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갈수록 커지는 송전 장애…전력 생산지·소비지 불일치 후유증 커져
동해안 원전·석탄발전, 출력제어 증가 및 가동률 저하로 손실 '눈덩이'
"원거리 값싼 발전기 못돌리면 수도권 인근 비싼 LNG 발전 많이 해야"
▲강원도송전탑반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강원도청 앞에서 동해안∼신가평 HVDC(초고압직류송전) 500kV 송전망 건설공사 사업자 선정 백지화를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지역별 전력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문제 해소를 위한 해법 모색이 한창이다. 대규모 원자력 발전 등 중앙집중식 발전소 운영의 효율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분산에너지로 각광받은 재생에너지의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대규모 송전망 구축에 한계가 속속 드러난데 따른 것이다.
이에 에너지경제신문은 에너지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환동해 데이터센터 허브 구축’ 을 제언한다.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 밑그림을 담은 장기 전력수급설계(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전력설비의 구축과 운영에서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효율은 높이자는 취지다. 환동해 데이터센터 허브 구축은 우선 전력 생산 기반이 취약한 가운데 원거리 생산 전력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전력 수요의 분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나아가 최근 발전설비 증가로 발전소 가동률이 점차 떨어져 자원 낭비를 초래하는 동해안지역의 발전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에너지경제신문은 관련 제언을 신년기획 시리즈로 마련, 매주 2회 총 5회에 걸쳐 집중 보도한다. [편집자 주]
<환동해 데이터센터 구축 시리즈 연재 순서>
△ 1회=전력 생산 지역 편중 심화
△ 2회=전력 소비, 수도권에 집중
△ 3회=갈수록 커지는 송전 장애
△ 4회=‘전기 먹는 하마’ 데이터센터
△ 5회="데이터센터 유치 파격 지원 필요"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값싸게 전력을 공급하는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지어 놓고도 송전선이 없어서 비싼 가스 발전기를 돌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동해안권서 수도권으로 넘어오는 송전선을 제때 건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자력이나 석탄 같은 연료비가 싼 발전소는 주로 해안에 위치해 있으며, 생산된 전력은 송전선을 이용해 수요가 많은 수도권으로 실어 나른다.
국내 전력 계통은 수도권에 부하가 몰려 있는 곳에 비해서 발전원은 서해, 동해, 남해 등의 해안가에 몰려 있어 장거리 송전에 따른 위험 부담과 용량 부족문제를 항시 안고 있다. 한전 측에서는 수도권 북부에 전력원을 두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더구나 시간이 갈수록 송전망을 수도권까지 연계하는 사업은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진행이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송전선 건설은 지금 당장 시작한다 해도 빨라야 4년이 걸리고 그마저도 제대로 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송전제약 문제 해결을 위한 데이터센터 지방이전 논의가 에너지·산업계 전문가들은 물론 국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배경이다.
▲국내 전력 계통도. 지역의 계통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
조환익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에너지경제와 통화에서 "데이터센터가 발전원 근처에 없는 경우에는 결국 전력을 공급받기 위한 대규모 송전망이 필요한데 이미 9·15 정전 이후에 정부가 전원 계획에 따라 만든 발전소들도 송전 장애에 방치되고 있는 마당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데이터센터도 송전망 못지않게 시급한 만큼 건설 스케줄을 고려하면 결국 데이터센터가 발전원 근처로 가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조 전 사장은 "데이터센터가 굳이 수도권에 있을 이유가 뭐가 있나. 대기업들이 데이터센터를 수도권에 두려고 하는 이유는 직원들이 지방으로 가기 싫어한다는 이유 밖에 없다"며 "발전용이든 데이터센터든 송전망 공사는 지연 가능성이 높은 많은 만큼 데이터센터와 같은 전기 다소비 업종은 지방으로 분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데이터센터 지방 이전, 송전 제약 해결·탄소중립·산업 경쟁력 잡을 열쇠
실제 2011년 9·15 순환정전으로 발전설비가 모자라자 발전사업자들은 동해안으로 눈을 돌렸다. 경기도 영흥과 충남 당진·보령·태안 등에 석탄발전소가 많이 들어서서 더 이상의 발전소 입지를 서해안에서 찾기 쉽지 않았고 송전 제약도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의 경우 2017년 준공된 GS동해 석탄발전소 각 1기가와트(GW)급 총 2GW를 시작으로 속속 완공되고 있다. 강릉에코파워의 안인석탄화력발전소는 각 1GW급 2기 중 지난해 이미 1기가 준공되었고 나머지 1기도 올해 공사를 마칠 예정이다. 삼척블루파워의 삼척석탄화력발전소 1GW급 총 2기도 2024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규 원전 준공도 이어지고 있다. 신한울 1호기가 지난해 준공돼 가동되고 있으며 2호기도 올해 전력시장에 진입한다. 두 기의 설비용량을 합하면 2.8GW에 달한다. 각 1.4GW급 신고리5·6호기도 오는 9월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가동 가능한 발전설비는 총 11.5GW였고 2024년까지 준공될 발전설비를 합하면 총 17.1GW의 엄청난 규모다.
