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신혼부부 “화곡동 살아도 문제없을까요?”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1.15 10:36

‘빌라왕’ 전세사기 잦은 행각…세입자들 거주 전전긍긍



깡통전세 기준 전세가율 80% 이상 주택 ‘즐비’



지역 공인중개업소 "손님들 중개소 발길 ‘뚝’…믿고 맡겨달라"

2023011601000737500032671

▲최근 ‘빌라왕’ 사건 등 전세사기 행각의 주 무대가 된 서울 강서구 화곡동은 지난해 11월 기준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서울 전 지역의 41%를 차지했다. 사진은 화곡동 주택 밀집 지역 전경. 사진=김준현 기자


[에너지경제신문 김준현 기자] "결혼 앞둔 예비 신혼부부인데 몇 년째 매스컴에서 화곡동 전세사기를 보도하니 선뜻 거주를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30대 신혼부부 A씨는 서울 여의도 직장에서 출퇴근하기 좋은 입지로 강서구 화곡동을 택했다. 본래 화곡동 일대는 청년과 신혼부부들이 첫 시작을 위한 발판으로 최적의 직주근접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를 악용해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전세사기를 벌이는 등 화곡동 일대를 전세사기 제물로 만들어 사회적 문제가 되자 거주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A씨다.


◇ 우후죽순 신축빌라…높은 전세가율 ‘덜덜’


최근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는 15일 오전 세찬 진눈깨비가 함박눈으로 바뀌면서 풍경이 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전세사기 주 타깃이었던 화곡1동 일대 주택 단지는 서울지하철 5호선 까치산역 3번 출구에서 1~3분이면 만나는 초역세권이다. 주택 단지에 들어서면 이른바 ‘나홀로 아파트’인 주상복합이나 필로티 신축 빌라들이 즐비하다.

화곡동은 본래 인근 김포공항이 있어 고도제한과 소음 문제로 노원구처럼 재건축·재개발이 쉽지 않아 신축 빌라가 계속 생겨나는 지역이다. 신축이기에 저렴한 보증금으로 신혼부부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충분한 곳이기도 하다.

다만 그런 만큼 전세금 미반환 사고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737건으로 서울 전 지역 41%를 차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같은 나홀로 아파트는 대부분 26~29㎡대(약 7~8평) 2룸이며 매매 가격은 2020년~2021년 사이 2억1000만원에서 2억6000만원까지 형성돼 있다. 반면 전세가격은 2022년 기준으로 2억1000만원대다. 평균 매매가격이 2억5000만원이라고 한다면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은 84% 정도에 해당된다.

흔히 전세가율이 80%가 넘으면 ‘깡통전세’나 역전세 위험이 크다고 보니 A씨처럼 신혼부부나 청년들이 거주를 선택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빌라의 전세가율 사정은 더 심각하다. 인근 다세대주택 전용면적 58㎡(17평)가 지난 2020년 2억3900만원에 거래됐는데 전세는 최근 66㎡가 2억3000만원에 거래돼 전셋가와 매맷가가 900만원밖에 차이가 안 나 전세가율이 98%에 이르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 이미지 쇄신 나선 지역 공인중개업소


이같은 공포 분위기가 형성된 것에는 화곡동에서만 빌라 283채를 매수한 뒤, 보증금 31억6800만원을 돌려주지 않은 ‘화곡동 빌라왕’ 등 전세사기 일당의 만행이 크다.

여기에 수도권 1139채를 소유하고 지난해 10월 사망한 ‘빌라왕’ 김모씨도 화곡동에 80채가 있고, 전국 3483채를 보유한 ‘빌라의 신’ 권모씨도 44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이번에 제주에서 숨진 빌라왕 40대 정모씨와 화곡동 빌라왕 김모 씨의 배후가 부동산컨설팅업체 신모씨로 알려져 집단적 사기행각에 세입자들이 통곡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정모씨가 숨진 뒤에도 강서구와 양천구, 인천서 주택 628채 주택을 사들였다.

이로인해 인근 공인중개업소의 한숨이 크다. 복수의 화곡동 일대 공인중개업소 관계자에 따르면 흉흉한 소식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 호소다. 화곡동 인근 공인중개업소 한 관계자는 "화곡동에서 일어난 전세사기는 부동산 컨설팅업체가 작정하고 벌인 짓이고 지금은 있지 않다"며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통해 공인중개사가 발벗고 전세사기 예방과 근절에 힘쓸 것이기에 믿고 맡겨달라"고 말했다.

또 인근 공인중개업소 B대표는 "최근 서울시의 ‘신혼부부 임차보증금 이자지원사업’을 하고 있다"며 "이를 활용해 3.5%대 낮은 이자로 부담없이 신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강서구 일대를 택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전세사기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법적으로 모호하다. 정동근 법무법인조율 변호사는 "지난해 말 국세기본법과 국세징수법 개정을 통해 임대인이 세금 체납 현황을 알 수 있게 됐다"며 "다만 개정된 법에 따르더라도 계약을 체결하기 전엔 세금체납을 알 수 없어 개정법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kjh123@ekn.kr
김준현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