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어 네덜란드·일본까지 첨단 장비 수출 중단
삼성·SK 현지 생산 불가피...미국과도 초격차 유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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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중국 반도체 제재에 네덜란드와 일본 정부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합의했다. |
이러한 움직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우리나라 기업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장비수출 규제가 국내 기업을 추격해온 중국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면서 한숨 돌리는 상황을 마련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현지에서 생산 차질을 빚는 등 불똥이 튈 여지도 커졌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첨단 반도체 생산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도 부담이다.
1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반도체 굴기’ 꺾기에 네덜란드와 일본 정부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합의했다. 지난해 10월 미국이 중국 반도체 기업에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고 슈퍼컴퓨터 등에 활용되는 고성능 반도체 수출을 제한한 데 이어 장비 규제 범위를 대폭 확대한 조치다.
이는 중국이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추진 중인 ‘반도체 굴기’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8년 반도체 제조사 푸젠진화, 이듬해 정보기술(IT) 기업 화웨이에 제재를 도입하는 등 특정 중국 기업을 겨냥한 규제를 통해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견제해왔다. 최근에는 반도체 장비 반입을 금지하면서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막는 식으로 규제가 진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업계는 당장 생산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시안과 우시, 다롄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첨단 장비를 중국 공장에 반입하기 어려워지면 생산 계획에 수정이 불가피하다. 미국 정부가 국내 반도체 기업이 운영하는 중국 공장은 1년간 건별 허가를 받지 않도록 허용했지만 유예 기간이 1년에 불과해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실제 SK하이닉스는 미국 반대로 극자외선(EUV) 장비를 중국 공장에 반입하려다 무산된 적이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도 잠재적 위협이던 중국 반도체 굴기를 일단 저지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장비 수출 규제를 호재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중국 국영 메모리 반도체 기업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업계 최첨단 기술인 ‘200단 이상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하고 애플에 공급을 추진하는 등 걸음마 수준이던 전과 달리 국내 기업과 기술 격차를 크게 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기업이 있는 네덜란드와 일본이 장비 수출을 중단하면 YMTC는 향후 사업에 심각한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네덜란드 ASML은 반도체 식각 공정에 투입되는 노광 장비 중 최첨단 극자외선(EUV) 장비를 독점 생산한다. 일본 도쿄일렉트론은 웨이퍼 검사장비와 세정 등 모든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장비를 만든다.
업계 관계자는 "YMTC가 첨단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네덜란드와 미국, 일본 장비를 제외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예전처럼 빠르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추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 수출 규제가 중국 견제뿐 아니라 자국 반도체 생태계 강화에도 방점이 찍혀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국은 반도체 설계 부문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이 있지만 생산 기술은 동아시아 국가에 추월당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우방국 첨단 반도체 제조시설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꺼내 들며 생산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첨단 메모리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우리나라 기업과 경쟁하게 되는 구도가 가장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중국 수출 규제에 대응하는 동시에 미국과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한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jinsol@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