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울분 낳은 공무원 ‘월북 조작’ 논란, 野 "음모, 자해" 비판 속 판 커진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6.17 15:33
유족의 눈물

▲2020년 9월 북한군이 피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의 배우자가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 기자회견에서 이씨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안효건 기자] 지난 2020년 9월 서해상 표류 중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뒤 시신이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에 대한 국가의 ‘월북 판단’이 뒤집히면서 논란 커지고 있다. 사건 당시 해경은 군 당국 첩보와 이씨에게 도박 빚이 있다는 점 등을 바탕으로 이씨가 자진해 월북했다가 총격을 당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인천해양경찰서는 전날 "월북 의도를 찾지 못했다"며 첫 수사 결과 발표를 뒤집었다.

당장 2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온 재조사 결과에 유가족 측은 "(이전 사건 수사는) 전 정권의 국정농단"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첫 번째 수사 결과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유가족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저희가 확보한 당시 해경 진술 조서를 보면 한 직원이 ‘월북을 하려면 방수복을 입고 바닷물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이대준씨 방에는 방수복이 그대로 있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해경은 그 부분을 빼고 월북이라고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때 직원들이 (방수복 없이) 물에 빠지면 저체온증으로 3시간 만에 사망한다는 말도 했으나 이 내용 역시 빠졌다"며 "월북이라는 방향과 다르니까, 이걸 맞추기 위해서 증거를 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씨가 피살 전 월북을 하려는 징후가 없었다는 직원들 진술 내용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오늘 뉴스에서 이씨가 월북했다는 보도를 보고 터무니없는 말이라 깜짝 놀랐다", "이씨가 월북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과 관련한 언급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등의 진술이 있었는데도 정부가 월북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지침을 내린 것을 확인했다"며 "이 지침 때문에 정당한 공무 집행(사건 조사)이 방해받았고, 결국 월북이라고 발표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씨 친형 이래진씨도 "국방부와 해경이 월북을 하려다 피격당했다고 발표한 것이 서훈 전 안보실장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알기 위해 서 전 실장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동생 사고 당시 기상 상태를 알아보니 계절풍이 상당히 불었고, 파도도 높았다. 조류도 해경에서 발표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며 해경 초동 수사 자료에도 잘못된 내용이 많다고 짚었다.

이에 현 여당인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저자세‘로 인해 국민의 죽음이 부당하게 왜곡됐다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수사 필요성까지 제기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저자세가 결국 북한 눈치보기를 자국민의 생명보다 우위에 두는 수준까지 전락하고 말았다"고 직격했다.

그는 민주당을 향해서도 "월북 몰이에 장단 맞췄다. 유가족의 정보공개 청구에 항고하고 사건 당시 자료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했다"고 비판했다.

후반기 외통위·국방위 간사로 내정된 김석기·신원식 의원도 논란에 가세했다.

김 의원은 "어제(16일) 정부 발표를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가 감춘 이 사건과 관련된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며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포함한 관계자 전원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민주당을 향해 "국민을 보호한다는 헌법적 가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의무를 자각한다면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기록물 관리(열람)에 동의해주길 바란다"며 "그것을 기초로 실체적 진실과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장 15년간 비공개되는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나 관할 고등법원장 영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압도적 여소야대 국회 지형에서 민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열람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장 민주당에서는 이번에 뒤집힌 결정부터가 ‘정권 입맛 맞추기’ 등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TBS라디오 ’신장식의 신장개업‘ 인터뷰에서 "일종의 권력에 의해서 음모론을 지금 기획한 것"이라며 "월북이 아니라는 근거를 대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보안이 생명인 안보 관련 정보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왜곡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며, 이는 국가적 자해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이 가운데 감사원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최초 보고 과정과 절차 등을 정밀하게 점검해 업무처리가 적법·적정했는지에 대해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진상 조사와 발표 과정을 담당했던 국방부와 해경 등을 대상으로 감사에 착수한 것이다.

감사원은 특별조사국 소속 감사 인력을 투입해 해경 및 국방부 등을 대상으로 자료수집을 즉시 실시하고 정리된 자료수집 내용을 토대로 본 감사에도 착수할 예정이다.


hg3to8@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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