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희기자의 신재생 톺아보기] 공급 의무 없어지면 보급 축소 불가피…"대체 수요 만들고 가격 낮춰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11.27 14:32

RPS 장기 폐지 정부 방침 놓고 정치권·업계 갑론을박



"신재생에너지 자생해야" vs "지원·보급 더욱 확대해야"



발전업계 내심 RPS 부담서 해방돼 자율 사업추진 원해

KakaoTalk_20221125_160221004_02

▲국회기후환경포럼이 주최해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수출기업 RE100 확보! RPS 제도 개선 방안은’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앞줄 왼쪽부터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관석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조용성 고려대 교수. 사진= 이원희 기자


[에너지경제신문 이원희 기자] 공공 및 민간 대형 발전사의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를 폐지하는 정부 장기 청사진을 놓고 정치권과 업계의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논박의 대상은 신재생에너지 보급의 핵심 정책인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의 존폐문제다. RPS는 공공 및 민간 대형 발전사가 발전량의 일정부분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할 수 있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재생에너지 사업자에 생산전력의 안정적인 판매시장을 만들어주고 일정한 사업 수익도 보장해주되 발전사엔 의무 이행에 따른 비용을 보전해왔다.

27일 정치권과 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장기적으로 이런 RPS 제도를 폐지하고 입찰시장의 경매 거래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하면서 관련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RPS 제도 폐지 사안은 윤석열 정부 들어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에 대한 전임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지원문제가 불거졌고 지원과정에서 불법과 부정이 적발돼 신·구 정권의 권력다툼으로 비화되면서 정치 이슈로까지 떠올랐다.

RPS 제도가 폐지되면 공공 및 민간 대형 석탄발전 및 원전의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가 사라진다. 입찰시장의 경매 거래는 RPS 이행 대상 발전사를 포함 신재생에너지 수요 기업들이 입찰시장에서 재생에너지를 필요한 물량만큼 원하는 가격에 직접 사게 하는 것이다. 현행 RPS 제도에서 대형 발전사들이 의무공급량 중 자체 공급할 수 없는 물량을 한국에너지공단의 장기고정가격계약 입찰대행을 통해 사들이는 방식과 다르다. 대형 발전사의 의무공급 물량 자체가 없어지면 당분간 신재생에너지 수요는 큰 폭으로 줄어들고 수시 직접 입찰하게 되면 입찰 물량의 변동성도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재생에너지 업계는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정부의 보급목표를 달성하려면 불가피하게 사업자들의 안정적인 판매시장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집권 국민의힘과 현 정부, 대형 발전사 등은 그간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을 정부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하고 그런 지원이 불법과 부정을 낳을 것을 넘어 정치 집단화하게 만든 결과를 낳았다고 맞선다.

정부의 방침대로 RPS 제도를 순조롭게 폐지하고 직접 경매입찰을 활성화하려면 신재생에너지 구매시장 규모가 줄지 않도록 신재생에너지의 수요를 늘리되 구입 가격은 낮추는 환경조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제언이다. 그런 환경 조성 방안으로 우선 RPS 이행 발전사들이 현재 맡고 있는 의무공급 물량을 대체하고도 남을 새로운 재생에너지 수요의 창출이 꼽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대기업과 공공기관 중심의 RE100(기업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참여 확대가 재생에너지의 새로운 수요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그간 국내 신재생에너지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해온 대형 발전사의 재생에너지 공급 의무를 없애고도 신재생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가는 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장기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문재인 정부 때 잡았던 것보다 낮췄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급 물량 자체를 줄여나가겠다는 게 아니라 늘려나가되 그 증가 속도를 늦추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권의 재생에너지 속도조절 입장에 맞춰 RPS 제도 폐지를 아무리 장기 과제라고 하지만 뚜렷한 대책 없이 내놓은 것 아니냐고 꼬집는다.

직접 경매입찰 활성화 방안도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화석연료인 석탄·액화천연가스(LNG)과 원자력 발전 등 다른 발전원과 비교해 발전 단가가 훨씬 높아 다른 발전원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런 신재생에너지를 경매입찰 시장에서 다른 에너지원과 직접 경쟁을 통해 팔게 하는 것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자를 배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우선 신재생에너지 사업만 입찰할 수 있는 경매시장을 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발전단가가 다른 전원별 전력구매 입찰시장 마련을 정책방향으로 제시했다. 신재생에너지는 발전단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만큼 신재생에너지끼리만 입찰 경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 자체를 낮추는 게 관건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신재생에너지 공급 구조는 고비용 체제다. 정부가 영세 태양광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보급사업을 펼치면서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정부의 우산 속에서 각종 지원을 지나치게 많이 받게 됐고 그게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의 고비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최근 소규모 태양광에 대한 지원을 축소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보다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태양광의 경우 대기업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 마련 필요성이 제안됐다. 기업이 태양광 사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도록 사업의 각종 인·허가가 적극적이고 대폭적으로 완화돼야 한다는 뜻이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은 그간 RPS로 거대 발전사에게 발전량의 일부를 신재생에너지로 채우도록 강제적인 의무를 부여해서 추진됐다. 신재생에너지의 비싼 발전비용 탓에 시장에만 맡기면 보급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RPS 운영 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지나친 지원 비용과 특혜 논란이 따라왔다. 발전사의 신재생에너지 조달 비용은 전기요금의 기후환경요금에서 마련한다. RPS 의무이행비용은 지난해 3조1900억원이 들었고 앞으로 수십 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와 국회, 업계에 따르면 앞으로 바뀔 RPS 제도에 대해 주목하고 개편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사단법인 국회기후변화포럼 주최로 국회에서 ‘수출기업 RE100(기업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확보! RPS 제도 개선 방안은’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3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신재생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해 RPS 의무비율을 내년부터 하향하고 중장기적으로 RPS 제도를 폐지하고 경매제도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것이 토론회가 열린 배경이다.

