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이제 한달 보름 남짓 지나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이미 선거 공약으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언했다. 이를 반영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확정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달성방안을 전면 수정하겠다고 천명하였다. 이로써 에너지 분야에서는 매우 이례적이었던, 태양광·풍력 진영과 원전 진영 간 정치 투쟁이 마무리되고, 적어도 향후 5년간은 원전 진영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물론 이들이 주도하는 향후 에너지 정책 기조 전환은 단순히 NDC 달성방안 전면 수정만으로 끝날 수 없다. 나아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너지 기본계획·전력수급 계획 등 정부의 각종 계획에 대한 대폭 수정작업이 뒤따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 등 수소 관련 정책 역시 재정립을 요구받을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새 정부에서 수소경제의 운명은 보급목표에 상당한 조정이 예견된 태양광·풍력과는 다를 것 같다. 무엇보다 수소경제는 탈이념적이다. 물론 에너지는 이념을 가질 수 없다. 다만 지난 5년여간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동해온 강경파의 이념 지향성과 비교하면, 수소경제 추진 동기는 지극히 순수한 산업계의 현실적 요구에서 기인했다. 이런 수소경제의 탈이념적인 성격 때문에 새 정부에서도 수용되는데 큰 장애는 없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오히려 수소경제가 새 정부의 정책 기조와 궤를 함께할 수도 있다. 수소는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물질이란 특성 때문에 그동안 재생에너지 간헐성 완충 수단으로서 주목을 받았던 것처럼, 새 정부의 원전과도 ‘콜라보’가 가능하다. 이미 소형모듈 원전(SMR)과 함께 원전 수소 기술 개발이 윤 대통령 당선인 공약에 반영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사실 원전 수소는 특히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청정수소 경제로의 이행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 국내에서 청정수소를, 특히 태양광·풍력을 활용해 저렴하게 생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상대적으로 비싼 태양광·풍력 전기의 기회비용으로 2040년까지도 수전해 수소의 생산단가가 kg당 9500원대를 상회한다고 전망하였다. 이와 대비되어 온실가스 배출이 없으면서도 계속 운전 원전 이용 시 kg당 3000원 달성이 가능한 원전 수소는 청정수소의 경제성 확보에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양적 측면에서는 원전 수소가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할 수 있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수소환원제철 기반 탈탄소화가 반드시 요구되며, 국내 주요 제철소는 연간 500만 톤 이상의 청정수소를 조달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수요량이 분산된 수소충전소나 수소발전소 등과는 달리 제철소는 한곳 당 100만 톤 이상 조달이 요구될 정도로 지리적 집중도가 상당하다. 이 경우 지리적으로 분산된 태양광·풍력 등을 통해 청정수소 대량 공급은 사실상 어렵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에서도 보듯 공급 안보적 차원에서 해외 수입에 전량 의존할 수만도 없다. 결국 국내에도 대량의 청정수소 공급원이 필요하며, 이는 최소한 현재까지 현실적으로 원전 수소만이 감당할 수 있는 기능이다. 가령 제철소 인근에 SMR과 연계한 고온 수전해(SOEC) 설비를 구축, 공급하는 방식이 고려해 볼 만하다.
사실 이 같은 원전 수소의 역할과 가능성은 2019년 발표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수립 당시부터 제기되어 왔다. 다만 당시 정부의 탈원전 기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자칫 재생에너지 확대만을 강하게 주장하는 강경파의 ‘비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논의 테이블에조차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새 정부가 그 동안의 정책 기조를 바꿈으로써, 원전 수소도 이제 제대로 논의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을 청정수소 인증제 법제화부터 시작하길 제안한다. 새 정부의 정책 기조를 반영, 원전 수소가 청정수소 인증 대상 수소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인증 기준을 온실가스 배출량, 정확하게는 전 과정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설정하면 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수소 1kg당 온실가스가 4.67kg 미만 배출되면 1등급 청정수소로 인증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기준에 따르면 원전 수소는 1등급 청정수소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