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시대, 다시 성장이다] "에너지정책, 선-악 갈라치지 말고 합리적·과학적 기반 수립해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3.16 16:53

④ 비현실적 에너지정책 바로잡자



비과학적 이념·정치화 벗고 전문가 의견수렴, 공론화 등 통해 에너지믹스 재검토 필요



윤 당선인 "원전 비중 30% 유지" 등 공약…재생에너지 확대 속도조절 불가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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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오는 5월 출범 예정인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 키워드는 ‘경제성, 안보, 과학적 합리성을 갖춘 지속가능한 정책’으로 간추려질 전망이다.

정치적 이념에 매몰됐다는 평가를 받는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6일 에너지 업계 및 전문가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줄곧 ‘탈(脫)원전 폐기·원전 육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왔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여기에 전기요금 현실화, 전력산업구조개편은 물론 실현가능한, 합리적인 에너지믹스(전원조합)를 바탕으로 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비(非)과학적 ‘탈원전’ 이념에 따라 한국전력공사의 사상 최대 적자와 함께 사실상 실패로 귀결됐다는 게 많은 에너지 업계 및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 19일 원자력 발전소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다가 지난달 25일에는 갑자기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 실패를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는 해석이 업계에서 흘러나왔다.

결국 새 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산업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 미칠 부담을 최소화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지금은 세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냉전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제3차 석유위기까지 걱정할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동행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에너지·자원 거의 전부를 해외수입에 의존하는 개방형 경제인 우리나라는 경쟁국들에 비해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가 그간 대내외적으로 강조해온 탄소중립은 원전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게 국내는 물론 해외 국가들의 흐름이다. 윤 당선인은 당장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 원전 정책 재편을 포함해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경제·안보적 측면까지 고려해 새롭게 수립해야 할 과제를 갖게 된 것이다.


◇ 文 정부 ‘에너지 정치화’ 탈피 선결 과제


전문가들은 이처럼 중차대한 현안이 많은 만큼 윤석열 당선인이 세부 정책 수립에 앞서 문재인 정부처럼 에너지정책에 ‘정치이념’을 주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정 에너지원을 선(善)과 악(惡)으로 갈라치는 게 아닌 과학적, 합리적 논리체계를 바탕으로 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한 달 만에 "위험하다"며 원전 폐지를 공포했다. 명확한 과학적 근거나 공론화 절차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술·경제적 논란과 국론분열이 뒤따랐다.

최수석 제주대학교 전기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연설문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2016년 3월 기준으로 총 1368명이 사망했다면서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청정에너지 시대가 우리의 에너지정책이 추구할 목표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며 "하지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언론 발표를 잘못 인용한 것이다. 원자력 영향에 관한 유엔과학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는 0명이다. 담당자 실수였겠지만 원자력에 대한 위험성이 과도하게 부풀려졌고, 에너지정책의 주안점으로 둬야 할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원자력의 순기능이 논의에서 거의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인물이나 진영에 대한 선호를 떠나 에너지 분야에서 온실가스 감축은 과거 백년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의 백년을 계획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고려사항으로 꼽혔다. 문 대통령의 주력 전원 발전과 달리 지난해 발표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향후 30년도 안 남은 2050년 원자력의 발전량 비중은 6.1% 내지 7.2%로 ‘주력’으로 불리기에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는 "새 정부의 에너지정책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자원-식량 문제 심화, 세계화기조 퇴조, 공급망 장애 등은 물론 인플레이션과 생활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무한정 좋은 에너지도 없고, 지극히 나쁜 에너지도 없다는 에너지시스템 기본논리에 충실해야 한다"며 "탈원전정책 폐기가 무조건 원전진흥이 아니며 탄소중립은 무작정 신재생에너지를 육성하는 게 아니다. 상황에 따라 모든 에너지가 공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기업과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된 합리적인 정책 마련을 위해 인력 활용과정에서 가치중립적 전문성 검증이 강화되어야 한다"며 "집단 이기주의 뿐 아니라 정치화된 전문가들도 경계해야 한다. RE100(사용전력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조달)이나 K택소노미(한국형 친환경기술 분류체계), 에너지기본계획,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의 조속한 재검토를 통해 적절한 후속계획을 확정하는 것도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 조절·에너지믹스 재검토 필요


