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보릿고개’ 언제까지] 인프라 구축·시장 개편 시급…"공공·민간역할, 시장경제 원칙 명확히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7.26 14:47

- 강릉, 삼척 화력 등 발전 전력 적기 송·배전 위한 전력망 확충 필요



- 현 계통상태로는 준공돼도 풀가동 못해 출력 대폭 줄여야 할 판, HVDC 등 투자 시급



- 표준투자비 등 시장 원칙에 따른 시장 참여 및 보상도 이뤄져야


아슬아슬한 여름철 전력수급 상황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일상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대정전(블랙아웃)의 걱정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전력수급 비상시기가 앞당겨지고 그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또 전력 수급난 경보음이 그간 한 여름철에만 국한됐으나 겨울철에도 울린다.

이에 에너지경제신문은 전력수급의 현 문제점 진단과 함께 다양한 전력수급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전력 보릿고개 언제까지’ 기획을 마련해 상·중·하 세 차례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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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화력발전소 건설 현장. 삼척블루파워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전력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선 발전사업에 대한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안보와 직결되고 공공재 성격을 가진 전력시장을 민간 자율에 맡겨놓을 수 없지만 민간의 발전사업 참여를 허용했다면 민간의 창의적인 사업 수행이 가능하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석탄발전업계는 최근 정부가 한국전력공사의 적자를 발전사업자에 전가하고 있다며 전력도매가격(계통한계가격·SMP) 상한제 도입과 신규석탄발전 표준투자비 축소 등의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정부가 한전의 적자 원인을 제대로 진단해 다소 고통스럽고 어렵더라도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아 정면 돌파하기보다는 탈석탄에 편승, 엉뚱한 대기업 쥐어짜기로 상황을 모면하겠다는 꼼수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

업계 관계자와 전문들은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시장원칙이 작동하는 전력시장 조성’ 정책 원칙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한다.


◇ "환경은 기업 혼자 해결할 부분 아냐…소비자도 비용부담 신호 줘야"


26일 민간발전업계 관계자는 "결국 이 모든 게 전기요금 현실화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경제성이냐 환경성이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환경에 방점을 둔다면 이건 기업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소비자들에게도 비용부담에 대한 신호를 주고 이에 동의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시행을 앞둔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는 전력거래가격이 높은 수준으로 급격히 상승하는 경우 한시적으로 평시 수준의 정산가격을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발전업계는 산업부가 행정 예고를 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과 협의나 소통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며, 산업부를 방문해 관련 고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철회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불만은 이 뿐만이 아니다. 산업부가 SMP 상한제 외에도 전기요금 인상을 막겠다며 무리한 정책을 강행한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제약비발전정산금(COFF) 미보상 실시, 액화천연가스(LNG)발전 용량요금 축소, 민간석탄발전 표준투자비 축소가 대표적이다.

COFF 미보상은 발전소를 건설하고 전력을 생산해 송전하는 과정에서 송전망 부족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대기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을 발전사업자가 모두 책임지라는 취지다. 그동안 산업부는 국가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시 한전의 송전망 건설을 전제로 발전소 건설 계획을 만들고 인·허가를 진행했으나 현재 송전망 적기 준공이 지연되면서 많은 발전소들이 송전 제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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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지역별 송전제약 현황.


◇ "표준투자비 적정 수준 보상·적기 송전선 착공 시급"


송전망 확충은 신규석탄발전업계의 당면과제로 꼽힌다. 특정 지역에서 전력 생산이 크게 늘어나면 생산 전력을 다른 소비지역으로 보낼 수 있는 송전선이 필요하다. GS동해·강릉에코·삼척블루 등 신규 발전소는 모두 강원권에 위치해 있다. 이 세 곳의 발전설비 용량 규모는 500만가구 이상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5280MW다. 서울(398만가구)보다 많고 경기(509만가구)와 맞먹는 전력 공급량이다. 한전은 이 세 곳의 생산 전력을 수도권으로 원활하게 보내기 위해 올해까지 초고압직류송전(HVDC) 송전선 건설을 완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착공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GS동해와 1호기가 건설된 강릉에코는 올해 말부터 수도권으로의 송전이 어려워 발전을 제대로 못할 처지에 놓였다. 각각 내년 3월과 2024년 4월 준공 예정인 강릉에코 2호기와 삼척블루는 설비를 갖추고도 놀리거나 생산 전기를 버릴 수밖에 없게 생겼다. 송전망이 제대로 확충될 때까지 강원권 신규석탄발전소의 가동 차질은 불가피한 셈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신규석탄화력발전사업 승인을 받을 때 기대했던 수익이 100이라고 한다면 지금 환경에서는 절반도 아니고 도산할 판"이라며 "발전소 문을 열자마자 말라죽어 무덤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연기관 자동차 공장을 만들었는데 내연기관 허가를 없애버린 격"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통상자원부도 알고는 있지만 전기요금 현실화 외엔 마땅한 대안이 없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산업부에서 대안으로 석탄화력발전소끼리만 별도로 입찰해 3개월 전에 어떤 발전기를 운영할지 정하는 ‘선도시장’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며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맞추기 위해 매년 석탄발전 총량을 정해 가격경쟁을 거쳐 낙찰된 발전소만 돌리기로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입찰에 탈락하는 발전소가 생기고 그렇게 순차적으로 퇴출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문제는 20년 이상 된 발전기는 감가상각이 끝나서 고정비 부담이 없는 대신 효율이 안 좋고 신규발전기는 효율은 좋은데 감가상각비가 커서 가격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여름 만 해도 신서천화력과 고성하이화력이 준공되자 마자 전력수급을 위해 풀 가동됐고, 겨울에도 수급이 우려되니 발전공기업의 자율적 상한제도 해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같은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처음 시장에 진입할 때 산업부는 약속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통상적으로 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총괄원가에 기반한 적정 투자보수를 보장해줬다"며 "그런데 들어올 때와 나올 때 다르다고 상황이 급변하니까 정부가 언제 다 보장해준다고 했냐고 잡아떼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건설되고 있는 민간 석탄발전소는 어려운 입지를 찾아내 주민들을 설득, 간신히 부지를 찾아내어 건설 중이다. 그만큼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건설비를 추가로 들여 간신히 착공을 하게 된 것이어서 발전소 건설비가 과거 한전의 표준건설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지게 됐다고 업계는 하소연한다.

업계는 민간 석탄발전의 건설비용을 한전의 발전자회사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큰 무리가 따른다고 주장한다.

충남 당진·보령·태안 등에 건설된 대단위 석탄발전소는 기존 부지에 추가로 건설됐고 이미 마련된 인근 부두와 하역시설을 공동 사용하는 반면 민간은 이를 처음부터 다시 건설해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설명한다.

전반적으로 업계에서는 연말 수립되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이에 대한 해결방안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산업부에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탄화력발전소 대체용으로 추진된 LNG발전소 건설도 한전의 발전 자회사들조차 부지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남아돌던 발전설비 만으로는 올 여름을 기점으로 공급부족 시대를 맞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발전량이 일정치 않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무작정 늘리고, 기저 전원인 석탄발전을 전면 폐쇄하면 전력 수급 불안과 전기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전통적인 화석에너지 문제에서도 우리가 그렇게 한가하고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도 전기화는 필수이지만 이는 더 많은 발전설비가 있어야 가능한 말이다. 발전소 하나하나가 귀중한 때"라며 "정부는 어렵게 입지를 찾아내고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건설한 민간 발전소를 구박할 때가 아니다. 고생한 민간 발전소에게 격려는 커녕 손해를 감당하라고 한다면 앞으로 누가 정부를 믿고 전력을 공급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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