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에 이자 내주는 집주인…역전세 넘어 ‘역월세’ 확산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11.22 15:26

쌓이는 전세 매물에 신규 세입자 찾기 어려워



집주인, 월세처럼 비용 주며 ‘세입자 모시기’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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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공인중개업소 모습. 사진=김기령 기자


[에너지경제신문 김기령 기자] #서울 영등포구 대단지 아파트를 보유한 A씨는 최근 세입자와의 전세 재계약 문제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전세 만료일을 앞두고 전세가격이 너무 비싸서 나가겠다며 보증금을 달라고 하는 세입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어서다. 전세 수요가 없는 요즘 신규 세입자를 찾기 막막해진 A씨는 기존 세입자를 붙잡기 위해 전세가격을 낮추지 않는 대신 하락한 전세가격 1억원에 해당하는 대출 이자를 줄 테니 재계약하자고 제안했다.

최근 전세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임대차 시장에서 역전세를 넘어 역월세가 늘어나고 있다. 계약 만기 시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주기 힘들어진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도리어 월세처럼 비용을 주면서 재계약하려는 것이다. 기존에는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서 발생했지만 최근 들어 서울로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2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대단지 아파트에서도 전세가격 하락에 따른 역월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역월세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낮추지 않는 대신 세입자의 전세자금대출 이자에 해당하는 비용을 세입자에게 월세처럼 매월 지급하면서 재계약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한 아파트 단지의 2년 전 전세가격이 9억원인데 전세 시세가 1억원이 하락해 8억원에 거래되고 있는 경우 세입자는 계약 만료 시점에 집주인에게 전세가격을 낮춰달라고 요구하거나 이사를 가겠다고 통보할 수 있다. 시세 대비 본인의 전세보증금이 비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때 집주인이 영끌·갭투자로 집을 마련한 상황이라면 1억원이 부족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 9억원을 온전히 돌려주기 힘든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1억원을 대출 받아서 보증금을 돌려줄 수도 있겠지만 기존 세입자와의 협의를 통해 9억원에 재계약하고 전세자금대출 1억원의 이자만큼의 비용을 세입자에게 매월 지급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따로 신용대출을 받는 것보다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임대차 시장에서 역월세까지 등장한 데는 전세 매물 소진이 쉽지 않아서다. 전세 매물은 계속 쌓이고 있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3만221건에서 5만1478건으로 70%가 증가했다. 반면 국토교통부 통계 기준 지난 9월 전세 거래량은 9만5219건으로 전월 대비 11.7% 줄었다.

이처럼 전세 수요가 줄어들면서 전세가격도 빠르게 하락하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은 0.53% 떨어지며 역대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영등포구 문래동 A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지난 여름부터 4개월 넘는 기간 동안 신규 전세 계약 딱 1건 체결했다"며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없고 전세가격이 하락하면서 갱신계약 건도 집주인과 세입자간 가격 갭 차이가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역월세 현상은 당분간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집주인을 통해 전세보증금 일부를 받으면서 거주할 수 있고 이사 비용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역월세 자체가 나쁘지 않다는 분위기다. 다만 전문가들은 집주인의 자금 능력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집값이 계속 하락하면서 전세가격도 나란히 하락하는 양상이라서 역전세·역월세 현상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시가와 선순위 채권을 합했을 때 70% 이하여야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여부를 잘 판단해서 권리 변동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giryeo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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