토론회에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인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내 기업에 RE100 동참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취약한 재생에너지 공급 여건으로 재생에너지가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라며 "재생에너지를 적극 확대해야 하는데 지난 3일 산업부에서 재생에너지 RPS 의무비율을 하향하고 폐지를 검토하는 정책을 발표해서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RPS가 재생에너지 전력 가격을 낮추지 못하는 문제도 지적됐다.

거대 발전사들은 의무적으로 RPS를 통해 재생에너지 전력을 강제로 확보하다 보니 그 비용을 한국전력으로부터 정산받는다. 비용을 정산받을 수 있으니 비용을 낮추는 데 덜 적극적이라는 의미다.

조상민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RPS로 재생에너지 전력의 비용하락 유인이 부족하다"며 "발전의무사들은 의무이행비용을 한전으로부터 정산받아 구입비용 최소화보다 의무이행량 충족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RPS 제도 폐지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기후환경 단체인 플랜 1.5의 권경락 공동대표는 "전 세계가 파리협정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마당에 기존 목표를 강화하기는커녕 축소하려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산업부의 정책 자료에는 RPS를 수정 혹은 폐지가 왜 필요한지 종합적인 분석과 평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철용 부산대학교 교수는 "태양광과 풍력은 연료비가 발생하지 않아 고정가격 장기계약 방식의 경매 제도가 적합하다"며 "다만 제도라는 것이 갑작스럽게 바뀌면 시장에 너무 큰 혼란이 온다. 일단은 RPS를 유지하면서 경매시장을 열어보고 얼마나 많은 발전사업이 활성화되는지 확인하고 RPS를 없애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여당에서는 그동안 RPS 의무이행 비용이 지나치게 많아져 속도조절을 해야 하다고 지적했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6년까지 RPS 의무비율이 25%로 늘어나면 RPS 의무이행 비용은 총 35조8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한 의원이 한국에너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중장기 신재생에너지 보급목표 달성을 위한 RPS 의무비율 개선방안 연구보고서’를 분석했을 때 그렇다.

지난해 세운 RPS 의무비율 목표에 따르면 올해 RPS 의무비율은 12.5%이고 2026년에는 두 배인 25%로 늘어날 예정이었다. RPS 의무비율 12.5%는 대규모 발전사들이 발전량의 12.5%를 신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채워야 한다는 의미다.

한 의원은 "RPS 비율 상승으로 인해 한전의 적자가 가중되면, 이는 곧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과 국민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며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기업과 국민들에게 더 이상의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신재생에너지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RPS 의무비율 목표를 하향할 예정이다. RPS 의무비율 25%를 달성하는 시점은 2026년보다 더 늦어질 예정이다.

발전업계에서도 RPS 폐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설비용량 500메가와트(MW) 이상 발전설비를 보유한 발전공기업과 민간발전사 등 총 24개 발전사들은 RPS에 따라 발전량의 일부를 신재생에너지 전력으로 확보해야 한다.

발전사들은 RPS 의무이행비용을 전기요금의 기후환경요금을 통해 얻은 재원으로 한국전력으로부터 지급받는다. 하지만 RPS 의무이행비용을 지급할 때 24개 발전사들이 신재생에너지전력을 확보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평균을 내서 계산하고 지급한다.

그러다 보니 한 발전사가 발전사들의 평균 신재생에너지 전력 조달비용보다 싸게 조달하면 이익을 얻고 비싸게 조달하면 손해를 볼 수 있는 구조다.

내심 발전사들도 RPS를 지키기 위해 골머리를 앓기보다는 의무에서 해방되길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억지로 비용부담을 안고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확보하기보다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의 수익성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진출하는 게 낫다는 의미다.

한 민간발전사 관계자는 "RPS를 이행하기 위해 내부에서 시스템과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비용"이라며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확보하는 데 부담이 점점 커지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wonhee4544@ekn.kr

이원희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