한전은 지난해까지 완공했어야 할 HVDC(초고압직류송전) 500kV 송전망 건설을 시작도 못했다. 완공을 2026년으로 연기했다. 동해안-신가평 HVDC 건설사업은 총 440기의 철탑과 경북·강원·경기도의 10개 시·군을 지나는 230km에 달하는 선로로 구성돼 있다. 이 송전망 확충사업은 지역주민 반대로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신한울 원전 1호기와 강릉에코파워 석탄발전 1호기의 운전으로 지난해 9월부터 동해안 지역에는 2GW 이상의 송전제약이 발생하고 있다. 송전제약으로 기저발전기를 지어 놓고도 돌리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현실화한 것이다.
올해에 준공될 발전설비 6.8GW가 추가로 공급되면 그 손실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동해안권 원전 및 석탄발전의 가동률 하락에 따른 이들 발전소의 직접적인 손실 뿐만 아니다. 전력망 확충 없이 추진된 신규 원전 및 석탄발전이 올해 모두 준공돼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송전 제약이 5∼6GW만큼 연중 발생한다면 액화천연가스(LNG) 등 대체 발전에 따른 연료비만 연간 5조원 이상 추가로 소요되는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전력구매가격(계통한계가격·SMP)이 킬로와트시(㎾h)당 200원이 넘는 지금 상황에서 동해안의 연료비 기준 값싼 원자력이나 석탄 대신 수도권 인근 값 비싼 LNG 등 발전기를 돌릴 경우 대략 계산한 것이다. 이 추가 연료비는 전부 해외로 나가는 돈이다.
한전은 역대급 적자에 허덕이고 있어 송전망 공사에 힘을 쏟을 의지도, 여력도 부족하다. 이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수도권으로 가는 전기요금은 갈수록 비싸질 가능성이 크다.
한전이 이같은 송전제약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결국 전기 다소비 업종들이 발전원 인근으로 가는 게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적으로 봐도 수조원의 외화를 유출하느니 국내외 데이터센터 유치로 송전제약과 외화낭비를 막는 게 합리적이다.
한국은 양과 질에서 전기 품질 세계 최상급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 입장에서는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는 것에 매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제조업 시대에 산업단지가 도처에 생겨나듯이, 데이터 기반 디지털 전환시대에는 대형 데이터 센터가 전국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이다. 특히 세계적 화두인 4차산업혁명 전환과 탄소중립 등 기후변화대응은 모두 전기에너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인공지능은 천문학적 양의 데이터를 수집·연산·분석·학습하는 데에서 완성되고, 그 과정에서 값싸고 안정적인 다량의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경제적이고 정전 없는 전력 공급을 보장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인공지능 시대로 들어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동해안 지역이 이 두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 전 사장은 "우리나라의 전기 품질이 우수하고 요금도 싸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들도 국내에 들어와서 데이터센터를 지어놓고 그 다음에 임대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우리나라도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데이터센터가 핵심"이라며 "지역에 위치한 대규모 발전원들을 ‘기후변화’의 주범으로만 보기보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상충되는 여러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동해안의 석탄화력발전, 원전은 디지털 전환시대에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끔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체계를 유지할 수 있고, 동시에 국제사회의 기후·환경 감시에 그나마라도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17GW에 달하는 석탄발전소 및 원전과 PPA(전력구매계약) 직거래를 통해 전력을 싸게 쓸 수 있으면 동해안에 데이터센타가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지자체도 높은 고용효과와 지역경제 발전으로 환영할 것이다. 게다가 수도권에 몰리게 될 데이터센터를 동해안으로 분산시켜 송전수요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 자유로운 전력거래와 지역별로 차등화할 수 있는 전기요금은 장기계약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말했다.
