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ENG 내달 상장 5000억원 마련 등 1조원대 실탄 확보
순환출자 고리 끊고 총수 입지 강화…글로비스 역할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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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지 여부에 재계 이목이 쏠린다. 그룹 내 비상장 건설사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하면 총수 일가가 확보 가능한 ‘실탄’을 대부분 확보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정점에 현대모비스가 자리 잡으면서 현대글로비스의 그룹 내 역할이 더욱 커지는 방향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동시에 정 회장의 지배력까지 확보해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이다. 전세계적으로 ESG 경영 열풍이 불고 있고 3세 경영 체제 완성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기도 해 그 시기를 미루기도 힘들다. 총수 일가 입장에서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거나 증여하는 방법까지 모색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지니고 있다. 요약하면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고리다. 중간에는 정 명예회장의 지분율(11.81%)이 높은 현대제철과 정 회장 영향력(19.9%)이 큰 현대글로비스 등이 포함된다.
시장은 약 5년 전부터 현대차그룹이 지주사를 설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의 사업부문과 투자부문을 분사한 뒤, 투자부문만 모아 지주사를 설립한다는 게 골자다.
다만 정부가 제공하는 지주사 전환 혜택 기간이 지났고, 시너지 효과가 큰 금융 계열사를 정리해야 한다는 단점 탓에 최근에는 확률이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금융 계열사를 들고 독립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정 회장이 지난 2018년 5월 택했던 카드는 ‘지배회사’였다. 현대모비스의 사업 부문을 떼어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존속 모비스를 지배구조 최상단에 놓겠다는 것이다. 기아에서 현대모비스로 넘어가는 고리는 총수 일가가 직접 매입해 끊기로 했다.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이 양도세만 2조원 넘게 내는 ‘정공법’이었지만 시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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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에서는 정 회장이 4년여 전 추진했던 지배회사 체제를 다시 준비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순환출자 고리를 단순하게 끊어 주주들의 동의를 얻기 수월하면서도 정 회장 지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이유에서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비율을 조정하면 주주총회 통과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모비스 지분을 단순 매입하는 방식은 자금 부담 탓에 힘들 것으로 예측된다. 현대모비스는 시가총액 22조~25조원대 기업이지만 정 회장은 지분을 0.32%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관건은 ‘돈’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룹 비상장 건설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다음달 15일 코스피 시장 상장을 목표로 기관 투자자 수요예측에 돌입했다.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은 이 회사 주식을 각각 534만주, 142만주 처분해 5000억원대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은 이달 초 현대글로비스 약 10%를 칼라일에 매각해 6100억원 상당을 현금화한 바 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는 차원이었지만 총수일가가 수중에 1조원대 ‘실탄’을 마련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는 게 증권가의 해석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경쟁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은 정 회장 입장에서 고민거리다. 그가 수석부회장이었던 시절만 해도 현대차·기아 자동차 사업이 그룹 구심점 역할을 하고 각종 신사업은 현대글로비스 등이 맡을 여력이 충분했다. 다만 최근에는 로봇,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이 핵심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어 각 계열사간 시너지를 새롭게 계산해야 하는 처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이 현대오토에버, 현대엔지니어링 등 지분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은 수천억원대 수준으로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서 현대모비스가 상단으로는 가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정 회장 지분율이 높은 현대글로비스가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