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대재해 처벌제 도입한 네 번째 국가
영국, 2007년 세계 최초로 기업과실치사법 제정
처벌 대상은 개인 아닌 법인…사고 감소율 미미
호주, 주마다 처벌 기준 다르고 최대 무기징역도
▲지난해 6월 광주 동구 학동4구역에서 발생한 건물 붕괴 사고 현장. 이 사고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
[에너지경제신문 김기령 기자] 영국과 호주 등 해외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유사한 법안이 시행되고 있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과 호주의 산업안전보건법 기업과실치사제도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법의 효과 측면에서 봤을 때 이들 국가에서 해당 법이 시행된 10년 동안 재해발생률이나 사망률이 감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해외 사례에 견주어 봤을 때 오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사고 발생률 감소보다는 처벌 강화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영국, 호주, 캐나다에 이어 중대재해 처벌과 관련한 제도를 도입한 네 번째 국가다. 네 국가의 법안 모두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에 책임을 물고 처벌을 가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비슷하다.
영국은 2007년 세계 최초로 기업과실치사법과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영국은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하게 개별법 형태를 띠는데 잉글랜드, 웨일즈, 노던아일랜드에서는 기업과실치사법으로, 스코틀랜드에서는 기업살인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에 따르면 영국 기업과실치사법과 우리나라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장 큰 차이는 처벌 대상이다. 영국의 경우 개인에 대한 처벌 조항 자체가 아예 없으며 법인에 대한 처벌만 존재한다. 법인에 대한 벌칙은 벌금, 구제명령, 공포명령으로 구성된다. 기업 규모와 과실 치사 정도에 따라 양형이 구분된다.
2007년 법 시행 이후 2017년까지 10년간 이 법으로 인해 총 25개 기업이 처벌을 받았다. 이 기간 영국의 건설산업 사고 사망십만인율(10만명당 사망률)은 감소율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영국 기업과실치사법 제정 전 10년(1998~2007년)간 영국 건설산업 사고 사망십만인율은 연평균 2.6%가 감소했고 제정 후 10년(2007~2016년)간 사망십만인율은 연평균 3.3%가 감소했다.
최수영 건산연 연구위원은 "이 기간 내 주요 처벌 사례를 분석해보면 대부분 소기업이나 영세기업이 처벌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같은 기간 영국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 수가 약 1500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이 법이 적용된 사례는 2%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드물다"라고 분석했다.
호주는 연방법에 중대재해처벌과 관련한 제도가 없다. 대신 각 주(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퀸즐랜드 주·빅토리아 주·노던 준주)별로 산업안전보건법 아래 기업과실치사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호주 빅토리아주의 산업안전기관인 워크세이프 빅토리아(WorkSafe Victoria)와 워크세이프 노던 준주(WorkSafe NT)에 따르면 이들 주는 사업 규모에 관계없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받는 조직이나 사람의 행동이 피해자의 죽음을 초래했을 경우 기업과실치사 제도를 적용한다. 빅토리아 주, 노던 준주 등 각 주마다 법안 내용이 조금씩 다르며 각 주의 개인에 대한 처벌 수위는 최고 무기징역이며 회사에 대한 처벌 수위는 벌금 최고 1650만 달러다.
최 연구위원은 "호주는 영국과 달리 개인과 법인 모두를 처벌한다"며 "호주에서 관련 제도로 처벌 받은 사례는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ACT)와 퀸즐랜드 주에서 각각 1건씩 단 2건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캐나다는 2004년부터 웨스트레이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10년간 기소된 10건 중 유죄는 4건에 그쳤다.
이러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필요성과 한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4개 국가만 시행하고 있는데다가 시행 국가의 통계 상 중대재해 감소·예방 효과가 증명되지 않아서다.
지난 2020년 6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대표 발의한 강은미 정의당 국회의원은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음에도 산업현장에서는 여전히 후진적인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며 "이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경영 책임자가 안전한 기업 문화 의식을 갖는 게 필요하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재해를 줄이는 데 의미 있게 작동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강 의원은 이어 "전체 산업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건설산업 사고 사망자 수는 50%에 달할 만큼 건설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이 열악하다"며 "우리나라의 건설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끔 정부에서 관련 제도와 틀을 마련해야 하며 그 시작이 중대재해처벌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giryeong@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