◇ 여야 "데이터센터, 수도권 전력 공급에 지나친 부담…지역 이전 추진해야"
▲동해안 인근 대형 발전소 현황. 데이터센터 수도권 집중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들 발전소들로부터 전력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막대한 송전망 건설이 필요하다. |
국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데이터센터 활용 확대를 위한 지방이전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서비스 먹통 사태 이후 부실한 상태를 드러낸 재난 복구(DR) 시스템 문제 강화가 의무화할 경우 IDC(인터넷데이터센터)가 더 늘어나 수도권 쏠림은 심화할 전망이라 수도권 외 지역으로 분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 높은 수준의 DR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늘어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수도권 IDC 수요도가 폭증할 것"이라면서 "수도권 전력 공급에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건설될 IDC는 비수도권에 위치하도록 정부가 조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홍정민 의원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지난해 6월까지 IDC 건설 계획이 확정돼 전력 공급이 예정된 62호수 중 52호수가 수도권 지역에 쏠려 있다. 호수는 전기 사용자가 한전과 맺은 전력 공급 계약 건수를 말하는데, IDC의 호수당 전력 공급량은 계약마다 다르다. 공급되는 전기는 산업용이 아닌 일반용 전기다.
이에 따른 전체 예상 공급 전력량 3789㎿(메가와트) 중 수도권에 3417㎿가 공급될 예정이다. 90%를 넘는 수준이다. 아울러 2019년부터 한전에 IDC를 짓겠다는 뜻을 밝힌 ‘전기사용예정통지’도 수도권에 약 92% 몰려 있다. 현재 운영 중인 IDC 상당수도 수도권에 쏠려 있기 때문에 IDC 쏠림 현상은 가중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6월 기준 운영 중인 전국 IDC는 146호수 중 수도권 지역에 86호수(59%)가 몰려 있다. 이어 강원·충청권 19%(28호), 경상권 15%(22호), 전라권 7%(10호) 순이다. 이들 IDC에 실제 공급되는 전력량을 보면 이런 현상은 더 심각하다. 전체 IDC에 공급되는 1742㎿의 전력 중 70%(1220㎿)가 수도권에 있고, 강원·충청권 15%(251㎿), 경상권 12%(211㎿), 그리고 전라권 3%(60㎿) 순이었다. 이런 쏠림 현상이 발생할 경우 부족 전력 공급을 위한 송·변전 계통 건설 및 운영 비용 등 막대한 비용이 필요해 국가 전력망의 효율화를 떨어뜨린다. 실제 전기를 만드는 발전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한전이 IDC 건설 의향을 밝힌 전기사용예정통지를 근거로 산정한 수도권에 늘려야 하는 변전소는 30개로, 10조 2000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해 발의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안’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역 균형 발전’이다. 현재는 원전이 있는 부산·울진이나 원전이 하나도 없는 서울의 전기요금이 다 똑같다"며 "만약 원전 주변 지역의 전기요금이 싸다면 전기를 많이 쓰는 데이터센터 등 상당수의 기업들이 원전 주변으로 갈 것이다. 요금 차등은 송전제약 문제 해결은 물론 지역 균형 발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이어 "데이터센터를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유치하고 정부에서 지역별 차등요금제 등의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며 "분산에너지로의 전환을 통해 비수도권에 신산업을 발전시켜 수도권 일극주의를 벗어나 균형된 국토발전을 이룬다면 대한민국도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측은 "2040년까지 분산에너지 30%를 확대할 목표로 인프라 강화 등에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투자할 계획"이라며 "법률 제정 이전이라도 데이터센터 등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전력산업기금 등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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