새 정부는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 조절을 비롯한 에너지믹스 재검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업계와 전문가들은 현 정부에서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나 정확한 비용 산정, 국민적 동의 등이 전제 되지 않는 약속이나 목표가 너무 남발됐다고 지적해왔다. 예컨대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신규 원전 백지화와 1차 운영허기가 만료된 원전에 대한 계속 운전 포기가 골격이다. 이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470조원에 달하는 국가적 손실을 초래될 수 있다고 업계에선 꼬집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원전 안전성에 대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 목표를 설정하고, 실효적인 안전 규제를 확보하겠다"며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에너지·원자력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중립 계획에 대해 "전력 가격 상승, 원전 산업 경쟁력 저하, 일자리 감소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며 정책 변화를 시사했다. 또한 정부가 2018년 대비 40%로 상향 설정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대해 산업계와 논의하는 절차가 없었던 만큼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탄소중립 이행 강도에 대해서도 온실가스 감축과정에서 기업들의 비용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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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설비용량 비중 전망. [자료=산업부]


여기에 2050년 석탄화력 전면폐지, 액화천연가스(LNG)발전 확대 기조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국제 에너지가격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어 연료 의존도가 높은 해당 발전원도 비중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2020년 말 수립된 9차 계획은 2034년까지 가동연한 30년이 도래하는 석탄발전 30기를 폐지하고 이 가운데 24기를 LNG 발전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2034년 전원별 설비(정격용량 기준) 구성은 신재생(40.3%), LNG(30.6%), 석탄(15.0%), 원전(10.1%) 순이 된다. 석탄발전의 설비용량은 올해 35.8GW(58기)에서 2034년 29.0GW(37기)로 감소한다. 원전은 신규 및 수명연장 금지 원칙에 따라 신한울 1·2호기가 준공되는 2022년 26기로 정점을 찍은 후 2034년까지 17기로 줄어든다. 설비용량은 현재 23.3GW(24기)에서 2034년 19.4GW(17기)로 축소한다. LNG발전의 설비용량은 올해 41.3GW에서 2034년 58.1GW로 늘고, 같은 기간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20.1GW에서 77.8GW로 약 4배로 증가한다. 새정부 출범 후 수립할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선 특히 신한울 3·4호기 건설, 신규석탄발전 활용, 신재생에너지 보급 등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등 추진 속도가 어떻게 재설계될지 주목된다.


◇ 윤 당선인 "원전 발전 비중 30%대 유지…신한울 3·4호기 건설·계속 운전 허용"


새 정부 출범으로 당장 달라지는 에너지정책은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될 전망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 15일 경북 울진 산불피해 현장을 찾아 주민들에게 "이 지역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가급적 빨리 신한울 원전 3·4호기 공사를 재개해 많이 일할 수 있게 해보겠다", "신한울 3·4호기 재개를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으니 정부를 인수하고 출범하면 속도를 내보겠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에도 대통령 당선 즉시 신한울 3·4호기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신한울 3·4호기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2017년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제외하며 건설이 무기한 연기됐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말 울진의 신한울 3·4호기 현장을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건설 공사 중단은 국가 범죄였다"며 "추가 재정투입 없이 건설사업을 즉시 재개할 수 있다. 2000여 개 중소업체 인력과 조직을 유지하고,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력을 재입증해 원전 수출의 발판을 마련할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신한울 외에도 안전성이 확인된, 가동 중인 원전에 대해 계속 운전을 허용할 것"이라며 "원자력 발전 비중을 30%대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원전 수출 로드맵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2030년까지 미국과 공동으로 동유럽과 중동을 중심으로 신규 원전을 10기 이상 수주해 일자리 10만 개를 창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혁신형 소형모듈 원전, 마이크로모듈 원전 등 차세대 기술 원전 개발을 추진하고,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원자력을 청정 수소 생산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원자력 수소 기술’ 개발도 지원할 예정이다.

원전 업계에서는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면 지난 5년간 세계 최고 설계·시공 능력을 자랑하던 원전 업체들의 폐업 행진이 끝날 것이란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 연평균 10만명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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