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 동맥경화 - 下] 송전망 확충 지연에 발전사 흑자도산 위기…지역경제에도 직격탄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9.27 17:34

송전제약 장기화 땐 추가 대출도 안되고 표준투자비도 보상 못받아…대주단과 갈등 가능성



발전 수익으로 주변지역 지역자원시설세 매년 수백억 지원 및 장학사업 등도 차질 빚을 수도

석탄부두

▲한 석탄벌크선(우측)에서 석탄하역기로 발전용 석탄을 하역하는 모습.


대규모 발전원인 원전과 석탄화력 발전소의 송전 차질이 강원 동해안을 중심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발전 설비를 갖추고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거나 놀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력 수급 사정이 빠듯한 상황에선 이런 현상이 대규모 정전(블랙아웃)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송전 차질은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수요지로 보내는 전력망이 제대로 깔리지 않은 탓이다. 발전소의 신규 건설과 증설 등으로 늘어나는 전력 생산량에 맞춰 송전망 확충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 대규모 신규 발전소들이 줄줄이 준공·가동한다는 점이다. 이들 신규 발전소의 본격 가동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송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송전망 확충은 정부가 신규 발전소 건설 방침을 세우는 단계에서 이미 계획을 마련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 등으로 차일피일 미뤄졌다. 수년째 허송세월한 대가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바뀌었지만 이제는 주민 반발 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송전망 사업자인 한국전력공사가 비상한 각오로 송전망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에너지경제신문은 ‘발전소 완공 됐는데 뒷전 밀린 송전망 확충’을 주제로 세차례(상·중·하)에 걸쳐 국내 발전설비 및 송전망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대안을 제시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동해안과 수도권의 송전망 확충 지연으로 전력 수급 불안을 넘어 현재 준공돼 가동 중이거나 가동을 앞둔 동해안 신규 발전소들의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것으로 지적됐다.

수도권은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첨단산업이 집중돼 있고 인구도 밀집해 있는 곳이지만 전력 자급률은 낮다. 수도권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선 전력을 외부에서 끌어와야 해서 전력망이 잘 갖춰져야 한다.

전력계통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부담은 수도권 뿐만 아니라 비수도권 지방의 전기소비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될 수 있다. 전력계통 부문의 비용 상승분은 발전사의 총괄원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역별 전력 소비와 생산의 이같은 불균형은 특정지역에만 발전시설을 집중시켜 희생을 강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경제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이에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발전시설 입지 및 소비시설 입지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지역별, 송전거리별 차등요금제 등 강력한 가격신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노동석 서울대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수요가 집중되는 부분에 발전설비가 있으면 문제 될 게 없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전력 다(多)소비 업종이 발전소 근처로 갈 제도적 인센티브가 전무하다"며 "그렇다고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사업자가 용기를 내서 동해안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때문에 막대한 비용에도 송전망 건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좋은 차를 뽑게 하고 저속 운전 강요하는 꼴"


27일 업계에 따르면 동해안 권역에서 발생한 송전 제약이 올해에만 벌써 2기가와트(GW)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해안 권역 발전소들의 송전 제약이 내년엔 최대 그 두 배가 넘는 4.7GW, 더 나아가 향후 최대 세 배에 가까운 5.7GW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처럼 동해안 권연 송전제약이 계속적으로 악화하는 상황에서 COFF(제약비발전전력 정산금) 지급도 이뤄지지 않게 되면서 해당 지역 발전사들은 수입에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COFF는 전력시장에 입찰했으나 가동하지 못한 경우 입찰한 발전량에 대해 정산해주는 제도다.

현재 대로라면 내년부터 동해안 권역 발전사들은 돌아가면서 가동을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출력을 낮춰서 송전망 과부하를 막고 있지만 내년부터 발전기들이 대량 추가될 경우 결국 정지하는 발전기도 생길 수밖에 없다. 신규로 진입하는 발전사는 물론 기존에 잘 운영되던 발전사까지 순환정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발전기는 출력이 60% 이하로 내려가면 운영이 안된다. 이를 막기 위해 최저부하 운전을 하고 있는데 추가적으로 발전기들이 완공되면 출력을 50% 이하로 더 낮춰 운영해야 한다. 출력이 너무 낮아 운영이 안되면 결국 발전사끼리 서로 돌아가면서 가동을 중단하는 수밖에 없다"며 "2011년 순환정전 때문에 세운 발전기들을 정작 송전망이 없어서 순환정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송전 제약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COFF까지 없어지면 향후 회사의 유동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특히 프로젝트파이낸싱(PF) 원리금 상환도 어려워 흑자도산이 현실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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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약운전을 하면 발전소 운영 효율도 심각하게 저하된다. 좋은 차를 뽑아놓고 20~30km 속도로만 운전하게 하는 꼴이다. 송전제약 때문에 강제적으로 출력을 낮추니 발전효율도 떨어지고 결국 국가적 낭비로 이어진다"며 "망 사업자인 한전(한국전력공사)에서 미리 준비를 못한 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그럼 발전소들이 출력을 낮춰야 하는데 이건 산업부(산업통상자원부)가 보상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어 "지금 전력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이 250원을 넘나들고 있는데 소매는 평균 120원대다. 말이 안된다. 사실은 요금인상이 답이다. 정부가 이를 차일 피일 미루면서 발전 사업자들과 한전만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발전업계는 초고압직류송전(HVDC)이 완공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라도 추가 송전설비를 구축해서 발전량 부족 현상과 운영손실 등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HVDC완공 전까지 한시적 보상체계도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요청으로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발전소를 완공했는데 정작 가동을 못하게 하는 상황이다.

