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이진수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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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의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핵무기 사용 여부에 대해 질문받자 "미국은 선제 타격의 개념을 갖고 있고 ‘무장해제 타격’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답했다. 무장해제 타격이란 상대국이 보유한 핵무기 같은 위협을 제거하거나 무력화하기 위해 선제 공격에 나선다는 뜻이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러시아 본토 내 군사시설 공격 이후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다시 언급하기 시작했다. 지난 7일에도 핵무기와 관련해 선제 타격 개념의 필요성을 시사한 바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선제 핵공격을 감행할 경우 다른 핵강국들이 신속히 대응하고 나서면서 엄청난 재앙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새삼 주목받은 적이 있다. ‘플랜A’로 알려진 이 4분짜리 시뮬레이션 애니메이션은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충돌로 발생할 수 있는 엄청난 재앙을 각인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플랜A는 미 프린스턴대학의 연구진이 개발한 것으로 애초 2017년 공개됐다. 그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핵전쟁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다시 주목받은 것이다.
시뮬레이션 속의 핵전쟁 발단은 소름 끼친다. 비핵 재래식 충돌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먼저 나토군의 전진을 막기 위해 발트해 연안 칼리닌그라드 인근에서 경고 사격한다. 이에 나토군이 한 차례 전술 공습으로 응수한다.
지난달 16일 나토 회원국 폴란드에서 미사일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하루만인 17일 우크라이나 방공체계에 의한 ‘우발적 사고’로 신속히 결론났지만 유럽이 처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여과 없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나토는 집단방위체제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나토 조약 5조’에 따르면 나토 회원국 가운데 한 나라라도 공격받을 경우 모든 회원국을 공격한 것으로 간주해 다른 회원국들이 자동 개입과 함께 공동 방어할 수 있다. 나토 영토에 속하는 폴란드 내의 폭발 사고가 러시아와 연관이 있다는 징후가 조금이라도 발견됐다면 나토 조약 5조 발동까지 가지 않더라도 나토는 원하든 원치 않든 대응해야 했을 것이다.
시뮬레이션에서는 러시아의 선제 핵공격 이후 5시간만에 3400만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플랜A 개발진 가운데 한 사람인 프린스턴대학 기계항공공학과의 알렉스 글레이저 부교수는 지난 9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회견에서 나토와 러시아가 핵무기로 충돌할 경우 사망자 말고도 5590만명에 이르는 부상자까지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핵폭발로 인한 방사능 낙진 같은 기타 요소들이 제외된 수치다.
양측 충돌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각각 인구가 가장 많은 상대측 도시와 경제 중심지 30곳을 표적으로 핵무기 5~10기씩 투하한다. 그 결과 의료시스템 붕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으로 인구와 식량생산은 광범위한 타격을 입게 된다. 인류가 재앙에서 회복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가늠할 수 없다.
글레이저 부교수는 "일단 핵 문턱만 넘어서면 순식간에 전면 핵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며 "핵전쟁 이후 수년 동안 이어질 핵겨울이 재앙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핵전쟁으로 결국 50억명이 넘는 인구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러시아의 외교 접촉은 축소돼왔다. 그러나 핵무장 국가들에 중요한 것은 공개 소통 창구 유지다. 서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고 우발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다.
핵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