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송전 동맥경화] (상) 발전기 가동 감축 본격 시작됐다…대책 없이 신규 진입 줄줄이 대기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9.25 10:55

동해안 신규석탄·원전 시운전 동시 몰려 송전망 부족…감발 운전·송전제약 현실화



尹정부 들어서도 송전망 확충 여전히 지지부진…文정부 재생E 중심 계획 유지



"내년 5GW 이상 송전제약 불가피"…올 여름 고려하면 블랙아웃 올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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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충청-수도권 송전선 구축도


대규모 발전원인 원전과 석탄화력 발전소의 송전 차질이 강원 동해안을 중심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발전 설비를 갖추고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거나 놀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력 수급 사정이 빠듯한 상황에선 이런 현상이 대규모 정전(블랙아웃)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송전 차질은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수요지로 보내는 전력망이 제대로 깔리지 않은 탓이다. 발전소의 신규 건설과 증설 등으로 늘어나는 전력 생산량에 맞춰 송전망 확충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 대규모 신규 발전소들이 줄줄이 준공·가동한다는 점이다. 이들 신규 발전소의 본격 가동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송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송전망 확충은 정부가 신규 발전소 건설 방침을 세우는 단계에서 이미 계획을 마련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 등으로 차일피일 미뤄졌다. 수년째 허송세월한 대가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바뀌었지만 이제는 주민 반발 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송전망 사업자인 한국전력공사가 비상한 각오로 송전망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에너지경제신문은 ‘발전소 완공 됐는데 뒷전 밀린 송전망 확충’을 주제로 세차례(상·중·하)에 걸쳐 국내 발전설비 및 송전망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대안을 제시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연내 정상 가동될 예정이다. 내년에는 2호기까지 준공을 앞두고 있다. 여기에 신규석탄화력발전소들도 2025년까지 줄줄이 준공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이들 발전소가 생산할 전기를 운반할 송전망이 부족한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에너지정책이 재생에너지 확충보다 기저발전 활용 확대를 통한 에너지안보 강화 쪽으로 크게 바뀌었지만 송전망 확충은 여전히 재생에너지 중심이던 지난 정부의 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있다.

발전업계에서는 이대로라면 발전소를 지어놓고도 100%는 고사하고 50%도 가동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미 지금도 신규석탄화력발전과 인근 신한울 1호기 원전 시운전이 동시에 몰리면서 송전망이 부족으로 감발 운전을 하고 있다.


◇ 발전소 준공 코앞인데…주민 반발 등에 송전망 확충 지지부진


25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는 당초 2021년과 2022년 순차 완공하기로 했던 신한울~신가평(4GW)·신한울~수도권(4GW) 500㎸ 직류 장거리 송전망(HVDC·일명 ‘EP프로젝트’)의 준공 목표연도를 2026년으로 잠정 연기했다. 적자로 인한 막대한 송전망 건설 비용과 지역 주민 반대 민원 등으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잇는 것이다.

동해안∼신가평 HVDC 건설사업의 동부 구간 1공구 공사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일부 주민과 시민단체의 입찰 무효화 가처분 신청 추진으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동해안∼신가평 HVDC 건설사업은 선로 길이가 동부 140㎞, 서부 90㎞ 등 총 230㎞에 달한다. 철탑 수는 총 440기로 선로는 경북·경기·강원도 10개 시·군을 지나게 된다.

동해안∼신가평 HVDC 건설사업에 반대하는 강원도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는 지난 21일 감사원에 HVDC 건설사업에 대한 주민감사청구를 했다. 앞서 지난 15일엔 강원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HVDC 건설사업 백지화를 요구했다.

우리나라는 서해안과 동해안에 위치한 대규모 원자력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 수도권과 대도시로 송전하는 중앙집중형 전력계통을 운영하고 있다. 인구의 대부분이 밀집한 수도권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방안이다.

