 싶다. 아직 에경연이 세계적으로 탁월한 정책을 내놓은 적은 없다. 이를 이루고 싶다. 유일하게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한국에 전 세계가 집중하고 그 노하우를 궁금해한다. 그래서 획기적인 에너지 정책을 내놓아 또 다시 놀라게 할 것이다. RE300과 그린뉴딜 3.0, 에너지 7대 특성이론(에너지 트릴레마) 등 에경연이 전 세계에 새로운 패러다임과 아젠다를 제시하겠다.
- 그간 국가 에너지싱크탱크인 에경연 원장은 경제학자 출신들이 맡았는데 기술전문가가 수장으로 임명돼 에경연의 변화를 기대하면서도 한편에선 우려도 나오는데.
▲ 사실과 다른 우려엔 특별히 신경 안쓴다. 에경연을 발전시킬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또 그럴 자신이 있다. 저는 기술자 출신이면서 정책 전문가이기도 하다. 좋은 정책이란 기술과 경제, 경영, 시장, 공공정책 등이 맞물려야 나올 수 있다. 저는 에너지기술평가원장과 카이스트·지스트 교수 등 이력을 가지고 있다. 산업 정책에 대해서는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에서 연구하면서 10여권의 책을 집필했다. 전력 분야를 30년 동안 연구해오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국제전기전자학회(IEEE)에서 0.1%의 회원에게만 자격이 부여되는 석학회원(IEEE Fellow)으로도 선정됐다. 무선전력 분야의 전문성을 평가받은데 따른 것이다. 원자력 공학에 대해서도 7년 이상 공부했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중대사고와 안전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다. 최고 공학자 반열에 들어있는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 에너지가 최근 굉장히 정치이슈화했고 정책 수립의 기반이 되는 국가 연구기관이라서 연구과정에서 정치권 외풍이나 정부정책 영향을 많이 받지 않겠나.
▲ 에경연의 모토는 세계적으로 탁월한 에너지 정책을 내놓는 것이다. 그러려면 학자들이 이해관계나 정치적 압력과 관계없이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게 연구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된다. 그 다음 공정성과 객관성이 따라줘야 한다. 그러나 정부출연연구원은 국가 정책에 기여하는 결과를 내놔야 하기 때문에 일반 학자만큼 자율적일 수 없다. 국회의 탄소중립법에 위반하거나 정부의 정책을 훼방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없다. 그런데 어디에나 완벽한 정부는 없다. 그렇다면 ‘완벽하지 않은 정부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딜레마가 생긴다.
정부출연연구원으로서 정책 수립에 기여하면서 정책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책을 연구하면서 정치적 중립이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탁월성을 갖는 게 중요하다. 이를 확보하려면 정책 수립에 기여를 하면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걸 주의해야 한다. 다만 비판을 공개적으로 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가 특정 정치인 혹은 공무원을 공격한다면 정부출연연구원이라는 정체성에 혼란이 생기고 원칙에도 어긋나 버린다. 연구원들 스스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다 나은 정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중립을 잘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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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택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30일 에너지경제신문 본사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송기우 기자 |
◇ "재생에너지, 시설 빠르게 늘어나고 발전단가 급감할 것"
- 최근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에너지 수급 불안이 이어지고 있는데.
▲ 최근 석탄 가격 때문에 에너지 전체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친환경 전환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그린플레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2050년 넷제로 달성 목표에 부합하는 사업계획을 기업들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연례서신을 투자기업 대표들에게 보내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금융권에서 먼저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가 급감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니 투자 전망까지 나빠지고 있다. 과속스캔들에 따른 시장의 충격으로 에너지 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한 거다. 에경연에서는 6개월 뒤면 수요와 공급 원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안정화된다고 전망한다.
- 재생에너지의 경우 간헐성 등으로 에너지 수급 대응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 않나.
▲ 모든 국가가 안고 있는 문제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건 20년 동안 완만하게 진행돼 왔다. 지금부터 2030년까지 9년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9년 사이 탄소중립 기술 개발이나 구조조정이 빠르게 진행될 것 같다. 지금까지 왔던 20년보다 앞으로 10년 동안 생길 변화가 더 역동적일 것 같다. 그러나 수급불안정에 대한 극단적 상황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과거 오일쇼크와 최근 에너지 수급대란을 겪었지만 시장 자체가 극단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가격이 오르면 공급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전력 수급 부분을 살펴보면 가스터빈 용량이 석탄발전보다 많다. 재생에너지의 경우 전체 전력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에 그치지만 시설 용량은 20GW이고 해마다 4GW씩 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석탄 발전 비중을 빠른 속도로 줄이더라도 가스터빈과 재생에너지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
- 우리나라가 에너지를 과소비해 탄소중립의 걸림돌이란 얘기도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소비구조를 어떻게 보나.
