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고유가시대 장기화에 철저히 대비해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3.15 10:08

양수영 서울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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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영 서울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객원교수

유가 상승이 예사롭지 않다. 국제유가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2020년 바닥을 찍은 이후 꾸준히 상승하면서 작년 12월초부터 고공행진을 계속하더니 우크라이나전쟁까지 겹쳐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국내 휘발유 가격도 최근 껑충 뛰어 리터당 전국 평균 가격이 2000원을 돌파할 기세다. 앞으로 유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수요 측면에서 살펴보자. 재생에너지가 확대되어 곧 석유 수요가 정점을 찍을 것이고 언젠가는 석유를 쓰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재생에너지는 발전용으로서 석유가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하므로 재생에너지 확대가 석유 수요 감소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재생에너지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독일에서 재생에너지가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18%에서 2019년 46.7%로 증가하였으나 석유 수요 감소는 2.5%에 불과했다. 영국도 2009년 대비 2019년에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5배 증가했지만 석유 소비량은 불과 5% 감소에 그쳤다. 석유는 자동차·선박·철도·항공기의 연료와 석유화학 원료·발전 등 다양한 용도의 에너지원으로 활용되지만, 재생에너지는 발전용 에너지로만 쓰이므로 재생에너지가 결코 석유를 대체할 수 없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점차 사라지고 전기차시대로 바뀌면서 석유 소비가 감소하지 않을까. 수송 수단 중 전기차로 대체되는 것은 승용차가 대부분이며, 버스나 트럭의 경우 배터리 용량 문제로 단거리용만 가능하다. 승용차용 연료는 전체 석유 수요의 20~25%에 해당하는데, 현재 1500만 대로서 전체 승용차의 1%인 전기차가 2030년에 약 10배 늘어나 전체 승용차의 7%인 1억 4500만 대가 될 경우에도 석유 수요 대체량은 200만 배럴로 전체 석유 수요의 2%에 그친다. 게다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을 제외한 국가들에서는 경제성 문제로 전기차보다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여전히 선호될 것이며, 배터리 제조용 원료인 리튬·니켈·코발트 등 소재 공급 대폭 확대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전기차 비중이 획기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적지 않다.

석유 수요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은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이다. 2000년 약 61억 4000만 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2019년 77억 1000만 명으로서 연평균 1.3% 증가했는데, 이 기간 석유 수요는 하루 7700만 배럴에서 9800만 배럴로 늘어 인구 증가 비율을 약간 상회한 연평균 1.4%로 늘었다.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은 멈추지 않을 것이므로 석유 수요는 계속 증가할 수 밖에 없으며,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기차 증가는 석유 수요 증가를 일부 둔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국제에너지기구가 최근 발표한 에너지 수급 전망 중 실행가능한 친환경정책을 반영한 시나리오에 의하면, 석유 수요는 증가세가 이어져, 2030년대 중반 하루 1억 400만 배럴로 정점을 기록한 후 정체기를 거치지만 2050년에도 여전히 1억 배럴 이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료에서 2050년에 전 세계 석유 수요가 2020년 대비 무려 37% 증가한 1억 2600만 배럴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석유 수요 증가를 막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석유 수요가 상당 기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석유 공급 전망은 그렇게 밝지 못하다. 지난 100년간 인류는 끊임없이 기술개발을 하고 사막과 밀림, 깊은 바다에서 역경을 헤치고 도전함으로써 매장량을 증대시켜 증가하는 석유 수요를 충족시켜 왔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탐사 지역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게 되었다. 더 깊은 지층, 더 깊은 바다로 가야 해서 투자비는 대폭 증대하는데 석유회사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화석에너지에 대한 비판적 여론과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대출 규제에 직면하여 투자를 꺼리고 있다. 2020년과 2021년 상류 부문 투자 규모는 2015년 대비 절반으로 감소한 상태이다. 석유기업들은 고유가로 인해 올리는 수익을 매장량 증대를 위한 상류 부문 투자 대신에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와 주주 배당에 쓰고 있다.

석유는 인류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므로 유가는 수요량과 공급량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하루 약 1억 배럴의 석유 공급에서 몇 %에 불과한 수백만 배럴의 석유 공급 차질에도 국제유가가 심하게 출렁거렸었다. 석유 수요는 계속 증가하는데 반해, 석유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는 유가는 상승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도 유가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단기적으로 등락을 거듭할 수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지속적인 상승 추세를 보일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성철환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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