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송재석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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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시장 경색을 일으킨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에 기업의 자금 조달이 난항을 겪고 있다.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채에도 투자자들의 수요가 미달되면서 ‘3고 1저’(고금리·고환율·고물가·저성장)에 가뜩이나 긴축경영에 나서고 있는 기업들은 일말의 희망마저 잃은 듯하다.
금융시장 불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레고랜드 사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하기만 하다. 레고랜드 사태는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회생 신청 발언에서 시작됐다. 김 지사는 지난달 28일 레고랜드 테마파크 기반조성사업을 했던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법원에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GJC가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할 당시 강원도가 채무보증을 섰는데 이에 대한 보증채무를 갚지 않겠다고 김 지사가 돌연 뒤집은 것이다. 김 지사는 이미 최문순 전 지사가 벌인 사업에 대규모 칼날을 들이대겠다고 예고해왔다. 김 지사는 2018년에도 레고랜드가 도민 혈세 1200억원을 쏟아부었는데도 불구하고 7년 동안 진척된 일이 없고, 앞으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2050억원 규모의 ABCP는 결국 이달 4일 최종 부도처리됐고 파장은 상당했다. 우선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유동화증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단번에 무너졌다. 신용평가사들은 지자체의 신용도가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다는 이유로 GJC가 대출을 위해 만든 특수목적법인인 아이원제일차에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했는데 이러한 신뢰가 크게 흔들린 것이다.
레고랜드 사태는 신용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경제시스템을 정치 논리로 접근했을 때 일으킬 수 있는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레고랜드가 아니더라도 가뜩이나 시장은 돈맥경화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금리상승으로 각 경제주체들의 자금조달비용은 급증했고 금융권이 부동산PF 대출에 대한 빗장까지 걸어잠그면서 건설사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발행시장의 유동성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건설사, 금융권의 신용위험으로 전이될 수 있다. 국내외 금융시장에 때아닌 부도설이 도는 것은 작금의 위기가 더욱 심상치않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곳이 스위스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CS)다. 이 회사는 지난해 파산한 영국 그린실 캐피털과 한국계 투자자 빌 황의 아케고스 캐피털에 대한 투자 실패로 인해 지난 7월까지 3분기 연속 손실을 기록했다. 무디스는 크레디트스위스가 올해 3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가파른 물가상승,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등 외부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한 이 위기 역시 어디가 끝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당장 다음달 미국은 또 한 번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있다. 살얼음판인 자본시장이 연일 정부의 입만 쳐다보는 이유다.
그러나 이 모든 시장 상황의 원인이 정부에 있느냐고 묻기에도 어폐가 있다. 지금의 자본시장 경색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기준금리 인상에서 촉발된 부작용들이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부상하는 것이다. 강원도의 어설픈 발언이 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맞지만 이 역시도 정부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가 최근 들어 하루가 다르게 긴급 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음에 따라 단기간 금융시장은 진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둔촌주공아파트의 PF가 만기를 하루 앞두고 차환 발행에 성공한 것이 시장 안정의 물꼬를 트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더욱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자금시장 경색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계획은 이미 실기했다는 비판론이 적지 않다. 작금의 자금시장 경색을 안일하게 바라봤다는 지적 역시 타당한 측면이 있다. 정부의 과감한 행동과 정책 방향타 설정이 중요한 상황에서 정부가 오히려 금융사에 SOS를 치는 듯한 행보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모두가 ‘최악은 끝났다’고 안도할 때에, 정부는 소방수 역할을 잠시도 놓아서는 안 된다. 경제위기는 하나의 실수도 결코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mediasong@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