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전 아이러니 캠페인 속사정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11.20 14:43

에너지경제 구동본(에너지환경부장/부국장)

구동본

담배회사가 금연운동하는 것을 어찌 봐야 하나. 우선 병 주고 약 준다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없는 게 아니다. 담배회사엔 거미줄 규제로 마땅한 마케팅 방도가 없다. 캠페인이라도 해서 이름을 알리는 게 고작이다. 일종의 패러독스(역설) 마케팅이다.

담배회사는 사람 몸에 해로운 담배를 판다는 숙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약점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금연캠페인을 공익활동으로 포장해 기업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돌려놓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드물다. 당장 빵 장수만 봐도 전혀 다르다. 빵 장수가 빵 소비 절약에 나선다면 누가 봐도 어이없는 일이다. 빵을 만들거나 파는 사람 입장이라면 빵 소비를 늘려야 한다. 그런데 소비시장을 키워도 모자랄 판에 자청해서 소비 줄이기에 나선다면 미쳤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그게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전기를 판매하는 한국전력공사, 한전 자회사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공기업. 그들이 최근 이 모순된 행동에 나섰다. 지난 14일 전국 주요 거점 도시 대국민 거리홍보를 시작으로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직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겨울철 에너지절약 실천요령 자료를 배포했다. TV와 라디오 등 매체에선 공익광고 형태로 에너지절약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왜 이런 아이러니가 벌어지는가. 공기업이니 정부가 시켜서일까. 솔직히 꼭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시급한 과제다. 당연히 정부가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고비용 저효율은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린다. 당장 우리 경제 사정을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무역수지의 악화 원인 중 78%를 차지한다고 한다. 무역수지가 최근 역대급 적자 기록을 잇달아 갈아치우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는 고환율·고물가를 불러왔다. 이는 결국 소비 및 투자 축소로 이어지고 경제성장의 엔진을 식게 만든다. 에너지 고비용 저효율이 우리 경제를 허약체질로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를 90% 이상 수입에 의존한다. 그런 우리로선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가 생존 전략이자 국가 경쟁력 향상의 무기다. 하지만 우리의 에너지 소비실태를 보면 걱정이 태산이다. 에너지 다소비 국가 중 세계 8번째다. 국내 총생산 대비 에너지 소비량으로 계산하는 에너지 효율 수치를 보면 최하위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개국 중 35위다. 유럽 국가들은 비교적 에너지의 자급률이 높고 소비나 효율 면에서도 대체로 우리보다 낫다.

그런 유럽조차도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을 맞아 짠내 나는 위기 극복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일반 가정에선 샤워시간을 줄이며 불편을 감수한다. 프랑스 관광 명소인 에펠탑 조명도 1시간 일찍 소등한다. 밤거리 가로등이나 간판 네온사인까지 꺼서 관광객이 호텔 찾기 쉽지 않을 만큼 어둡다. 기업은 회사 에너지 경비 절감을 위해 재택근무를 확대하려다 직원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문제의식도, 위기감도 없어 보인다. 에너지 위기는 딴 세상의 일 같다. 그만큼 한가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과소비 또는 낭비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에너지 절약하는 게 마치 바보 취급 받는 세상이다. 곳곳이 에너지 소비로 흥청망청이다.

한 겨울에도 실내 런닝셔츠에 반바지차림이다. 한강다리나 도심 새 아파트 야간 조명은 휘황찬란하다. 상가 밀집 지역은 곳곳이 불야성이다. 문 열고 난방이나 냉방하는 가게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농촌에선 과일재배도 전기 온실에서 한다. 국내 전력의 63%를 쓰는 산업현장은 온통 에너지 다소비 기반으로 짜여져 있다. 반도체·자동차·철강·정유화학 등 주력산업 자체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업종 일색이다.

정부가 우리 사회의 이런 에너지 과소비와 비효율에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한전과 산하 발전 공기업은 전기를 판매하거나 생산하는 곳으로 에너지 소비절약에 나서는 것을 내켜하지 않을 수 있다. 설령 그럴지언정 그들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에너지 낭비를 막고 비효율을 제거하는데 앞장서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고 존재 이유다.

한전과 산하 발전 공기업의 최근 절전 캠페인이 단순히 정부의 정책적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한전이 최근 처한 상황은 에너지 소비 절약 캠페인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절박하다. 정부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절전 운동의 전면에 설 수밖에 없다.