지난 2011년 9월 발생한 순환정전 사태로 민간 대기업들과 발전공기업이 동해안에 신규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해왔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순차적으로 완공이 되고 있지만 정작 생산한 전기를 보낼 송전망이 각종 민원에 막혀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전기 생산지와 소비지가 다른 구조로 인해 대형발전소의 입지선정과 고압송전의 주민수용성 문제 등 사회적 갈등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지만 송전망 건설 주체인 정부나 한전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전력거래소와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동해안에 위치한 0.5GW 규모 이상의 가동 가능한 발전소의 총 설비용량은 11.5GW로 집계됐다. 반면 생산한 전력을 수요지인 서울로 보내는 주요 선로의 정격 송전용량(부하율 50% 가정)은 11GW로 조사됐다. 송전선의 수용 가능 용량을 초과하는 전력이 공급되고 있어 상시적으로 발전 제약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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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가 지난 15일 강원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전력공사 추진 ‘동해안∼신가평 500㎸ 직류 장거리 송전망(HVDC) 건설사업’의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내년부터 연간 5.4GW 송전 제약 불가피…전력수급 불안 가중


발전 제약은 앞으로 보다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올해 9월 기준 신한울 1호기 원자력발전소와 강릉안인 1호기 석탄화력발전소 시운전으로 동해안 지역에 2GW의 송전제약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신한울 2호기, 강릉안인 1·2호기, 삼척화력 1·2호기 등이 내년부터 차례로 들어서면 최대 6.8GW 규모의 전력이 추가로 공급된다.

2024년 기준 동해안 총 발전전력은 17GW로 예상된다. 동해권 전체 기저발전량이 17GW 이상으로 늘어나는 만큼 수도권 송전량도 지금보다 2배 가량 늘려야 한다. 현재 송전용량으로는 내년부터 연간 5.4GW의 손실이 불가피 하다. 한국전력이 역대급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이는 그대로 국가적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재생에너지 확대와 수요자·환경 중심의 안정적 전력계통 구축을 목표로 수립한 ‘제9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2020년부터 2034년까지 15년간의 장기 송변전설비 세부계획으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전력수급 전망과 송·변전설비 확충기준에 따라 수립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공동접속설비 제도를 도입해 전력계통에 대규모 재생에너지 집적화 단지(새만금, 서남해, 신안 등)를 효율적으로 연계하고, 재생에너지 잠재량 등을 반영한 예측물량 기반의 설비계획을 수립해 적기에 재생에너지를 접속할 수 있도록 공용 송전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문제는 향후 전력난 발생이 예상되는 동해안 지역에 대한 계획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한전은 2034년까지 77.8GW의 재생에너지를 수용하기 위해 총 29조 3170억원을 들여 송·변전 설비를 완료할 방침이다. 한전은 이 중 신재생에너지용 송·변전 설비에만 12조 2925억원(약 42%)을 배정하기로 했다. 특히 이 계획에 따르면 2034년까지 호남지역에서만 발전량 기준 전체 58.6GW 대비 55.5%에 달하는 33.1GW의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두고 에너지업계에서는 전력 대규모 생산지인 동해안 원자력·석탄 등 기저발전은 제쳐두고 소규모 불안정 신재생에너지 지역부터 연결하는 계획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정작 급하고 먼저 송전망 확충 계획이 나온 건 동해안인데 지난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에 차일피일 미루고 뜬금 없이 호남지역의 송전선 건설 계획을 세웠다"며 "동해안은 민원이 발생하고 호남은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동해안이든 호남이든 발전소가 새로 들어서더라도 송전망이 조기에 들어서지 않으면 출력을 일부 제한할 수밖에 없다"며 "전력 수급 계획을 세우면서 송전 여건을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제주도에서 발생하고 있는 출력 제한 문제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제주도는 그동안 재생에너지 잉여 전력을 활용할 방법이 없어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력공급망에 전력이 지나치게 많으면 정전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재생에너지 공급이 늘어나면서 일부 풍력발전 등에 국한됐던 재생에너지 발전소 출력 제한이 올해부터는 민간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의 발전소로까지 확대됐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제주도와 동해 송전제약 문제는 곧 전국 송전망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올해 여름에도 예비율이 7%대까지 떨어졌다. 현재 전국 전력공급설비가 100GW 정도인데 실제로 5.4GW의 송전 제약이 발생하면 예비율이 2%대 이하로 떨어져 바로 블랙아웃 위기가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전 관계자는 "최초에는 영동지역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765kV 지중화 송전선로를 만들려고 했는데 밀양사건이 터지면서 지연됐다"며 "이후 500kV급 HVDC로 지중화 없이 유사한 수준의 송전이 가능해 사업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사이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한울 3·4호기 원자력발전소가 전원계획에서 빠져나가는 변수가 생겼다. 그래서 이 HVDC사업이 필요한지에 대해 추가적으로 용역을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앞으로도 동해안에 전력설비가 많이 늘어날 것 같아 8GW급 HVDC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계속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내년 상반기까지 주민수용성 제고(마을별 특별지원, 갈등해소 홍보 등), 인·허가 조기 완료, 철저한 시공 준비 및 일정 관리를 위해 전사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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