▲ 잘못된 분석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150조원 규모 에너지를 수입한다. 이 가운데 발전부문에 25조원, 즉 16% 정도가 쓰인다. 전기를 얻는 연료로 쓴다는 얘기다. 연간 수입 에너지 150조원 가운데 80조원, 즉 53∼56% 정도가 산업용에 쓰인다. 원료 또는 재료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수출 등을 한다. 나머지는 공공분야나 개인이 쓰는 범위인데 개인이 쓰는 전기는 15% 정도다. 특히 1인당, 즉 개인이 사용하는 전기 사용량은 굉장히 효율적이다. 우리나라 국민 개개인이 사용하는 전기량은 일본에 비하면 절반, 미국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 그러면 전기요금체계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얘기인가.
▲ 에너지 가격은 결국 원가와 세금 두 가지로 이뤄진다. 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전환을 위해서는 세금 부분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전기요금 절대 가격이 혁신을 못 이룰 정도로 너무 저렴하면 안된다. 우리가 여러 에너지전환 과정에 사용할 재원을 마련할 설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원가 부분은 앞으로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재생에너지는 해외에서 수입하는 에너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에너지 수입비용에서 40조원은 절감될 거다. 절감된 만큼 내수 효과가 크게 나타날 것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를 따져보면 중동 지역의 경우 태양광 발전단가가 1kWh당 10원까지 내려갔다. 원전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30∼180원 정도로 비싸졌다. 석탄 발전도 100원 이상으로 올랐다. 국내의 경우 태양광 발전단가는 112원 정도까지 내려왔다. 앞으로 50원 이하까지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 전기요금 원가의 경우 지금보다 내려갈 것이다. 다만 세금 부분은 다시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개념이다. 즉 세금을 높여 거둔 세금을 에너지전환 과정에 사용하고 이후 에너지 원가가 저렴해지면서 안정화되면 초기에 부담했던 세금을 다시 국민에게 돌려주는 선순환 구조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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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택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30일 에너지경제신문 본사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송기우 기자 |
◇ "RE300 등 전 세계 주목 받을 수 있는 획기적 새 패러다임·아젠다 제시할 것"
-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두고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 우린 선진국이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행보를 걸을 수는 없다. 지금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과도한 수준도 아니다. 지난 2018년보다 40%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감소 폭 경사가 기울어져 보일 수 있다. 밀린 숙제를 해야 하느라 그렇다. 그런데 그 밀린 숙제를 지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급하게 해결해야 한다. 더구나 수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탄소국경세 등 국제 규범을 준수하지 않고는 수출할 수 없다. 즉 수출력을 유지하려면 국제 기준에 따라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굉장히 빨리 혁신을 이루고 있다. 물론 기업들이 빠르게 급변하며 발 맞추는 만큼 정부는 기업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강약중중’ 전략이 필요하다. 발전업계 감축속도를 강하게, 산업계 감축속도를 약하게, 건물과 수송 부문을 중간 강도로 진행하자는 뜻이다.
- 탄소중립 목표에 따르면 오는 205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70%까지 확대하겠다는데 무리한 목표 아닌가.
▲ 오히려 보수적인 계획이라고 본다. 70%까지 올리는 것도 소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국제기관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90%까지 보고 있다. 탈원전이 이슈가 됐던 것도 환경단체들 때문이 아니다. 원전으로 안전에 위협을 받고 사고가 발생하다 보니 지난 2016년 월성원전 1호기 ‘가동 중지’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고 2017년 대선 당시 모든 후보들이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어떤 현상의 모순이 극대화 돼야 비로소 논의가 이뤄지는 구조다. 규정이 없고 국익에 충실하지 않고 일부 이익집단의 논리에 휘말리는 에너지 정책을 세워선 안된다.
- 앞으로의 개인적인 소망과 활동계획이 있는지.
▲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박사 과정까지 국민 세금으로 공부를 해 온 사람이다. 다짐한 게 있다면 국민에 필요한 정책을 만드는 정책 전문가가 되는 등 앞으로 평생 우리 사회를 위해 일하겠다는 것이다. 은퇴할 때까지 이 약속을 지키려 한다. 리더십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포용이라고 생각한다. 에너지기술평가원장일 때에도 30가지 포용 원칙을 담은 ‘포용 헌장’을 도입했다. 에경연에서도 포용 헌장을 도입하기 위해 상의하고 있다.
대담 : 구동본 에너지환경 부장(부국장)
정리 : 오세영 에너지환경부 기자
사진 : 송기우 부국장
■ 임춘택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약력 △58세 △금오공고·금오공대 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 전자공학 석·박사 △기술고시(20회) △국방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1995~2003)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2003~2007)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전문교수(2007~2009)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부교수(2009~2016) △제4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2018∼2021) △국제전기전자학회 석학회원(IEEE Fellow)(2020∼) △광주과학기술원 융합기술원 교수(휴) △2050 탄소중립위원회 에너지혁신분과위원장(현) △제13대 에너지경제연구원장(현)
claudia@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