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분양권 거래 2개월 연속 '0'...분양권 급매물 줄줄이 출시
마이너스 프리미엄 분양권 등장...분양가보다 8500만원 낮은 매물도
▲대구 동대구역 인근에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들이 밀집해 있다. 사진=김기령 기자 |
[에너지경제신문 김기령 기자] #서울 중구에 거주하는 60대 A씨는 최근 보유하고 있던 아파트 분양권을 팔기 위해 부동산에 매물을 등록했다. 부동산 시장 상황이 불황인데다가 잔금을 치르기에는 갖고 있는 자금으로 역부족일 것 같아 팔기로 결정했다. 분양가보다 1000만원 저렴하게 내놨지만 잔금일이 코앞임에도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분양권을 매도하지 못하고 급하게 전세 세입자를 구해 겨우 잔금을 처리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본격화되면서 분양가보다 저렴하게 분양권을 매도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을 중심으로 분양가와 같은 가격을 뜻하는 ‘무피’ 매물은 물론 분양가보다 저렴한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 분양권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고분양가에도 수천대 일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던 서울에서도 최근 들어 마피 매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부동산 침체의 늪에 빠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8일 네이버부동산 등 부동산중개사이트에 따르면 대구 중구 ‘대구역경남센트로팰리스’ 전용면적 84.81㎡는 4억4220만원에 분양권 매물이 나왔다. 지난 2019년 분양 당시 분양가격이 5억2700만원이었는데 분양가보다 8500만원을 낮춰 매물을 내놓은 셈이다. 해당 매물은 이달 초 마피 8000만원에 나왔으나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자 지난 27일 추가로 500만원을 더 낮췄다.
대구 달서구 죽전동 ‘죽전역시티프라디움’ 전용 84㎡ 분양권은 최근 5억1980만원에 매물로 올라왔다. 초급매물로 분양가보다 5000만원 낮은 가격이다.
미분양 사태가 가장 심한 대구에서 마피 분양권 매도가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경기 양평 등 수도권 외곽에서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아파트 직거래 커뮤니티 등에도 ‘무피 2000만원 분양권 매도합니다’ 등의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분양권은 아파트 등 주택을 취득·입주할 수 있는 권리다. 새 아파트 청약 시 당첨되면 분양가의 10%인 계약금만 지불하고 분양권을 확보할 수 있다.
선분양 단지의 경우 주택 시장 호황기에는 향후 입주 시점에 집값이 오를 것을 가정하고 웃돈을 얹어 되파는 식으로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를 프리미엄(피·P)를 붙인다고 표현하는데 요즘처럼 집값 하락기에는 집값 하락 우려에 오히려 분양가보다 낮게 파는 현상이 빈번해질 수 있다.
최근 집값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고분양가 우려에 매도를 결심하는 수분양자들이 늘어나면서 싼 가격에 분양권을 매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입주 시점이 다가오면서 대출 금리 인상에 따른 잔금 납부 등 자금 융통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거래절벽 심화로 ‘마피’ 매물을 내놓아도 매수자들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다. 웬만큼 저렴하지 않고서는 매수자들이 계약을 마다하는 경우가 많다. 집값 상승에 대한 피로감에 거래심리가 위축된 데다 집값이 고점이라는 인식이 강해서다.
서울 송파구 ‘송파더플래티넘’은 이달 초부터 분양가보다 저렴하게 매물이 시장에 나와 있지만 이날 기준 아직 미거래 매물로 남아있다. 해당 단지 전용 65㎡ 분양권은 분양가인 14억7260만원보다 5000만원 낮은 14억2260만원에 매물로 올라와 있다.
이 단지는 송파아남아파트를 리모델링한 단지로 29가구가 일반분양으로 나왔고 지난 1월 분양 당시 분양가가 3.3㎡당 5200만원이었다. 당시 고분양가 논란도 불거졌지만 평균 청약 경쟁률은 2599대 1에 달하는 등 청약 열풍이 거셌다. 하지만 불과 반 년 사이에 분양가보다도 저렴하게 분양권이 시장에 등장하는 등 상황이 급변했다. 심지어 이마저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형국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분양권 거래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달도 아직 집계가 진행 중이지만 분양권 거래가 0건에 그친다. 재개발·재건축 등으로 지어지는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인 입주권 거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달 서울 아파트 입주권 거래는 마포구에서 한 건이 거래됐다. 지난달은 0건이었다.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서울 중구 신당동 일대 A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서 개발 이후로 그 많은 비용을 내고 계속 거주할 수 있는 원주민들이 몇이나 되겠냐"며 "자금이 부족해서 입주권을 파는 경우도 있는데 요즘처럼 매수자가 없을 때는 그마저도 쉽지 않아 비용 문제를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대구 동구의 B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미분양도 많이 나는 상황에서 집값이 더 떨어질까 걱정하는 분위기"라며 "매수자가 없기 때문에 억 단위 프리미엄 가격이 점점 낮아지고 있고 무피나 마피 매물도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