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김앤장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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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김앤장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일 ‘탄소중립시대를 위한 그린 딜 산업계획(A Green Deal Industrial Plan for the Net-Zero Age)’ 안을 담은 20장 분량의 통신문을 발표했다. 총 2500억 유로 규모로 즉각적인 세액공제와 청정 산업에 대한 보조금을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 대책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그린 딜 산업계획은 EU의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탄소중립으로 신속하게 전환하며, 제조능력 확장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기존의 유럽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 EU 기후변화 대응정책 및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로드맵)과 REPowerEU(에너지 안보 향상과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급 방안 마련을 목표로 하는 행동계획)를 보완한다. 예측 가능하고 간소화된 규제 환경, 재정 지원 가속화, 기술 향상, 탄력적인 공급망을 위한 개방 무역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데, 핵심은 까다로운 기존의 지원 요건 및 절차를 완화해 탄소중립 분야 지원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 1월 이미 법안 제출이 예고된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을 통해 규제 완화 및 시설 승인을 가속화하고 관련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제조업의 탄소중립 전환을 촉진한다는 구상도 포함됐다. 중기적으로는 청정기술 개발을 위한 유럽국부펀드(European Sovereignty Fund) 신설 추진과 탄소중립 산업에 핵심인 원자재 공급망 확보 및 다변화를 위한 계획도 담겨있다. 이번에 발표된 계획은 전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주는 단계로 앞으로 EU 이사회 및 유럽의회가 세부 논의를 하면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탄소중립산업법안은 3월 중순 발표될 예정이다.
이 계획은 미국내 친 환경 산업을 지원하는 IRA에 대응하기 위해 EU가 공공 자금 뿐 아니라 민간 자금까지 조성해서 지원하는 계획이지만, 새로운 자금을 투입하기 보다는 기존에 조성된 자금의 지출을 조정해 탄소중립 산업을 지원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EU내 회원국 간 보조금 지원 격차로 인한 단일시장 균열 우려와 함께 미국과의 보조금 경쟁은 불필요한 노력으로, 보조금 규제 완화는 단기적으로 시행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는 만큼 완전한 합의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EU가 IRA에 이렇게까지 대응하는 이유가 있다. 탄소중립 산업을 미국에 내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기차 보급 등 친 환경 수송, 해상풍력 확대 등 에너지 전환, 그린수소 활성화 등 산업 탈 탄소화를 포괄하는 탄소중립 산업에 집중해 왔지만, IRA로 인해 관련 투자가 EU에서 미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내 재생에너지 가격이 더 싸지면 철강·화학 등 에너지 다 소비 업종도 따라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IRA가 미국 의회를 통과한 지 6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그 성과를 살펴 보면, EU의 걱정이 이해도 된다. 6개월간 900억달러에 달하는 친환경 산업 투자가 발표됐는 데 이는 약 1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 20건에 달하는 친 환경 산업 투자 발표 중에는 지난 10월 BMW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17억달러 규모 전기차 설비 투자가 포함돼 있고 한화큐셀의 25억달러 규모 조지아주 태양광 공장 증설도 들어 있다. 이 달에는 포드가 미시간주에 35억달러 규모의 배터리공장 건설을 발표했고, 지멘스가메사도 뉴욕주에 5억달러 규모의 해상풍력 터빈공장 계획을 공개했다. 2030년까지 1조달러 규모의 친환경 투자로 100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전망되고 있다. 반면 EU는 IRA에 버금가는 규모의 펀드를 보유한 데도 지원 받는 절차가 까다롭고 세제도 회원국마다 상이한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IRA와의 체감 혜택 차이가 크다.
그러나 IRA를 통해 경제 탈 탄소화, 러스트벨트 활성화, 해외 공급망 의존 감소를 꾀하는 미국도 막상 이행을 하려니 고민이 많다. 동맹국의 반발, 인력수급 차질, 프로젝트 인·허가 지연 등이 해결돼야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제품의 경우 해외 공급망 의존이 불가피한 현실도 난제다. EU도 주요 산업의 유출을 막기 위해 그린 딜 산업계획을 이행하는 데 따른 EU내 탄소가격제도 활용 및 코로나회복기금 집행 등 기존 정책과의 효과적인 믹스가 고민이다.
이러한 선진국의 탄소중립 산업 지원 정책과 고민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의 산업은 블루오션으로 모든 국가가 대변혁의 출발점에 서 있고, 승부는 지원금의 규모나 정책의 정교함 보다는 이행 속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이행 속도에 초점을 맞춰,어느 나라보다 국가 배출량을 넓게 커버하고 있는(73%) 탄소가격제도를 활용해 올바른 가격 시그널을 주고, 그 재원을 탄소중립 산업 경쟁력 제고에 빠르고 쉽게 지원한다면, 탄소중립 이행 속도를 높이면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의 거대한 IRA나 EU의 웅장한 계획을 보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행의 속도다.