정부의 행정계획인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대체하겠다고 했는데 최근 LNG가격이 폭등하면서 무산되는 분위기다. 그런 측면에서 동해안 신규 석탄발전이 안정적 에너지믹스 차원에서 필요한데 송전제약 문제로 내년부터 40∼50%까지 송전제약이 발생하면 원리금 상환, 운전유지비 및 정비 비용 증가 등 모든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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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전소 정상 가동 못하면 일자리 등 지역경제에도 타격"


송전제약은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발전량에 연동되는 지역자원 시설세가 줄어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금도 줄어들게 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장학금 사업과 세대별 전기료 지원도 30~50%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송전망 부족이 불러오는 부정적 연쇄효과다. 원자력 또는 석탄 발전, 소각장, 집단에너지 시설 등 입지의 기본 전제는 지역 수용성이다. 해당 시설들은 지역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운영수익에서 일부를 지역자원 시설세로 지역에 납부하고 있다. 발전소가 생기면 여러 관련 물자들이 드나들면서 이로 인한 사업들이 생기고, 발전소 직원들이 지역에 집을 얻고 밥도 사먹고 하면서 지역경기 활성화로 이어진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역 입장에서는 혐오시설을 받아줬더니 정작 가동도 못하고 지역경제에도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골칫거리가 되는 셈이다. 발전사 입장에서도 10년 동안 주민동의를 받아서 겨우 완공을 앞두고 있는데 기존 계획대로 운영을 못하면 지역사회와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게 된다.

현재 석탄발전의 지역자원 시설세는 지방세로 송전량 KW당 0.6원으로 책정됐다. 한 발전사당 평균 800만MW, 25억을 납부하고 있다. 송전제약이 50% 시행될 경우 이 역시 반토막이 난다. 국세 차원에서도 부가가치세, 지자체 교부금도 줄어들게 된다.

동해안 지역 발전사 관계자는 "현재 지역 초·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연간 3억원 정도 지원하고 있다. 발전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면 규모는 더 커진다"며 "현재 300여명이 혜택을 보고 있다. 발전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면 500∼700명까지 확대될 수도 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면 기존 학생들의 혜택마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송전제약이 상시화하면 연료조달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동해안 발전소들은 공기업이 아닌 PF법인이라 신용도가 떨어지는데 안정적 가동과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업 신용평가도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회사채 발행도 안된다. 최소 5% 정도의 연간 운영수익이 나지 않을 경우 대주단과도 금리 상승과 원리금 상환 차질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임금동결, 구조조정, 자산매각, 순환휴직, 지역경제 일자리 창출 실패 등 연쇄효과로 이어지게 된다.

산업부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폐지 석탄 발전소 활용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203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30기를 폐쇄한다는 정부 계획이 실현될 경우 최대 8000명 가량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정된다. 폐지되는 30기 인원 모두가 직무 전환(일자리 전환)이 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최대 7935명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7935명 중 정규직인 발전본부 소속 노동자는 2625명, 비정규직인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는 5310명이다. 석탄발전소는 대도시가 아닌 시·군 단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발전소 폐지로 인한 유발감소금액은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한전도 적자라 송전망 투자에 예민하겠지만 발전사업자들은 생사가 걸린 문제"라며 "2025년 까지라도 준공이 되거나 적절한 보상체계가 마련되어야 어떻게든 버텨볼 수 있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보상문제는 표준투자비와도 연계된다. 지금 서해안에 있는 한전 발전 자회사 발전기들은 한 장소에 10개 호기씩 있다. 건설비도 당연히 적게 들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동해안 신규발전사들에 따르면 동해안 밀집한 발전사들의 상황은 서해안 발전사들과 다르다. 동해안은 수도권에 미세먼지나 사고 문제도 없다고 한다. 석탄이 혐오스럽지만 그래도 굳이 필요하다면 동해안에 하는 게 맞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원자력도 그런 취지에서 동해안에 밀집한 것이고 한다. 동해안 발전사측은 동해의 경우 산간지방이다 보니 서해안 평평한 땅에 짓는 것보다 건설비가 훨씬 많이 들었다고 강조한다. 과거와 달리 민원대책비 등 부가적인 사업비도 더 많이 들었다고 주장한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전력당국에 송전선로를 조속히 완공하거나 보상방안을 마련해달라고 했더니 송전선로도 없는데 발전소를 왜 완공했느냐는 답변이 왔다"며 "너무 무책임한 얘기다. 그럴 거면 애초에 발전소 인·허가를 주지 말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2030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와 탄소중립을 위해 2030년까지 17개 석탄화력발전소를 암모니아 혼소로 연료 전환을 추진 중이다. 그러면 또 투자가 일어나야 한다. 암모니아를 나를 터미널과 부두 등에 최소 5000억원 정도의 막대한 투자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모체가 되는 발전소가 송전제약 때문에 문을 닫게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10년이나 20년 동안 발전소가 남아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일단 석탄 발전소가 운영되면서 전력도 생산하고 투자비도 마련해야 암모니아 혼소나 다른 사업도 할 수 있다. 에너지 부족 국가인 만큼 모든 발전소는 국가의 전략자산이 되어야 한다. 송전선로가 건설될 때까지 발전사가 망하지 않고 최대한 가동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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