한전은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영업손실 21조8342원을 나타냈다. 지난해 연간 적자(5조8542억원)의 3.7배에 달했다. 특히 올해엔 한전의 주 수입원인 전기요금을 18% 정도 올렸는데도 적자가 천문학적인 규모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제 에너지가격이 크게 치솟으면서 발전 연료비가 급등했는데도 이를 전기요금 상승이 따라가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 전기를 팔수록 손해 보는 한전의 사업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사업구조에선 많이 파는 것보다 적게 파는 게 유리하다. 사업을 접는 게 최선이다. 그렇다고 공기업이니 장사를 안 할 수도 없다. 오죽했으면 한전이 에너지 절약 캠페인까지 벌이겠는가.

발전 공기업도 생산 전력을 한전에 제값 받고 팔면 별로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한전에 인계철선이 달려 있다. 한전의 자회사로 재무제표 작성이 연결기준이다. 한전이 연료비 정산 등 방식으로 수익을 조정해 나눈다. 한전이 경영 악화에 놓이면 발전 공기업으로부터 전력을 사가면서 제값을 쳐주기 어렵다. 한전이 휘청거리면 발전 공기업도 연쇄적으로 어려워진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자구노력이 뒤따르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대부분은 전기요금이나 세금을 더 많이 내 적자를 메워주는 수밖에 없다.

한전의 최근 경영악화가 급기야 금융시장의 돈맥경화까지 불렀다. 최우량 등급으로 평가받는 한전채가 금융시장의 블랙홀로 떠올라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6%대 금리로 시중 자금을 쓸어가면서 수요가 집중되는 연말 기업 등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한전은 적자 누적으로 전력을 사올 자금이 부족하자 채권 발행을 늘리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한전채는 23조9000억원(장기채 기준)어치 신규 발행됐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공사채 신규 발행액의 70%가량을 차지한다.

에너지 절약 캠페인은 에너지 과소비와 비효율 문제점을 알리고 그에 따른 위기 경각심을 일깨우는 좋은 계기다. 지난 1998년 국가 부도 상황에서 금 모으기 운동도 외환위기 극복의 단초였다.

캠페인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보다 실효성 있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를 위해선 여러 인센티브나 패널티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요금 현실화 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요금이 높으면 에너지를 쓰라고 해도 못 쓴다. 캠페인 같은 번잡한 일을 요란하게 벌일 것도 없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요금이 싸기로 유명하다. 특히 전기요금은 독일의 5분의 1,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가스요금도 영국의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 요금 수준을 싸게 유지하면서 말로만 절약을 외쳐 본들 효과가 얼마나 있겠는가. 정부가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를 위해 해마다 캠페인을 벌이고 관련 사업 추진을 위해 수천억 원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도 에너지 과소비는 여전하다. 산업현장의 효율화나 사업구조 개편 등이 더디다.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전기 먹는 하마 ‘데이터센터’의 천국으로 꼽히는 것도 바로 저렴한 전기요금에 있는 것 아닌가. 전기요금이 싼 것을 빗대어 돈을 ‘물 쓰듯 한다’는 말도 이제 ‘전기 쓰듯 한다’로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우스개를 그냥 흘려들을 수 없다.

에너지 요금의 현실화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지금처럼 대통령 지지율이 낮고 국민 살림살이 형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선 더더구나 어렵다. 에너지는 모든 산업의 기본 원료다. 에너지 가격을 올리면 서민경제에 타격을 주는 물가 불안의 충격과 우려가 없지 않다. 가뜩이나 고물가 상황인데 공연히 물가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정책이든 효과가 있으면 부작용이 따른다. 그렇다고 그 부작용이 무서워 제 때 효과적인 정책을 못 쓰고 기회를 놓치면 그 비용과 후유증은 커질 수밖에 없다. 냄비가 끓기 전에 레인지 온도를 낮춰야 한다. 부풀어 오른 풍선은 바람을 서서히 빼야 한다. 에너지 요금 폭탄이 한꺼번에 터지기 전에 좀 더 과감한 에너지 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 자꾸 물가 불안 핑계를 대고 눈치 보며 효과가 의심되는 캠페인 등으로 먼 길을 돌아가지 말라. 캠페인은 내년 본격적인 에너지요금 현실화에 앞서 예방주사 역할을 할 수 있다. 에너지요금 현실화로 당면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 바란다. 결코 쉽지 않는 길이지만 보다 확실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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