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재생에너지 축소로 탄소중립 목표 후퇴" 공식 반발
- 에너지법 개정·국회보고 모두 합의 안 해주는 상황…정부의 설득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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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지난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개최됐다. |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윤석열 정부의 첫 공식 에너지정책으로 최종 확정을 앞두고 있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의 실행에 문제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0차 전기본이 행정계획에 불과한데다 종전 상위 계획으로 법적 근거를 가졌던 상위계획(에너지기본계획)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등 업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원내 절대 다수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측이 정부의 10차 전기본 초안에 잇달아 반대의견을 나타내며 정부의 보고조차 미루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부처간 이견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환경부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선 10차 전기본의 재생에너지 비중 상향을 제안했으나 산업부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갈 길 바쁜 정부로선 사면초가에 빠졌다. 상황 자체가 10차 전기본의 조속한 확정으로 에너지정책에서 전임 문재인정부의 탈원전·재생에너 확대 등과 차별화를 서둘러 추진, 가시적인 국정운영의 성과를 내려는 윤석열 정부의 다급한 입장과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 모양새다.
자칫 10차 전기본이 실행으로 이어지 않고 탁상공론에 그치거나 법적 논란만 부른 채 허송세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지적됐다.
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 국민의힘 의원은 "산업부에서는 2일 국회보고를 요청했으나 민주당이 합의를 해주지 않고 있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대통령실에서는 신한울 3·4호기 공사 신속 추진 등 새정부의 에너지정책 추진을 위해 당초 12월 말로 예정된 국회보고 일정을 최대한 앞당겨달라고 산업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지난달 28일 관련 공청회 당시 향후 10차 전기본 추진 일정으로 국회 보고 후 산업부 산하 전력정책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10차 전기본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회 보고가 지연되면 10차 전기본 최종 확정도 미뤄질 전망이다. 전기본은 최종 확정 이전에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 행정계획이어서 유관 환경부와의 협의를 마쳐야 하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협의가 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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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전원별 발전량 비중 전망 (단위 TWh). 출처: 양이원영 의원실 |
◇ 野 "재생에너지 비중 축소는 세계흐름 역주행"…산업부 "연 평균 보급량 더 늘어"
민주당은 10차 전기본의 재생에너지 보급 계획이 지난 9차 계획보다 줄어 탄소중립 목표에서 후퇴했다며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김정호 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축소한 것도 모자라 국민적인 비판을 모면하고자 전기본 공청회 자료를 입맛에 맞게 작성해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했다"며 "지금이라도 10차 전기본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세계 각국의 재생에너지 확대정책 흐름을 거스르는 역주행을 멈출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양이원영 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 부위원장 겸 에너지분과위원장도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 대신 원전 비중을 높여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며 "10차 전기본의 원전 발전량을 보면, 평균 이용률 80%를 달성해야만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맞출 수 있는데, 노후원전인 고리2호기 최근 4년간 이용률이 70.6%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원전 확대로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재생에너지 목표치는 대폭 낮춤으로써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국가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정면 반박하고 있다. 10차 전기본의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는 9차보다 오히려 늘었고 이마저도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도전적인 목표이지만 최대한 높게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측은 특히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집중하였던 지난 정부 5년 동안, 신재생 설비용량은 연평균 3.5GW, 발전량은 연평균 10.0%가 증가했다"며 "10차 전기본상 2030년 신재생 발전비중 21.6%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설비용량 연평균 5.3GW, 발전량은 연평균 17.7% 증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환경부 "환경영향평가 협의 과정서 재생에너지 비중 상향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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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관계자는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 과정에서 수정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맞게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일 것을 요구했지만 산업부는 이에 대해 답변하지 않은 채 민간에서 RE100(사용전력 100% 재생에너지 조달) 등을 위해 투자를 하면 재생에너지가 늘어날 것이라면서 책임을 방기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전기본이 상위계획인 에너지기본계획(이하 에기본) 없이 수립된 것도 향후 계획 추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정부에서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에기본의 근거법이던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 폐지되자 산업부가 에너지법 개정안에 에기본을 포함시키려했지만 국회의 여소야대 정국으로 여전히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지난 7월 ‘탈원전 정책 폐기,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원전 수명 연장’ 등을 담은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발표, 사실상의 4차 에기본으로 삼고 10차 전기본에 반영했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로드맵’ 처럼 이번에도 국무회의 의결을 통한 로드맵 성격이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에너지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거기에 에기본에 대한 법적 근거가 담기고 그 다음에 각종 국가계획이 작성이 되는 것이 맞다"면서도 "새 정부가 5월 초에 출범했는데 언제까지 법 개정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 상위계획 없는 추진 논란 불씨…산업부 "아무런 문제 없어"
일각에선 지난 정부의 성급한 탈원전 정책에 따른 부작용이 되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정부 내내 논란이 된 ‘탈(脫)원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법적근거 없이 추진했다’는 점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상위계획인 2차 에기본의 내용 수정 없이 하위계획인 8차 전기본에 탈원전 정책을 반영한 것이 문제가 됐다. 2차 에기본의 2035년 원전 설비비중은 29%이었으나 8차 전기본의 2031년 비중은 11.7%(정격용량 기준)로 축소된 바 있다. 결국 감사원이 이의 위법성 여부를 감사하기까지 했다.
노동석 서울대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 여소야대로 법을 못 만드니 갑자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했고 이를 근거로 에너지 전환 로드맵이라는 걸 만들어서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그 걸 일종의 상위 계획으로 해서 8차 전기본을 수립했다"며 "국회 입법 과정이나 별도의 국민 의견 수렴 없이 탈원전을 강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 박사는 "즉 현 정부의 산업부로서는 피하고 싶었던 시나리오일 것"이라며 "지난 정부 때 이 로드맵을 갖고 온갖 걸 해도 되느냐 하고 감사원이 감사도 했는데 막상 비판해놓고는 똑같이 하고 있다는 모양새로 보일 수 있다. 다만 당시에는 법적 근거가 있었는데 이를 무시했던 것이고 이번에는 법적 근거가 없어진 상황인 점은 참작돼야 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이대로 시간을 지연하면 신한울 3·4호기 재개, 그 다음 원전 강국 10기 수명 연장 등이 있는데 아무 것도 진행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