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출현한 한국産 '스타트업 투자 펀드'...왜?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10.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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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멀라이언 파크와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성우창 기자] 올해 국내 증권사들이 연이어 스타트업 투자 펀드를 싱가포르에 조성하고 있다. 악화된 업황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 투자 장벽이 연초 대비 많이 낮아졌고, 싱가포르 가변자본 회사(VCC·Variable Capital Company) 제도로 얻는 조세 등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단, VCC 제도를 적용받기 위한 요건도 상당히 엄격하다는 평이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은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서 ‘NH동남아성장기업펀드1’을 지난 12일(현지시간) 상장했다. 동남아 핀테크 기업 투자가 목적인 이 펀드는 NH농협캐피탈과 공동으로 설립했으며, 초기 투자 금액은 약 215억원(1500만달러)이다. 이달 중 첫 캐피탈 콜(Capital Call)을 시작으로 투자기업 선정 과정에 돌입할 예정이다. 투자 대상은 최선호국(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과 차선호국(베트남, 태국, 필리핀, 미얀마)에 소재한 핀테크, 교육,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sS), 이커머스 등 신성장 분야 유망 기업이다.

지난 5월에는 교보증권이 싱가포르에 ‘동남아시아 디지털혁신펀드’를 결성한 바 있다. 일본 SBI홀딩스,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의 자회사와 함께 펀드를 운용하며, 목표 펀드 규모는 약 718억~1072억원(5000만~7500만달러)이다. 투자 대상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와 인도, 방글라데시 등의 남아시아 소재 초기 스타트업이다. 주로 핀테크, 헬스케어(건강), 인프라테크(물류), 에드테크(교육), 아그리테크(푸드서비스) 등의 기술 중심의 혁신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 스타트업 투자 열풍 꺼졌지만..."지금이 기회일수도"


올해 금리 인상 및 증시 악화 영향으로 스타트업 투자 규모가 많이 줄어든 상황에서 이런 증권사의 스타트업 투자펀드 조성은 눈길을 끈다.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은 어려워졌는데 당장 성과를 거두기도 어렵고, 스타트업 붐으로 숫자가 늘어난 만큼 투자 실패 확률도 커졌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단체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전체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약 2조812억원으로, 전년 동기(4조5092억원) 대비 반토막이 난 상황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제 막 투자 펀드를 조성했으며, 동남아 시장을 향한 허브 구축이 주목적인 만큼 당장의 투자시장의 상황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NH투자증권의 경우 투자 대상을 시리즈 B~사전 기업공개(pre IPO) 단계 기업으로 한정하고, 건별로 4년 이내 기업공개(IPO) 또는 세컨더리 매매를 통해 초과 수익 회수 추진할 예정이다. 교보증권의 투자 기간은 5년이고, 펀드를 조성한 지 약 4개월이 지났으나 아직 신중히 투자 대상을 선별하고 있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전반적인 투자심리와 거시환경이 좋지는 않으나 장기투자에 있어 향후 돌아보면 지금이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투자했다"며 "연초보다는 밸류도 많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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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VCC 제도 개요. pwc


◇ 싱가포르 VCC 혜택도 주 요인...‘조세회피처’급 혜택


펀드 설립처가 싱가포르인 이유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미래에셋증권의 ‘미래에셋-네이버 아시아그로쓰 펀드’처럼 국내에 소재하면서 해외 지역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펀드도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싱가포르 VCC 제도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이 제도는 싱가포르 현지에서 기업형 펀드를 만들 경우 운용사 국적을 불문하고 법인세·소득세를 면제하며, 설립 및 운영 비용과 재무제표 공시 요건을 상당 부분 완화하는 등 여러 특혜를 제공한다. 또한 회원·주주 승인 없이 주식 발행과 상환이 가능하고, 다양한 자산군에 별도 라이센스 없이 투자가 가능하다.

이는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등지에서 글로벌 운용사를 유치하기 위해 이미 시행했던 제도와 유사하며, 싱가포르는 아시아 금융중심지라는 메리트가 있기에 국내 증권사들이 적극적으로 눈을 돌린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요건도 엄격한 편이다. VCC제도를 통해 설립된 회사의 자본금은 언제나 순자산액과 동일해야 하고, 싱가포르 현지 증권선물법(Securities and Futures Act)의 적용을 받게 된다.

특히 싱가포르에 설립돼야 하는 만큼 현지에 종속돼야 하는 여러 요건이 발생하게 된다. 운용역은 싱가포르 현지 자격에 따른 펀드매니저가 맡아야 하며, 싱가포르 소재 사무실은 물론 현지 출신 회사 비서를 고용해야 한다. 또한 이사 중 최소 한 명은 싱가포르에 거주해야 한다. 더불어 싱가포르에서 인정하는 회계양식에 따른 재무제표 양식을 갖춰야 하고, 이를 싱가포르 현지 회계 감사인에게 감사받을 의무가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펀드 출시는 VCC 혜택 영향이 크다"라며 "VCC는 케이맨제도 등 조세회피처 급의 혜택을 주는 제도"라고 말했다.


su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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