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임부회장
새해 글로벌 환경 불확실...'성장주' 바이오기업 자금난
메가펀드 조성 앞서 기술보증기금 같은 긴급지원 절실
바이오는 대표 융합산업…부처 초월 독립기관 설치해야
![]() |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임부회장. 사진=김철훈 기자 |
[에너지경제신문 김철훈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3년 동안 외연과 내실을 키워온 국내 바이오업계가 2023년 ‘K-바이오의 제2 도약’을 꾀하고 있다. 코로나19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면서 국제사회에 ‘K-바이오’의 기술력을 알린 바이오업계의 새해 여정에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본지는 지난 12월 하순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임부회장과 인터뷰를 갖고 국내 바이오업계의 신년 전망과 정부에 바라는 지원 역점과제 등을 들어봤다.<편집자 주>
-국내 바이오업계의 지난해 평가와 새해 전망을 짚어달라.
▲K-바이오 산업은 코로나19 발생 초기 방역(3T 정책) 성공, 진단키트 신속개발 등에 힘입어 글로벌 이미지가 크게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최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각 국가별 바이오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바이오기업들의 브랜드 가치는 코로나 기간동안 평균 30~40% 상승했다.
그러나 새해 전망은 불확실하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고금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미래가치를 보고 모험 투자하는 대표적 ‘성장주’인 바이오기업에 대한 투자는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올해 바이오기업의 주가 하락, 기업공개(IPO) 저조 등도 같은 맥락으로 내적 요인보다 외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 크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상황이 아니다. 미국 등에서도 바이오벤처들이 잇따라 임상중단·폐업을 하고 있고 다국적 제약사들마저도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새해 글로벌 경제 환경이 하반기 또는 연말이나 돼야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데 바이오업계 새해 전망도 글로벌 경제전망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다.
-불확실성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는 없을까
▲주식시장 위축으로 바이오기업의 밸류(가격)가 떨어져 있는 지금이 오히려 인수합병(M&A)의 적기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바이오 스타트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길이 사실상 IPO 하나에 국한돼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바이오 스타트업 자금조달의 95%가 M&A를 통해 이뤄진다.
다행히 최근 국내에서도 제약바이오 기업과 스타트업의 오픈이노베이션 등 바이오업계 내에서의 M&A가 자연스럽게 활성화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현재 국내 바이오기업의 펀더멘탈은 견고하다. 제가 그동안 바이오벤처를 창업해 2001년 9·11테러와 2008년 리먼사태를 겪으면서 엑시트(상장·매각 등을 통한 수익실현)한 경험에 비춰보면 경쟁력만 갖추고 있다면 대외적 위기가 지난 후에는 오히려 급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새해 국내 바이오업계도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바이오업계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지난해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 바이오 메가펀드 조성 등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아직 가시적인 진척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 바이오기업들은 고금리·주식시장 위축 등으로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우수한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해 좋은 전임상 결과를 도출해 놓고도 돈이 없어 임상을 포기·중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때야말로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메가펀드처럼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장기 지원에 앞서 기술보증기금과 같은 긴급 자금지원이 필요하다. 바이오산업 특성에 맞춰 보증률 100%의 단기·임시·맞춤형 지원을 통해 임상 비용 등을 지원해 주는 정책이 시급하다.
장기적으로는 바이오산업의 큰 틀을 만들기 위한 강력한 예산·집행권을 가진 정부기관 신설이 필요하다.
바이오산업은 그레이존(중첩영역)이 많은 대표적인 융합산업이다. 의약품 분야인 ‘레드 바이오’ 외에 농업 분야의 ‘그린 바이오’, 연료·소재 분야 ‘화이트 바이오’, 디지털치료제처럼 IT기술이 결합된 ‘융합 바이오’ 등 범위도 매우 광범위하다.
이는 어느 한 정부부처가 주도하기 부적합하다. 일례로 유전자 편집기술로 바이오 소재를 만들어 농산품을 개발한다면 보건복지부 소관일까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일까. 뇌파를 이용한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한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다뤄야 할까 복지부가 다뤄야 할까.
이 때문에 지난해 9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도 특정 정부부처가 아닌 대통령실(백악관)이 발표했고 같은 해 5월 중국 최초의 ‘바이오경제발전 5개년 계획’도 중국 ‘정부’가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국무총리 산하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철치 계획을 밝혔지만 자문 성격의 위원회보다는 ‘바이오청’ 또는 ‘바이오처’처럼 예산·집행권을 가진 관청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바이오산업 특성상 지금처럼 각 부처가 자신의 소관별로 육성·지원 계획을 만들고 부처간 조율을 통해 이를 ‘조립’하는 방식보다는 부처간 경계를 초월하는 기관(거버넌스)이 바이오산업 전체의 큰 틀을 짜고 세부 과제를 각 부처별로 분배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이 총괄기관이 영구적인 기관일 필요는 없다. 일몰제도를 통해 5년 또는 10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밖에 지난 2005년 도입된 한국거래소의 기술특례상장제도는 창업 초기 스타트업의 자금유치에 상당한 기여를 했지만 이제는 연구개발 이후 상업화 단계에 필요한 자금도 조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 개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국내 기업·정부·지자체는 연구개발·기초물질 발굴 등 바이오산업 전(全)주기의 ‘앞단’ 부분을 발전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토대와 노하우를 구축했다. 이제는 상업화 등 ‘뒷단’ 부분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제도 마련과 생태계 조성에 힘써야 할 때이다.
kch0054@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