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샌드박스 승인과제 전수분석
"승인과제 88%, 한국에만 있는 규제 장벽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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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낡은 법과 제도에 막힌 혁신 사업자에게 특례를 부여하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제적 흐름과 단절돼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를 푸는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다.
대한상공회의소 샌드박스 지원센터는 ‘규제 샌드박스 승인과제와 규제현황 분석’ 보고서를 31일 공개했다. 지난 2020년 5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지원센터를 통해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받은 과제 184건을 전수분석하고 규제 샌드박스 의의와 제언을 담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상의 규제 샌드박스 승인과제 중 88%(162건)는 해외에선 가능하지만 국내에선 불가능했던 사업모델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한국에는 국제적 흐름과는 맞지 않는 규제 장벽으로 인해 시작조차 하지 못한 사업모델이 많다"며 "규제 샌드박스는 개점휴업 중이던 사업들을 우선 허용해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비대면 의료’다. 미국, 영국, 유럽 등 선진국 중심으로 시작된 비대면 진료 사업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았지만 한국에선 불가능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재외국민 국민을 대상으로 한 한국 의료진의 비대면 진료 서비스, 홈 키트를 활용해 집에서 성병 원인균 검사를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 집에서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스마트 기기 등이 사업의 첫발을 뗐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갈라파고스 규제’를 해결한 사례가 많았다. 자동차 강국인 미국, 독일 등에선 차량 소프트웨어를 무선 업데이트할 수 있는 ‘OTA 서비스’, 자율주행차량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 ‘3차원 정밀지도 서비스’ 등 사업이 가능했지만 한국에선 어려웠다.
또 자기 차량을 타인과 공유하는 차량 P2P 서비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자가용을 활용해 병원까지 데려다주는 NEMT(Non Emergency Medical Transportation Service) 서비스는 이미 해외에선 가능한 사업으로 분류됐다. 위 사업들도 규제 샌드박스로 한국에서의 첫 삽을 떴다.
보고서는 규제 샌드박스가 신사업에 ‘기회의 문’을 열어 주고 있다고 언급했다. 분야별로는 모빌리티(37건), 공유경제(26건), 의료(23건), 에너지(20건), 스마트기기(17건), 플랫폼(15건), 푸드테크(15건), 로봇·드론(10건), 방송·통신(8건), 펫 서비스(6건), 기타(7건) 순으로 많았다. 모빌리티, 공유경제, 의료 분야에서 승인받은 과제가 전체 승인과제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최현종 대한상공회의소 샌드박스지원팀장은 "규제법령이 많고 이해관계자 반대로 신사업 진출이 어려운 모빌리티, 의료 분야에서 사업자들이 규제 특례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신산업이 생겨나고 있는 공유경제 분야에서도 불합리한 규제를 적용받아 샌드박스를 찾은 사례가 다수"라고 말했다.
특히 신사업을 펼치려는 스타트업·중소기업이 규제 샌드박스를 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대한상의 승인과제 184개 중 138개(75%)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신청한 과제였다.
보고서는 최근 대기업의 규제 샌드박스 활용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0년과 작년 대기업의 비율은 18%대에서 2022년(10월 기준) 32%대로 1.7배 가량 크게 뛰었다. 보고서는 "에너지, 방송·통신과 같이 대기업 중심으로 큰 투자가 이뤄지는 산업군에서도 신사업 추진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한상의는 보고서를 통해 규제 샌드박스 발전 방향도 제시했다. △신속한 법령정비 △사업시행 조건 완화 △컨트롤타워 역할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규제 샌드박스로 사업화의 물꼬는 텄지만, 해외에선 이미 법제도가 완비돼 규제 없이 사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규제 샌드박스 신청이 다수인 사업, 파급력이 큰 사업, 규제법령 정비의 근거가 확보된 사업 등은 신속하게 법령정비를 진행해 글로벌 경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대한상의는 코로나 이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비대면 의료, 공유플랫폼, 건강기능식품 관련 규제도 신속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규제 샌드박스가 신사업을 시작하려는 기업들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주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기업들은 해외보다는 강한 규제 환경 속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며 "정부는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제도를 신속하게 정비해 혁신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